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현실을 무시한 결과의 대가
현실을 꿈으로 바꾸려는 시도와 생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한낱 일장춘몽일 뿐이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콘텐츠로 인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기준은 하루가 다르게 더 높아지기만 한다. 세상엔 생각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 많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판타지스러운 사랑의 모습들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이랑 연애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SNS를 통해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의 일상을 접하며 그들이 입는 옷, 타고 다니는 차, 악세사리 등 많은 것들을 구매해보고 입어본다. 만족감은 잠깐이지만 나도 뭔가 했다는 성취감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그토록 내가 원하던 삶의 모습, 잘 나가는 사람들처럼 보여지고 싶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멈추지 않는 행보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내가 이루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결핍은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내가 정한 기준에서 1도 벗어나고 싶지 않다. 거기서 벗어난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살아가는 눈앞의 현실이 드라마나 유명인의 삶에 드러나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며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은 현실이다.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말그대로 희망일 뿐 실제로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어떤지를 분명하게 봐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게 어쩌면 나의 마음은 방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위를 한 번 둘러봐라. 지금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일상이 무탈한 건 굉장한 축복이며 엄청나게 큰 정신적, 정서적 자산이다. 그런데 그 무탈한 삶을 견디질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은 재미가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자극이 있어야 살아가는 맛도 있으며 변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환상,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꿈같은 순간을 이루기 위해 내 성향과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일탈이나 기타 다른 활동들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만족해야만 하는 수준의 레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내 만족의 수준이 객관적으로 높아졌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왔던, 꿈꿔왔던 삶의 모습이 오히려 내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방향을 잃게 만드는 주범이었던 것이다.
내 만족도 수준에 따라 결과적으로 내가 버는 돈의 의미는 각 개인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 할지라도 지출이 더 많다면 그건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닌 것이다. 억대 연봉자들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중요한 건 내가 버는 돈만큼 지출이 적지 않다면 그 사람이 버는 돈은 제로에 가까운 것이다.
꿈은 언제나 설렘을 주고 희망을 안겨다준다. 하지만 꿈의 의미는 저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인식될 수 있다.
순수한 꿈도 있지만 속물적인 꿈도 있다. 차가운 꿈도 있지만 따뜻한 꿈도 있다. 꿈이 어떤 것을 섭취하고 수용하는지에 따라 그 형태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좋은 의미에서 기대감을 안겨다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과 결핍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꿈은 무엇인가? 정말로 그 꿈이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며 미래를 더 살아가고 싶은 일상으로 만들어주는 꿈이 맞는 건가? 마음 속 피어나는 욕망은 무한적이지만 육체와 돈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원하는 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스스로만 더 힘들어지는 건 분명하다.
환상에 사로잡히면 불행의 파이는 더 커진다.
현실과 이상은 엄연히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꿈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너무 멋있게 보여서...', '저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뭔가 돈이 될 거 같아서', '나도 뭔가 저런 거 하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생각보다 괜찮게 느껴져서', '그냥 돈 많이 벌 거 같아서', '내가 하면 더 이뻐 보일 거 같아서',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어차피 죽을 거 한 번이라도 꼭 해보고 싶어서'......
꿈이 생긴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다. 하지만 막상 그 내막을 열어보면 대부분 자기 내부가 아닌 외부를 통해서 꿈을 꾸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자기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핵심 에너지원이 외부라고 한다면 그러한 꿈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잘 모르겠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하나의 꿈일 수 있다. 명품이나 고급 차를 사는 것도 꿈이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대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내가 꿈꾸고 있는 그 무언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인식에 영향을 주며 내 삶의 철학과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 꿈은 적어도 내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균형을 지켜주고 일상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원만한 인간관계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야 그게 진정한 꿈이다. 꿈을 키워가는 내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매순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 모습이 진정 내가 원했던 모습이라고 한다면 그대로 진행해도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건 내가 원하던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스스로 정말 원해서 이루고 싶은 꿈이 아닌 누군가에게 등떠밀려서 추구하게 된 꿈이거나 부모님 등쌀 때문에 필수적으로 생긴 꿈이라고 한다면 그건 꿈이 아니다. 그냥 학습된 결과일 뿐이다. 그렇게 하면 뭔가 잘 되겠지 하는 생각과 가르침이 만든 무의식적인 결과물의 씁쓸한 현실일 뿐이다.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된 나의 꿈? 트렌드라는 자극적인 요소를 먹고 자라난 꿈? 그런 꿈이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정말로 위기가 찾아오거나 부침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때는 정말로 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말이다.
현실을 꿈으로 바꾼다, 꿈을 현실로 만든다... 말은 쉽다고 하지만 그걸 이루는 과정은 참으로 어렵다. 설령 그 꿈을 이뤘다 하더라도 그 꿈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은 꿈을 이루기 전의 노력보다 더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뭔가를 이루거나 뭔가를 구매한 그 결과를 과연 내가 잘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으며 거기에 더해 마음까지 잘 돌볼 수 있을까? 사실 생각과 마음은 정적인 것이 아닌 데 말이다. 알게 모르게 학교에서 받은 교육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정답과 오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굳이 정답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꿈도 아무나 꿀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꿈도 제대로 못 꾸고 그저 생계만 신경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감사함은 사라지고 더 높은 만족도를 추구하기 위한 일상의 숫자만 더 늘어난다. 그게 현실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좀먹게 하는 꿈을 꾸지 말고 진짜로 내 삶에 도움이 되며 주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는 꿈을 꿔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개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주는 꿈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꿈은 물질적일수록 그 한계가 분명하다.
결핍의 주범이며 공허함만 더해진다.
마음의 명줄을 끊어버리는 꿈을 가지면
그때부턴 되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
내 스스로 '나'라는 성을 함락시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