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마침표를 찍기까지

스테판 브리제 감독, 영화 <두 번째 계절>

by 코두 codu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시작과 끝조차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없는 커피 머신 때문에 컵 두 잔을 받치고도 넘쳐흐른 커피는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만다. 많은 선들에 연결된 마사지 기계에 다리를 묶인 마티유(기욤 카네)는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를 잡지 못해 전화를 놓친다. 침대에 누워 버튼 하나로 열렸다 닫히는 문은 편리하지만 무의미하다. 편안한 휴식을 위해 찾은 고급 호텔 리조트의 모든 것은 그렇게 멋지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불편하고 무의미하다. 마티유의 현재 삶이 꼭 그렇듯이.


마티유는 모든 것에서 도망치는 인물이다. 영화배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연극 도전을 앞둔 그는 첫 공연을 4주 앞두고 도망치고 만다. 그렇게 도망쳐 온 곳이 작은 마을의 고급 호화 리조트다. 이곳에서 마티유는 15년 전 도망치듯 헤어졌던 전 연인 알리스(알바 로르와커)와 조우한다. 알리스를 만난 마티유는 젊은 시절의 생기를 되찾는다. 시나리오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대중들을 위한 이미지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자신이 된다.


마티유가 알리스를 떠난 뒤 탄탄대로 성공적인 영화배우의 길을 걸어왔다면, 알리스는 우울하고 평범한 음악가의 길을 걸어왔다. 알리스는 마티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고 마티유를 향한 원망과 질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마티유를 향한 알리스의 감정은 지난 연인에 대한 미련이기도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자격지심이 더 강해 보인다. 알리스는 자신을 꺼내놓지 못하는 예술가다. 음악가를 꿈꿨으나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소박하게 살아간다. 그와 다르게 마티유는 모두가 알아보는 성공한 배우이다. 한 번도 펼치지 못한 꿈, 표현하지 못한 예술, 가지지 못한 성공과 명성. “뭐 하나 되는 일도 없는 초라한 여자”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새기며 굳어진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마티유를 만나 다시 꿈틀거린다.


마티유가 리조트에 묵는 마지막 날 알리스의 친구인 87세 레즈비언 뤼세트의 결혼식 파티에 참석하며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마지막에서도 마티유는 도망친다.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바꿔 하루 더 머무른다. 알리스에 대한 마음과 함께 본래 자신의 삶에서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 때문으로 보인다. 적절한 시기에 찍히지 못한 인연의 마침표가 그렇게 또 유예된다.


<두 번째 계절>은 한 연인이 지연된 이별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을 담는다. 한때 꿈과 사랑을 나누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두 명의 예술가는 각자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이만 하면 괜찮은 인생 같이라고 얘기하다가도, 이내 삐걱거리는 삶 속으로 돌아간다. “한 번은 제대로 헤어져야”만 하는 두 사람은 15년의 시간을 건너 마침내 헤어진다.


알리스가 사는 마을과 이어진 쭉 뻗은 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를 부감으로 비춘다. 처음에 그랬듯이 도로를 따라 마을을 빠져나간다. 결정을 위해 이곳에 왔던 마티유는 하나의 종결을 짓고 돌아간다. 그 종결은 배우로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결심과 동시에 어린 시절 헤어지지 못했던 연인과의 종결이며 예술가로서 어리광의 종결이다. 이 여행은 하나의 마침표가 되어 다음 문장을 시작하는 계기의 여정이다. 곧 이들의 다음 인생이 펼쳐질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