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망설임 없이 쓰는, 첫 글
글쓰기를 주저한 이유
아주 오래전부터 일기를 써왔다.
어림풋이 기억해 봐도 20년은 넘은 것 같다.
매일 썼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호기심 가득한 일로 가득 찼었다.
지금은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 내 삶의 생동감이 줄어든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안정감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요즘은 일기를 종종 쓴다.
그럼에도 요즘은 글을 계속해서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잠을 쉽게 못 이룰 정도로 차오르고 있다.
오늘은 그 욕망이 결국 나를 책상에 앉혔다.
근데 왜 하필 이 시간에 일기가 아닌 이 공간에 쓰는 것일까?
나만의 시선으로 보고 느낀 것들이지만 일기 속 내 시선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그동안 나의 이야기들이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도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어느 날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글이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이 공간에 꼭 글을 써나가고 싶어졌다.
사실 브런치에 있는 좋은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지는 훨씬 더 오래전이다.
하지만 필명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첫 글을 어떤 것으로 써야 될지 글의 순서는 어떻게 해야 될지 등등..
고작 사내 익명게시판에 썼던 몇몇 글들이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었었던 경험이 전부인 내가 이렇게 열린 공간에 글을 써나간다는 게 스스로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함인지 아니면 진정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길 바라는 다정함으로부터 인지 깊게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유독 이 공간에 들어올 때마다 글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
많은 시간을 고민하면서 내가 일기를 넘어서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너무도 진심이어서 잘하고 싶다는 욕망과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망설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망설임이 무너지게 된 것은 정말 한 순간이었다. 어느 날 문득 왜 못쓰고 있지? 나는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 꼭 완벽해야 하는가? 완벽해져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완벽해야만 위로가 되는가? 글을 모르시는 어르신들의 시에도 감동이 있지 않은가?... 수많은 질문들이 결국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나를 위로하고 스스로에게 다정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했고 또 결국 나를 위한 글쓰기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다정한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래서 주저함 없이 이 글을 첫 글로 쓴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그리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꽤 오래 써가고 싶다.
이곳에서 첫 글을 쓰면서 드는 유일한 바람이다.
이렇게 별일 아닌 듯 가볍게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