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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Jun 29. 2021

'타임리프'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영화 <나비효과>(2004) 리뷰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수많은 후회를 남기며 살아간다. 선택받지 못한 길은 곱절의 후회를 만들어내 우리의 발목에 무겁게 매달려온다. 어떤 선택은 그 중요성이 남달라서 숨통까지 조여 오기도 한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지키는 그런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을까?


특정 시간으로 돌아가는 '타임리프' 소재의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인 <나비효과>는 과거의 작은 선택이 현재 인생의 모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를 오가며 예측 불가한 전개로 긴장감을 고조시켜 스릴러 장르로써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타임 리프라는 소재와 주제도 잘 연결시킨 작품이다. 혹시 아직 보지 않았다면 어떤 정보도 보지 않고 일단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비효과



유년시절에 종종 기억상실을 겪었던 에반(애쉬튼 커쳐)은 유실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7살 무렵부터 자세한 일기를 써왔다. 에반이 잃어버린 기억의 빈틈은 그가 겪은 충격적인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순간들이었다. 대학생이 된 에반은 우연히 어린 시절의 일기를 다시 읽게 되고, 잃어버렸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에반의 일기는 그를 과거의 순간으로 보내주었다. 과거를 바꿀 수 있음을 깨달은 에반은 첫사랑인 케일리(에이미 스마트)를 지키기 위해 과거를 바꾼다.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순간으로 돌아가 모두를 구할 수 있을까?


영화 <나비효과>는 유년시절의 트라우마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극복해나가는 지극히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작품이다.



트라우마로 되돌아가기


영화는 오프닝에서 나비의 날개는 뇌 엑스레이 사진과 겹쳐진다. 이 작품을 SF 시간이동물로만 즐기는 것도 충분히 좋은 감상이지만, 필자는 심리적, 정신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라는 데에 좀 더 무게를 두고 보았다.


기억 상실은 미래의 자아가 틈입할 영화적 장치임과 동시에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 문제이기도 하다. 타임 리프라는 설정 없이도 기억상실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겪은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아동 성착취 영상물을 찍도록 강요당하고, 위험한 장난으로 타인의 목숨을 해친 순간, 애완견이 죽는 사건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방어기제다. 에반과 함께 사건을 겪은 당사자인 케일리와 레니는 트라우마의 기억을 지니고 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성장한다.


트라우마로 해리성 기억상실을 앓고 있는 사람이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려 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와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일일 것이다. 에반이 기억을 통해 '타임리프'를 하고 과거를 바꿀 때마다 뇌는 20년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즉 에반의 뇌는 수십 년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에반이 트라우마 상황으로 계속해서 되돌아가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케일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위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 에반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자신의 상처와 깊은 감정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좋은 치유법이다. 하지만 에반이 하고자 한 것은 아버지인 제이슨의 말처럼 '신 노릇'에 지나지 않는다. 케일리에 대한 죄책감, 레니에 대한 죄책감, 토미를 향한 복수심. 이는 모두 에반의 욕망일 뿐이다. 


이 윤회와도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욕망을 버리는 길밖에 없다.



후회 없는 선택이 있을까?


'내가 그때 이런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상상을 할 때 우리는 현재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행동이 어떤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의 인생은 체스나 바둑 같은 게임이 아니다. 하물며 한낮 게임의 경우의 수조차 알 수 없는 인간이 삶의 경우의 수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흉터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치유할 힘도 있다는 걸까?"



에반은 케일리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을 원했고,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몇 번을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해도 에반이 바라는 행복한 결과는 실현되지 않았다. 에반은 계속해서 다른 선택을 했고, 언제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끔찍한 현재와 마주했다. 언제나 더 큰 흉터만 남았다.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주려 할수록 자신의 고통이 늘어난다. 에반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자신의 흉터와 치유다.


영화에서는 다른 인물들이 각자의 불행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에반이 고통스러운 삶을 반복하는 것은 윤회사상과도 닿아있다. 에반은 수많은 윤회 끝에 후회를 남기는 선택을 하지만, 그 후회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후회 없는 선택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후회와 마주해야만 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보내주어야 한다.



욕망과 트라우마의 극복



"난 내가 누군지 알아"


타임리프를 경험하기 전에 에반은 '나도 날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런 에반이 이제는 일기장을 태우며 '일기장이 없어도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라고 말한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지도, 현재를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케일리와의 첫 만남에서 인연을 시작하지 않는 것. 케일리를 놓아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놓아버리는 일이다. 에반은 케일리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한다. 자신의 욕망과 케일리의 행복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자각했기 때문이다. 에반은 자신이 놓아야 할 것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케일리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그를 붙잡지 않는다. 에반에게 후회와 미련과 욕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케일리를 보내준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오만과 케일리에 대한 욕망을 버린 것은 에반의 정신적 성장을 의미한다. 길고 긴 삶의 윤회 끝에서 에반이 놓아버린 것은 단 하나, '욕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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