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불안하고 무기력하지만 꾸물꾸물 살아가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항상 우울하고 비관적인 인공지능 로봇이 나온다. 나는 때때로 그 로봇과 흡사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우울이 언제나 기본적으로 깔려있고, 모든 일에 비관적이었으며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조금 건강할 때는 여기에 활력 한 스푼과 긍정적인 마음이 더해진다. 그렇다고 인간 자체가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라 높은 텐션이 되지는 않는다. 우울한가? 조금은 우울하다. 불안한가? 가끔씩 불안함이 찾아온다. 무기력한가? 그렇게 의욕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꾸물꾸물 뭔가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꾸물거리며 뭔가를 한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 특히 스스로 일을 잘 벌리지 못하고, 뭔가를 시작하면 그럴듯하고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에게 아주 좋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적절한 것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시작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쓸데없는 일을 허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뭔가를 창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때가 가장 건강한 순간이다. 누구나 자신의 창의력, 창조력을 뿜어내며 살아야 건강해진다. 솔직히 언제나 그런 상태일 수는 없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은 바닥과 일체가 되어 무엇도 할 의욕이 없으며 누가 뭘 시키기라도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는 데에 하루의 에너지를 쓰며 산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하루에 내가 해야 하는 무언가를 정해둔다.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여기서 '무엇'은 흔히 어른들이 묻는 "너는 무슨 직업을 가질 거니? 뭘로 밥 벌어먹고 살거니?"의 그 '무엇'이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하면서 살고 있다. 밥이야 먹고살아야겠지만 어떤 안정적인 수입은 아직 없다.
엉망으로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 몸이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가까운 이의 죽음 같은 커다란 불행을 겪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울과 불안, 무기력한 채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큰 고난을 겪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최소한의 밑바탕이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나는 지금이 내 삶의 골조를 다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삶에 대해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 바로 조급하면 망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뭔가 하나는 삐끗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삐끗한 지점에서 도미노처럼 우수수 쓰러지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게 순간순간 다잡아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건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생존법이다. 사실 그냥 일기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이 글쓰기가 나를 단단히 받쳐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같은 시기를 겪고 있을 누군가와 미래에 다시 힘들어할지 모를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