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 샤오시엔 감독, <해상화>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19세기말 상해의 한 고급 유곽의 술자리에서 시작하는 영화 <해상화>는 기루 밖의 세상을 비추지 않는다. 청나라의 상해라는 시공간은 희미한 배경으로만 존재하며 영화의 중심에는 유곽의 기녀들과 그곳을 드나드는 남성들의 관계가 위치한다. 19세기말 상해의 고급 유곽은 현재의 우리와 전혀 접점이 없을지 모르나 인생사는 모두 비슷한 법. 여성과 남성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현대 도시에 사는 여느 연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첫 장면부터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관객을 단숨에 상해 고급유곽의 술자리에 동석하게 만든다. 첫 번째 롱테이크 신으로 유곽에 당도한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순간도 그 공간을 벗어날 길이 없다. 그곳의 기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명의 남성 손님이 자리한 술자리에서 이들은 계속해서 어떤 놀이를 한다. 상대와 같은 수를 내면 지는 일종의 묵찌빠와 같은 이 놀이는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승리할 수 있다. 남자들은 술자리에서는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고, 기녀들의 방에서는 식사를 하거나 아편을 피운다. 기녀들은 중독을 경계한다. 이 판에서 정신을 바로잡지 않으면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은 언제나 기녀 자신이다. 그들에게 손님과의 만남은 생존과 자유가 걸린 게임의 연속이다.
유곽을 드나드는 고위 관리와 돈 깨나 있는 도련님들은 자신과 잘 맞는 기녀를 찾는다. 기녀들에게는 마음과 돈을 바쳐줄 남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남자들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이들의 자존심과 이해타산을 능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쌍옥은 주도령이 자신과 결혼하려 하지 않자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기녀를 정부로 들일 수 없었던 주도령의 가문은 쌍옥에게 몸값 오천과 시집 밑천 오천 냥을 주고 합의한다. 취봉은 주나리의 도움을 받아 은 천냥으로 독립한다. 소홍(하다 미치코)과 관계에 금이 간 왕나리(양조위)는 장혜정을 첩으로 들이고 관동으로 전근을 간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유를 얻은 기녀들은 제각기 유곽을 벗어나 나아간다. 저마다의 어려운 사정과 기구한 어린 시절이 있을 테지만 이들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다. 고급 기생으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은 생이었을 것이다. 좋은 손님, 즉 자신을 자유케 해 줄 남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생존방법인 세계에서 이들은 저마다의 분투를 벌인다.
그러나 모든 기녀와 손님의 관계가 돈으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서로의 진심을 원하고 가정을 이루기 원하기도 한다. 외교 관리인 왕나리와 기녀 심소홍은 약 5년 동안 관계를 맺어온 깊은 사이다. 소홍은 자신의 빚을 갚아주지 않는 왕나리를 원망하는 듯하고 왕나리는 소홍이 마음을 풀어주기만을 기다린다. 왕나리가 장혜정을 찾은 이후로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기녀와 손님 그리고 연인 사이의 관계에서 질투와 애증이 뒤섞여 버린다.
38개의 롱테이크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서 이들의 마음을 비추기 위해 적지 않은 신을 할애한다. 한 신은 하나의 컷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나의 컷이 끝날 때마다 화면은 어둡게 암전 되었다가 밝혀진다. 암전 이후 다시 빛이 비추어졌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같은 공간 혹은 전혀 다른 공간의 인물들이다. 하나의 촛불이 꺼지고 다음 촛불이 켜지는 듯한 신의 연속과 은은한 조명은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편이라도 한 듯이 몽롱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영화 속을 부유하다 보면 막막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점멸하는 시선 가운데 기녀들의 삶과 사랑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사라진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19세기 상하이의 유령과도 같은 인물들과 그들의 삶을 1990년대 대만의 모습 위에 겹쳐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