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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Feb 20. 2024

처음 아버지를 업었다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

유독 추운 2월이었다.

스물일곱 나에게 추운 날씨만큼이나 작은 몸으로 견뎌야 하는 현실은 더 차가웠다.


아버지는 내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대학생일 될 때까지 그 어떤 부모님 행사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으셨다.

그런 내가 이제 곧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2월.

그리고 1년째 암으로 투병 중이신 아버지가 본인의 죽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신,

어쩌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를 2월.


아버지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과정을 마무리하시고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생을 본인의 의지로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신 듯 집에 있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버지와 매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어릴 적 소원이 이뤄졌다. 어색했다. 낯설었다. 또 어떤 면에서는 귀찮았고 왜 하필 내 소원이 이런 모습으로 내게 왔는지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나는 늘 어머니, 아버지, 동생과 나 이렇게 네 가족이 함께 행복하길 바랐으니까. 나 역시 아버지와 함께 할 행복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버지가 목욕탕을 가고 싶다고 하셨다.

거동이 안되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괜찮으실까 염려되었지만 굳이 고집을 피우셨다.


아버지를 업고 집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10분이 넘게 걸려 목욕탕에 도착했다.

역시 어색했다. 낯설었다. 이제와 아버지랑 목욕탕이라니.. 그 흔한 것을 매주 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내가 다 커서야 본인 씻고 싶다고 목욕탕을 같이 가자고 하시는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평일 아주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목욕탕에는 우리 밖에 없었다.

두꺼운 옷을 겨우 벗어내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몸을 보았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봐온 익숙한 몸이었지만 아무것도 걸치시지 않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이 차올랐다.

앙상했다. 긴 투병에, 어쩌면 본인조차 몰랐을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몸을 메마르게 한 듯했다.


몸에 물을 적셔보기도 전에 탕 안에 수증기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앞이 뿌옇게 보였다.


오랜만에 하시는 목욕이라 그러신 지 아버지는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으셨다.

"이리 와라, 저리 와라, 이거 가져와라, 여기 앉아라, 아빠가 등 밀어줄게.." 이런 것 말이다.


아버지는 몇 년은 거뜬히 더 살아계실 것처럼 힘껏 내 등을 밀어주셨다.

아팠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아버지의 생기에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목욕을 다 마치고 옷을 갈아입을 때쯤 아버지 기력이 많이 떨어지신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식욕도 없으셔서 아무것도 안 드시고 병원에서나 집에서나 움직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

안 아픈 사람처럼 목욕을 하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집 가는 길은 목욕탕을 갈 때보다 더 축 늘어지신 아버지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방금 전에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이란 생각이 안들정도로 내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마중 나오신 어머니 말로는 멀리 서봐도 내 몸에 수증기가 보인다고 하셨을 정도였다.

아버지를 업고 꽤 긴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기에 숨이 차올라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힘듦을 몇 번만 더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야속하게도 아버지는 따스한 3월 우리 곁을 떠나셨다.


돌이켜보니 유독 추웠던 2월 그날,

아버지는 머지않아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할 아들에게 마지막 온기를 온 힘을 다해 쏟아부어주신 것 같다.

아들아 그동안 미안했다며, 사랑했다며, 힘내라는 위로와 함께..


그렇게 그해 2월은 지금껏 내게 가장 추웠지만 가장 따뜻했던 2월이 됐다.


매년 이 맘 때쯤이면 그날의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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