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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Jun 18. 2021

영화 <아메리칸 뷰티>가 찝찝한 이유

날 위한 영화는 아니었음을...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해 "중년 남성의 인생영화"다.

말 그대로 중년 남성의 인생을 다룬 영화이기도 하고, 중년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인생 영화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편 진리를 특정 계층의 특정 성별만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한다.

중년 남성

중년 남성에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감수성을 가진 분




인생의 보편 진리를 말하기 위해 일반화와 대상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메시지는 사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의 메시지와 같다. 표현 방식이 매우 다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소울>을 보고 감동을 받고, <아메리칸 뷰티>를 보고 찝찝해진 것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 장르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은 삶의 무기력에 잠식당한 중산층 남성 레스터 버넘(케빈 스페이시)이다. 그는 아침에 샤워하면서 자위하는 게 유일한 낙이다. 아내 캐롤린 버넘(아네트 베닝)과의 관계도 멀어진 지 오래다. 레스터는 억지로 간 딸 제인(도라 버치)의 치어리딩 공연에서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한눈에 안젤라에게 성욕을 느낀다.


숨겨져 있던 욕망과 콤플렉스가 뒤엉키고 폭발하는 순간 영화는 가장 평화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불안정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와 비극은 그 한순간을 위해 쌓아 올려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각각의 인물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욕망을 지니고 있다. 레스터의 인정 욕구와 성적 욕망, 캐롤린의 완벽주의, 제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과 자유에 대한 욕구, 리키의 관음증, 안젤라가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 등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 욕망을 자제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며 사회화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미성년자는 물론 성인조차도 자신의 욕망을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실패한다. 이는 각박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겠으나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각 특정 인물 군상을 일반화하고 있다. 모두 '저런 사람은 항상 저런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저런 식으로 행동해'라는 편견을 내재화한 캐릭터다. 여기에 미성년자 여성의 대상화가 더해진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욕망의 주체가 권력이 있는 중년 남성이며, 욕망의 대상은 10대 여성이다. 이들이 가진 권력과 위계에는 차이가 있다. 더욱 심각한 건 안젤라가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중년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것도 주체적으로.


물론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 수 있다.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은 10대 여성이 왜 없겠나. 그러나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라는 10대가 자신을 성적으로 생각하는 중년 남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은근한 터치를 하고 야릇한 눈빛을 보낸다고 해도 이 둘이 성적으로 접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설사 그 아이가 '순결한 처녀'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영화 속 레스터의 목표는 아이와의 성적 접촉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애쓴다. 이는 당연한 남자의 욕망이고, 이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의 욕망을 표출하면서 살 거니까 안젤라와도 자겠다는 그의 의지는 미안하지만 정상이 아니다. 그게 평범함이라면 그 평범함은 위험한 수준이므로 격리 혹은 교육이 필요하다.


레스터가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이입하는 것이 흡족한 영화 감상을 이끌어낸 이유는 레스터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죽음으로써 속죄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레스터에게 이입하여 감상한 관객은 깔끔하게 메시지와 카타르시스만을 얻고 영화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결국 중산층 중년 남성인 주인공 레스터에게 이입할 수 없다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의 기분은 찝찝할 수밖에 없다.



굳이 그 메시지 때문에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볼 좋은 영화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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