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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Feb 26. 2020

홀로 걷는 여성의 야성성

영화 <Wild>(2014) 리뷰


자신과 비슷한 몸집의 짐을 등에 이고 홀로 길을 걷는 여자가 있다. 왜 외롭고 힘든 길에 스스로 오르는가? 홀로 걷는 것만으로 과연 자신을 찾을 수 있는가? 그런 것 없어도 인생은 고통스럽고 힘겨운데, 왜 사람들은 굳이 힘든 길을 걸으려 하는 걸까?


우리는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하고는 한다.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인데 그 길에는 숱한 갈등과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 길은 인생보다 단순한데도 우리는 길 위에서 방황하고 고통스러워 그만두고 싶어 한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고 해도 말이다.


Jean-Marc Vallée 감독의 영화 Wild (2014)


영화는 셰릴의 90여 일간의 하이킹을 따라간다. 셰릴은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엄마, 마약과 이혼까지 다사다난하기 그지없는 그동안의 삶을 뒤로한 채 길에 오른다. 하지만 현실에 지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뒤로하고 여행을 떠나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같은 영화의 톤은 아니다. 셰릴의 여정은 낭만보다는 고통의 연속이다. 셰릴의 지난한 하이킹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그의 과거를 엿보게 된다. 하이킹 중 맞닥뜨리는 많은 사건들에서 셰릴은 과거의 그림자를 계속해서 마주한다.

셰릴의 엄마 바비(Laura Dern)


셰릴의 엄마는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하시는 사람이었다. 셰릴과 그의 동생은 엄마를 ‘자신의 전부’라고 말한다. 자신의 전부를 잃고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엄마의 죽음 이후 마약과 섹스로 계속해서 자신을 잃어간 셰릴이 하이킹을 결심한 것은 어쩌면 놀랍지 않다. 자신을 잃었음을 알게 된 사람만이 자신을 찾으려 하는 법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 셰릴의 가방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 사람을 압도할 지경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필요치 않은 것을 버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필요하지 않지만 나는 버릴 수 없는 것을 남기며 진정 필요한 것을 솎아낸다. 셰릴은 신발이 자신의 발을 옥죄는 작은 사이즈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은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 사람은 자신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은 셰릴의 인생에서 필요한 것을 솎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셰릴이 하이킹을 하는 데 위협적인 요소는 더운 날씨와 야생 동물, 험악한 지형이 아니다. 바로 남자다. 극 중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부분들은 모두 남성과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분명 착한 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계의 대상이다. ‘부랑자 타임스’의 남성 기자는 셰릴을 인터뷰하며 페미니스트냐고 묻는다. 남성들의 호감을 얻고 도움도 받기 때문에 부럽다는 남성들에게는 셰릴이 받는 위협이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고행길에 오른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보는데 이 영화의 의의가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 왜소한 체격의 여성이 자신 안의 야성성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영화이기에 더욱 좋다. 우리 안의 야성성을 깨우면, 어디든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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