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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Nov 16. 2019

88개의 건반만으로도 완벽한 세계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우물 안 개구리, 새장 속의 새. 우리는 자신의 공간 안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사람을 답답하게 또는 안타깝게 여긴다. 그 좁은 공간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얼마나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는데! 그런데 그런 말은 우리가 바깥에 있는 사람이고 그들이 안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때로 자신의 세상에서 나가는 것이 죽기보다 어려운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이 아는 세상보다 넓은 세상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뛰어들 수 있는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세계, 그것으로 완전한 세계를 찾은 사람은 흔치 않다.




 트럼펫 연주자인 ‘맥스 투니’는 자신의 트럼펫을 팔기 위해 악기상을 찾는다. 그가 팔기 직전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은 늙은 악기상 아저씨를 놀라게 한다. 자신이 찾던 낡은 레코드의 음악과 같은 멜로디였기 때문이다. 이 곡을 어떤 사람이 만들고 연주한 것인지. 여기서부터 전설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때는 1900년이 시작되던 날, 여기 이민자들을 태우로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커다란 함선 ‘버지니아 호’가 있다. 1등석 선실 바닥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줍고 있던 석탄실 노동자 데니 부드맨은 피아노 위에서 제법 신기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레몬 상자에 담긴 아이였다. 데니는 아이와 함께 살기로 한다. 아이의 이름은 이것저것 한마디씩 보태어지다 보니 ‘데니 부드맨 TD 레몬 나인틴 헌드레드’가 되었다. 배에서 데니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그 날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몇 년 후 데니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나인틴 헌드레드는 홀로 남게 된다. 그는 정처없이 배를 돌아다니다가 연회장을 엿보게 된다.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시선의 끝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그날 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 피아노 연주는 배 안의 모두가 한 밤중에 일어나 듣고 싶게 만들 정도로 훌륭했다.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렇게 배의 전속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젊은 트럼펫 연주자였던 맥스는 버지니아 호에 오른다. 그리고 뱃멀미와 함께 나인틴 헌드레드를 만나게 된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자유롭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배 위에서 함께 커갔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재즈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제리와의 피아노 대결이다. 처음에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와의 대결을 내키지 않아 한다. 피아노에 불 붙인 담배 한 개비를 걸쳐 놓은 제리는 피아노 위에 담뱃재가 떨어지기 직전에 연주를 훌륭하게 마친다. 나인틴 헌드레드는 이에 그저 감동할 따름이다. 이어 그가 친 곡은 ‘고요한 밤’. 


 두 사람 모두 피아노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나인틴 헌드레드는 본능적으로 제리가자신과 비슷하게 피아노에 대한 감정을 지녔다고 느꼈던 건 아닐까? 두번째 대결에서 나인틴 헌드레드는 제리가 친 것과 같은 곡을 연주한다. 그에게 바치는 존중, 존경, 경외심으로 보인다.

 마침내 세번째 순서가 돌아왔을 때, 그는 불이 붙지 않은 담배 한 개비를 제리와 똑같이 올려놓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혼신의 연주를 해낸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고 담배를 피아노 줄에 대자 담배에 불이 붙는다. 기적을 행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피아노에 의해, 음악에 의해 구원받은 자들이다. 누가 구원을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가, 아름답게 전달하는가. 그 대결에서 나인틴 헌드레드가 기적을 행하며 승리했다.


 나인틴 헌드레드는 배 안에서 평생을 지낸 사람이다. 이런 그에게도 사랑의 감정은 찾아왔다. 레코드를 녹음 중이던 나인틴 헌드레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첫 눈에 반하게 된다. 창문 너머를 응시하며 연주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은 그대로 레코드에 담긴다. 그는 사랑이 담긴 레코드를 대중에게 파는 대신 한 사람에게만 전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전해주지 못 한다. 그의 사랑은 그렇게 한 순간 끝난다.


사실 그도 배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리려 했으나 끝내 내리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버지니아 호의 폭발을 앞두고 맥스는 배 안으로 전설을 찾으러 간다. 마침내 나인틴 헌드레드를 발견하고 도시로 함께 가자고 설득한다. 하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는 거절한다. 그리고 배 안에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의 마지막 연주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피아노를 보자 마자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배 위에서만 평생 살다 죽었다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데 배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고? 도시에 사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왜?

나인틴 헌드레드에게 보이는 도시는 거대한 빌딩 숲 그 자체다.

그는 도시는 너무 크고 복잡하다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한함이라고 말한다. 88개의 건반과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무한한 음악의 세계와 흔들리는 바다가 그의 삶이다. 나인틴 헌드레드에게 있어 버지니아 호는 자신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완전한 공간이다. 그가 육지로 나가는 것은 지금 우리가 우주로 나가는 것과 비슷한 두려움이 아닐까? 


그의 공간은 버지니아 호 한 척과 무한해 보이는 바다가 함께 한다. 그의 세계는 88개의 건반이 있는 피아노와 무한한 음악이 공존한다. 작지만,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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