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의 빈자리를 채우는 기록

오모리 켄쇼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by 코두 codu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생의 의지, 창작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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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류이치 사카모토는 4기 암 진단을 받는다. 그는 삶의 남은 시간을 음악 활동에 쏟기 위해 수술을 받기로 한다. “두 가지 시간. 시간에 쫓기는 시간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시간.” 무엇보다 분명한 죽음이라는 마감을 앞에 두고 음악을 만들겠다는 거장의 의지는 초연하나 단호하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서 음악을 찾아냈던 음악가에게도 음악이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병상에 누운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을 듣는 일에 너무 많은 열량이 필요하여 빗소리가 담긴 동영상만을 겨우 음미한다.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자연의 소리는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중 음악의 원점은 구름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구름의 움직임과 달의 소리마저도 음악으로 표현해내고자 했던 음악가는 자신의 70세 생일에 올려다본 보름달을 기록으로 남긴다. 자신의 생에 남은 보름달을 헤아리는 마음은 아쉬움과 조급함에 머물기보다 창작으로 나아간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 푸티지에서 야윈 몸보다 형형하게 살아있는 눈빛이 반짝이는 이유다.


생의 마지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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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는 이미 몇 차례 다큐멘터리를 통해 음악과 삶을 보여주었다.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의 차별점은 타계 전 마지막 시간을 담고 있다는 것과 사후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죽기 직전 모습을 생생하게 담는 데 집중하기보다 사후에 그의 기록을 모아 재구성한 듯한 방식을 띠고 있다. 가족 및 친지 그리고 의사의 인터뷰 장면에서 이들은 떠나간 류이치 사카모토를 회상하며 이야기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는 그 부제에 걸맞게 자필로 남긴 일기와 핸드폰으로 작성한 메모, 그가 직접 찍은 사진, 영상과 음성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모리 켄쇼 감독은 구태여 어떤 장면을 연출하여 촬영하지 않고 세심하게 그러모은 기록으로 타계 전 3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간결하고 조심스럽게 재구성한다.


빈자리를 담는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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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이자 배우인 다나카 민의 음성과 건반의 움직임으로 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무엇보다도 류이치 사카모토의 빈자리를 중점적으로 담고 있다. 도입부의 화면 속 피아노 건반은 홀로 움직인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 순간 이미지가 아닌 소리와 음악으로 존재한다. 피아노 위뿐만 아니라 그가 앉았던 작업용 책상 앞, 침대 위의 빈자리를 비추며 카메라는 가만히 공간을 응시한다. 육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언제나 그의 음악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으로 일기를 대신해 가장 중요한 기록을 남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아시아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음악 감독이자 배우. 전쟁, 환경, 자연재해 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활동가였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삶을 짧게 축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고인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인물이 가진 힘과 에너지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대미라고 할 수 있는 NHK 스튜디오의 연주 장면은 남다른 압도감을 자랑하나 네오 소라 감독의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와 흡사하게 느껴진다. 영화 <마지막 사랑>(1990)의 ‘The Sheltering Sky’ 연주를 중심으로 보여주고 이내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의 마지막 콘서트였기에 중요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은 아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이 영화가 보는 이들 각자의 삶에 얼마간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 극장을 나서고 난 후 하늘을 보셨으면 좋겠다. 개봉 다음날인 4월 2일은 보름달이 뜬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모두가 한 번쯤 하늘을 올려다보고, 달과 구름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 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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