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채 Jan 09. 2022

#01 다이어리

생일, 기록, 취향


음력 생일

 1월 1일이 되면 새 다이어리에 한 해 동안 챙겨야 할 생일을 표시한다. 가족들이 생일을 전부 음력으로 챙겨서, 해가 바뀔 때마다 음력에 맞춰 양력 생일을 표시해야한다. 번거롭지만 매년 생일 날짜가 달라지는 게 꽤 재미있다. 작년엔 8월이었던 생일이 올해는 7월에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생일은 한 해에 두 번이나 등장해서 사람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생일을 정리하는 동안 “올해 니 생일은 7월이야”, “이번 내 생일은 양력이랑 음력이 붙어있어” 따위의 소소한 대화를 주고 받는 게 좋아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이 작업을 한다. 귀찮은 만큼 생일날 당사자에게 연락했을 때 상대가 느끼는 감동은 배가 되므로, 수고를 감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록

 다이어리를 쓴다고 하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즐긴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오로지 기록만 한다. 만나야 할 사람부터 사고 싶은 물건, 하고 싶은 일을 적는다. 그리고 만난 사람과 이미 산 물건, 어쩌다 해버린 일을 덮어 쓴다. 특히 과거를 남길 때 은근한 묘미가 있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어 혼자 공연을 보러갔다고 해보자. 만약 어플에 이 날을 기록한다면 그저 '공연 보러 가는 날' 정도로 남겠지만, 다이어리에 쓴다면 별 수 없이 히스토리가 남는다. 'OO 만나기'를 볼펜으로 찍찍 긋고 '공연을 본 날'로 적거나, 'OO 만나기'위에 수정테이프를 덧대고 그 위에 '공연 보러가는 날'이라고 쓰는 식이다. 예상했던 일 위에 벌어진 일을 쌓아놓고 멀찍이서 보면, 그렇게 흘러간 날들도 꽤 괜찮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다.



취향

 다이어리를 고르는 게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너무 귀찮은 일이다. 온오프라인을 배회하며 다이어리 코너를 뒤져도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찾기란 어렵다. 친구에게 선물받은 다이어리와 함께 한 해를 보낼 때도 있다. 그럴 땐 다이어리의 구성이나 디자인을 두고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대신 아날로그적인 취향을 기억해준 친구에게 고마움만 느낀다. 올해도 선물받은 다이어리를 사용할 예정이다. 다이어리를 펼치고 전체 레이아웃을 스르륵 훑어본 뒤 가감없이 칸들을 채웠다. 그러고 있자니 어떤 다이어리도 입맛대로 다룰 수 있을 것만 같아 자신만만해진다. 취향에 꼭 맞는 제품이 아니어도 취향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나이와 함께 쌓인걸까. 아직 먹어야 할 나이가 남아있는 듯 한데, 마냥 몸에 해로운 건 아니니 기꺼이 먹어도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