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우주와 과학 발전의 전반적인 역사는 몇 번을 들어도 재밌다. 이 말인즉슨 계속 듣는데도 계속 이해가 안 된다는 소리다. 솔직히 너무 방대해서 한 번에 전부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반복해서 읽으면 언젠가는 알겠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읽어볼 뿐이다.
그중에서도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가장 위트 있게 알려주는 책이다. 우선 어려운 말이 거의 나오지 않고, 쉽게 설명해주며 유머가 곳곳에 녹아 있어 책이 잘 넘어간다. 과학 분야의 도서가 낯선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저자는 빅뱅부터 원자와 양자역학, 화석과 환경문제까지 전반적인 우주와 물리학의 역사를 쫙 훑어주는데 그 연결이 정말 자연스럽다. 읽다 보면 어느새 다음 챕터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과학자들이나 학계 내의 살벌한 신경전 혹은 대중들의 반응 같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짚어내는 데에 있다. 읽다 보면 지금 우리가 배우는 지식 하나를 밝혀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알 수 있다. 악의와 무지 그리고 사소한 오류들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린 진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다.
그가 알아낸 사실들은 모두 정확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누구도 그와 비슷한 것을 보거나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결론은 대단히 과감한 것이었다.
<성난 이빨을 드러낸 과학>105p
그러나 대부분의 성과는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몇몇 유명한 사람들의 업적이 되고 말았다. 셸레는 1772년에 산소를 발견했지만, 여러 가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이유 때문에 그의 논문은 제때에 발표되지 못했다.<근원적인 물질>119p
그런데 콘웨이 모리스는 수없이 많은 서랍에 가득한 화석들이 전혀 새로운 문에 속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화석을 발견한 사람이 그런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생명의 행진>368p
어떤 진실이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기반이 필요하다. 마치 진실이 스스로 밝혀질 시점과 적당한 사람을 고르는 듯하다. 그렇기에 모든 업적에서 이름이 남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의외로 타이밍이다. 같은 내용의 논문도 언제, 누가 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은 천지차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대학원 학생들의 활약이 굉장하다. 대학원은 원래 그런 발견을 하기 좋은 시기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리 퀴리 역시 대학원 학생 시절 방사능을 발견했다. 지위와 분야를 막론하고 어떤 특별함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원자들은 신기할 정도의 영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수명이 아주 긴 원자들은 정말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당신의 몸속에 있는 원자들은 모두 몸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몇 개의 별을 거쳐서 왔을 것이고, 수백만에 이르는 생물들의 일부였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우리는 정말로 엄청난 수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나면 그 원자들은 모두 재활용된다.
<위대한 원자>158p
나는 '환생'이나 '사후세계'를 이런 메커니즘으로 받아들인다. 나를 이루는 무엇인가가 모여 있다가 흩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하나이며, 우주와 하나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온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 원자는 다시 우주로 돌아갈 것이다. 원자의 작동원리는 우주만큼이나 신비롭다. 가장 좋았던 파트다.
결국 우리는 나이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도 없고, 거리를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별들에 둘러싸여서, 우리가 확인도 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채워진 채로,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물리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셈이다.
<머스터 마크의 쿼크>201p
지구본에서 지금 볼 수 있는 모습은 지구 역사의 0.1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간에 만들어진 대륙들의 스냅사진에 불과할 뿐이다.
<움직이는 지구>212p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위가 떨어지지도 않고, 지진이 일어나지도 않지요. 새로운 분출구가 갑자기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면서도 정말 놀랍고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지요."
<위험한 아름다움>268p
인간은 정말 지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안전하다고 믿고 살아가는 걸까? 그렇기에 인간의 불안은 필연적인 걸까? 지구의 역사는 길고 불안정하고, 인간의 역사는 너무나 짧지만 안정적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안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심지어 인간들은 그 두 손으로 끝을 앞당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가 비정상적으로 평온한 시기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인간은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들의 찰나를 위해 지구에 너무 많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57~958년에는 이미 10년 이상 상당히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을 바다에 버리고 있었다. 미국은 1946년부터 55갤런(200리터) 짜리 드럼에 넣은 방사성 폐기물을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피랄론 제도로 싣고 가서 바닷속으로 던져버렸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 그런 일들이 바다 밑에 사는 생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별 영향이 없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바다 밑의 생명에 대해서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화려하고 찬란하게 모르고 있다.
<망망대해>317p
지금과 같은 안정적인 기후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믿을 이유는 없다.
<빙하의 시대>484p
지금 일어나는 온갖 자연재해는 업보다. 문제가 없을 수 없게 만들어 놨다. 이미 저질러 버렸으니 돌이킬 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편리함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오염 역시 감내해야 한다. 결국 좋든 나쁘든 운명 공동체다. 기술의 발전으로 덕도 보지 못했는데 기후위기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생명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소망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존재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지의류에게 생명이란 무엇일까? 지의류가 존재하고 싶어하는 충동은 우리만큼 강하거나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다.
<모두에게 작별을>379p
우리가 반드시 여기에 존재해야 할 당위성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입장에서 진화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 인간을 만들어내도록 계획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의 자만심에 불과하다.
<신비로운 이족 동물>504p
우리는 모든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불만스럽고, 힘이 빠지고, 심지어는 화가 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행성에서 살고 있다.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현대 과학의 여러 분야를 살펴보면서 언제나 가장 경이로운 사실은, 비용이 많이 들고 비밀스럽기까지 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 평생을 바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점이다.
<존재의 풍요로움>417p
모든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처럼 복잡하게 보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속에도 생명체가 작동하는 방법에 숨겨져 있는 근본적인 통일성 때문에 나타나는 단순성이 숨어 있다. ...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단 하나의 계획에서 비롯되었다. ... 모든 생명체는 하나이다.
<생명의 물질>468p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인간을 이토록 강한 존재로 만들었지만, 현재로써는 그 오만함이 모두를 망가트리고 있다. 우리에게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 방법은 모두를 돌보는 방향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호모 에렉투스가 병든 동료를 돌보았듯이 말이다. 호기심은 일종의 돌봄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평생을 바쳐 연구하려는 정신은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알맞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마지막 장 <안녕>에서 우리가 '종말이 찾아오지 않도록 하는 비결을 찾아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종말이 온다면 우리가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우리는 종말을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내려놓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 오만함을 내려놓고, 주변을 돌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