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아네트>(2021)
영화 <아네트>는 "숨도 쉬지 말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화면은 시각과 청각의 싱크를 맞추는 듯 조율과 점멸이 반복되고 마침내 영상과 사운드는 하나로 연결된다. 딸 나타샤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레오 카락스 감독의 "시작"이라는 말에서 시작한 롱테이크는 밴드 '스파크(Sparks)'에서 배우애덤 드라이버와 마리옹 코티야르로 이어져 거리로 나선다. 두 배우는 각자의 옷을 걸침과 동시에 캐릭터를 걸친다. 애덤 드라이버는 '헨리'로 마리옹 코티야르는 '안'으로 변모한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조율의 순간부터 공연의 시작이듯, 영화는 이야기로 진입하기에 앞서 무대에 오르기 전의 연기자들까지 영화에 담아 넣는다.
이후 펼쳐지는 열렬한 사랑과 차가운 갈등은 익숙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성기의 코미디언 '헨리'와 오페라 배우 '안'은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다. 그 진부함을 채워주는 것은 이들의 생동적인 노래다. 남들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도 사랑 노래는 듣는 것처럼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 역시 노래로 하면 다르다. 연인 사이에 아기 '아네트'가 태어난 후 헨리의 인기는 떨어지고, 안의 인기는 더욱 치솟는다. 위축된 헨리는 안이 "노래하며 죽어가는 동안 난 애를 본다"라고 처지를 불평하는데 사실 아네트는 방치되어 있을 뿐이다. 헨리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떠난 요트 여행에서 가족은 폭풍우를 만나 안은 목숨을 잃는다. 거센 폭풍 속의 배처럼 위태로운 가족의 비극 앞에서 영화 <아네트>는 빛나는 별을 보는 대신 더 깊은 심연을 따라간다.
"사람들의 적개심을 없애기 위해" 코미디언이 됐다는 희극인은 사람을 죽이고, 무대 위의 죽음으로써 관객을 구원한 배우는 저주를 남긴 채 죽는다. 아네트는 연인의 사랑으로 태어났을지 몰라도 엄마의 저주와 아빠의 탐욕으로 자라났다. 아기 아네트는 부모의 인형이다. 영화 속에서 아네트의 모습이 마리오네트인 것은 비단 아동 착취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네트가 마침내 살아있는 아이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래하지 않기를, 아빠를 용서하지 않기를, 사랑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아니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아네트의 재능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아빠를 향한 엄마의 저주다. 그렇기에 아네트는 재능 대신 자유를 선택한다. 그 앞에서 아빠 헨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한 가족의 비극이 예술적으로 그려지는 동안 관객은 숨도 쉬지 못한 채 휩쓸려야 했기에 나는 극장을 나서며 괴로움과 자유를 느꼈다. 영화 <아네트>가 그려낸 영화적 경험은 극장의 그림자 또한 예술의 일부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