정답없는 세상에서 절대적 기준을 강조하는 역설
무조건 의대를 가야 한다!
난 여기 아니면 안 된다!
다른 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 시기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저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내 인생 끝이다!
항상 뭔가의 기준에 맞춰서 살아온 게 익숙하다 보니 당연히 그 길이 맞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들은 늘 그렇듯이 자녀가 사회적 인식이 좋고 안정적이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예전엔 몰랐다.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젊은 날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수조차도 없다. 물론 사회적 인식이 좋고 웬만큼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지는 건 좋다. 하지만 어릴 때도 그렇고 대학을 들어가고 난 이후에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뭘 해야 기분이 좋고 행복한지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과연 그토록 내가 원했던 길이고 희망했던 길일까? 삶에 대한 숙고나 행복에 대한 고민도 없이 하염없이 공부만 해왔던 지난 날들이 쌓인 결과가 어떠한가? 결국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한 구체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일상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그토록 부모님이 원하던 의예과나 전도유망한 학과를 들어갔을지라도 모두가 그것에 만족해하며 다니는 건 아닐 것이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원하는 삶, 그게 부모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자녀의 기분까지 좋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교육 현실과 입시 시장을 보면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의대 열풍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쏠림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정말 안타까운 건 실력과 재능이 출중한 친구들이 공대보단 의대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의사로 취업을 하거나 개원을 하면 다른 직업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정말로 자기가 생각했을 때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거나 앞으로도 쭈욱 의사로 삶을 이어나간다고 한다면 의과대학에 입학해도 상관없다. 문제는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 모두가 다 의사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100%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의 등쌀에 밀려 의대로 진학한 친구들도 있을텐데 과연 공부가 제대로 될까? 직장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만약 본인들의 자녀가 의사의 삶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다른 걸 하고 싶어서 의사를 포기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녀의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것인가?
정해진 삶은 어디에도 없다. 삶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나의 삶이 부모의 지원은 받을 수는 있지만 완전히 부모에게 종속될 수는 없다. 스스로 뭔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성장이 있고 발전이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생각과 행동을 고려하거나 눈치밥을 먹으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나 웃어른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참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판단은 본인의 몫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은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인식은 씁쓸한 현실을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핵심 원천이다. 하지만 그건 사회적 인식일 뿐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머지않아 AI는 교육 환경은 물론 전 분야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어쩌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다 무쓸모가 될 것이고 생각하고 사고하는 게 또 하나의 특권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명문대, 의대, 전문직 등 과거의 우월한 가치관과 사회적 인식에 갇혀있다면 자기 자신의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스스로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답없는 삶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자기만의 방식과 루틴, 그게 중요하다.
순환되는 번아웃과 멘붕에서 자유로워지려면
학습과 도전, 환기가 필수다.
한때 수능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삶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학점을 좋게 받지 못해 좌절했던 적이 있었고 번번이 실패하는 취업 때문에 내 삶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 틀렸다. 살아야 하는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자꾸만 내 스스로 삶의 수명을 단축하고 있었다. 성공과 실패로 구분되는 삶의 늪에서 나의 마인드는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했고 도전과 시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만 맴돌았다. 이 점수를 못 받으면 안 된다, 여기 못 들어가면 들어갈 회사는 없다, 지금 뭔가를 해놓지 못하면 삶이 더 힘들어진다... 이런 생각들에 머무르다 보니 삶이 즐겁게 느껴지질 않았다. 평온한 일상이었지만 마음 속 날씨는 길고 긴 한파경보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취업을 하게 되었고 경력을 쌓은 덕분에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느 정도 내 전공을 살려서 취업에 성공했고 지금도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 숱한 번아웃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느꼈던 지난 날들이 떠오른다.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는 과정 속에서 참으로 많은 걸 느꼈다. 그동안 작성했던 글에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상황을 조율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당연하다. 그저 전진하는 법만 배웠으니까. 올바른 후퇴나 제자리에 머무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그저 일에만 집중하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으니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삶을 지치게 하지 않으려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시야를 넓히기 위해 틈틈이 독서를 했다. 최근에는 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학업에 매진을 하고 있다. 나는 예전부터 컴공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 전공 지식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직장이랑 병행을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그동안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는데 그러한 감정이 해소가 된 느낌이어서 예전에 대학 다닐 때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이뤄놓은 건 많이 없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땐 지금의 나가 더 낫지 않나 싶다. 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10대는 더더욱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것도, 깨닫는 것도 늘어나고 있는 요즘, 삶에 정해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더더욱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그 누가 뭐래도 내 방식대로 웃지 못할 내일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도, 회사도, 사회도 나에게 100% 지원을 해주는 게 아니다. 실질적으론 스스로가 거의 모든 것들을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변화무쌍한 현실에서 유연한 대처와 인생 설계를 하려면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려움을 예약하는 삶에 익숙해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삶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면 언제나 안정만 추구하게 된다. 과거에는 이상적인 직업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방향을 틀을 줄도 알아야 한다. 부모의 꿈이 나의 꿈이 아니며 친구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 아니듯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두려움은 불확실함에서 온다.
문제는 그 불확실성을 키우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건
희망고문이 아니라
그냥 절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