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마음>
나는 냉철한 머리로 새로운 사실을 말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견해를 말하는 편이 진짜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10여 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일본 정신의 근간이 될 작품들을 써냈다. 소세키의 마지막 작품인 <마음>(1914)은 변화의 시대를 맞은 지식인들의 불안과 인물들 사이의 마음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작품이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고뇌와 감정은 백여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절절히 와 닿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마음>은 총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선생님과 나]에서 화자 '나'는 가마쿠라에서 우연히 선생님과 만나 가까워진다. 선생님은 인간관계에 회의적이지만 '나'는 선생님과 가까워지려 노력한다. '나'는 선생님의 고결한 태도를 존경하며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선생님은 그런 '나'의 호기심이 한 때의 것이라 생각하며 거리를 두려고 한다.
[2장 양친과 나]에서 '나'는 아버지의 지병이 악화돼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나'는 시골에 사는 촌스러운 양친과 도시의 엘리트인 선생님을 비교한다. 괜찮아지는 듯하던 아버지의 병세는 악화됐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가 취업하기를 바라신다. '나'는 내키지 않지만 선생님에게 취업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다.
'나'는 선생님을 직접 뵙지 못하고 마지막 답장을 받는다. [3장 선생님과 유서]는 선생님의 편지가 그대로 옮겨져 있다.
작품 속 천황폐하의 서거는 시대의 변화를 의미한다. 도시는 점점 더 발달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화되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 역시 도시를 선망하며 점차 도시화되고 있다. '나'는 자신의 양친과 선생님 내외를 비교하며 도시와 엘리트에 대한 선망을 드러낸다. 시골과 도시, 부모세대와 자식 세대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아무리 긍정적인 변화라 하더라도 기성세대에게는 불안함을 젊은 세대에게는 조급함을 안겨준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의 불안함과 조급함은 우리의 옆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능한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팔 벌려 안아 주지 못하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소설 속에서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는 선생님과 '나' 그리고 K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이다. 이들이 느끼는 고독함은 끈질긴 사유의 결과이기도 하다. 작품 속 '나'의 양친이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벌이려는 장면이나 아가씨와 아주머니 같은 여성들의 친근한 태도는 남성 지식인들과 대비된다. 소설 속의 지식인들은 조심스럽고, 고집스러우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온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찾고 있지만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작품은 사회적, 개인적으로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의 불안을 포착한다. '나'는 학생과 사회인 그리고 시골과 도시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나'의 무소속의 상태는 그의 단순한 면모를 통해 드러난다. '나'는 엘리트인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를 의아해한다. "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고집스럽게 경계에 서 있으려 하는 인물이다. 선생님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 어디에도 속하기를 포기했다. 현실과의 단절이 스스로 내린 단죄인 것이다.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사람을 신뢰해 보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되어 줄 겁니까? 당신은 정말로 진지한 겁니까?
선생님은 부모님을 잃은 뒤 믿고 따르던 작은 아버지가 유산 때문에 자신을 이용했음을 알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인간은 돈 때문에 쉽게 서로를 배신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경험 이후 선생님은 돈을 믿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의심과 후회로 에고이스트가 된 후에도 선생님은 친구 K와 아가씨에게 애정을 주었다. K는 어려운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친구였고 아주머니와 아가씨는 그의 돈을 탐내지 않았다. 돈은 믿지 않아도 사랑은 믿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강한 에고이즘은 결국 K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아가씨에 대한 사랑은 K를 향한 질투심과 열등감으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사랑 때문에 친구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선생님에게 사랑은 '신성하고 죄악'인 것이 되었다. K의 죽음은 선생님의 남은 삶을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었다. 평생토록 선생님을 옭아맨 타인에 대한 불신은 죽기 직전에야 그를 놓아준다. '나'는 선생님을 동경하는 인물로 결국에는 그의 모든 과거와 마음을 알게 된다. 선생님은 사실 살아있는 동안에 누구도 신뢰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실이 도달하기 전에 죽음으로 도망쳤으므로.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도 모든 것을 알려하는 것도 누군가의 인생을 감당할 책임이 동반되는 일이다. 솔직하고 투명한 사람이 되기란 정말 어렵다. 진실을 전하면서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렵고 고귀한 태도인가를 느끼게 한다. 선생님의 유서는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나'의 회고록과 같은 이 소설 역시 선생님의 유서처럼 삶과 마음을 전하려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소설 속 선생님처럼 나쓰메 소세키가 우리에게 남기는 유서가 아닐까.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그 사람의 과거와 그로 인해 다듬어진 생각을 속속들이 알아보겠다는 것은 견뎌내야 할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다하여 나눌 수 있다면 훌륭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버지와 선생님의 친구 K와 그리고 선생님의 죽음의 무게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뜨거운 혀로' 뱉어진 '평범한'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이 모든 걸 받아들일 너른 마음이 나에게 있기를 바란다.
다만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여성이 도구적으로 이용되고, 지극히 순종적으로 표현되는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도 모른 채로 외롭게 살아야 했던 사모님의 마음을 현대의 우리는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