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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Mar 29. 2022

착한 딸이 아니라 레서판다가 되는 건 어때?

도미 시 감독 <메이의 새빨간 비밀>


13살의 메이(로잘리 치앙)는 하루아침에 “끔찍한 붉은 괴물”이 되고 말았다. 침대가 부서질 정도로 무겁고,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크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폭신폭신한 레서판다로 말이다. 학업 성적 우수, 교우관계 원만, 부모님 공경까지 완벽한 착한 딸 메이가 어쩌다 레서판다가 되었을까? 메이는 엄마 밍(산드라 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한창 사춘기의 메이는 엄마 몰래 보이그룹 ‘4 타운’을 좋아하고, 수학 문제를 풀다가도 데이지 마트의 점원 데번이 생각나 들끓는 마음을 낙서로 풀어낸다. 엄마가 바라는 딸의 모습에서 멀어질수록 메이의 내면에는 자책과 분노 그리고 성적 욕망이 쌓여간다. 조상 ‘선 이’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전통으로 내면의 응축된 감정이 격해지면 레서판다로 변한다. 억압된 감정이 강렬할수록 레서판다는 거대해진다. 처음에는 메이의 격동적인 사춘기의 상징이었던 레서판다는 엄마 밍의 봉인이 풀리며 모녀관계의 해소되지 않은 애증을 드러낸다.


사춘기 여자아이의 야수성을 알고 있다면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사실 어떤 남자아이와 견주어도 공격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억압하고 표출하느냐의 차이다. ‘여자아이는 착하고 얌전하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그건 아이가 당신 앞에서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의 믿음을 위해 기꺼이 감정을 억압한다. ‘레서판다 영혼 봉인식’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판다는 괴물이고 통제할 수 없으며 꺼내놓을 때마다 강해지고 한 번뿐인 봉인식이 실패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경고는 아이의 자유를 손쉽게 통제하는 방법이다. 나의 욕구가, 나의 공격성이 드러나 엄마를 실망시킬 것이라는 공포에 딸들은 결국 감정을 제거하기로 하는 것이다. 엄마와 딸의 기대와 현실이 엇갈리며 커지는 감정은 레서판다를 봉인함으로써 해소될 기회를 잃게 된다.

모녀의 관계는 딸의 레서판다화 이후로 더욱 악화되지만, 레서판다가 엄마와 딸의 사이를 망친 것이 아니다. 딸은 이미 억눌린 감정을 막을 수 없어서 레서판다가 된 것이다. 엄마의 우려와는 다르게 메이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은 친구들의 우정이다. 미리엄, 애비, 프리아가 있었기에 메이의 판다는 작은 방 크기에 그쳤는지 모른다. 엄마 밍의 판다는 스카이돔 공연장의 크기와 맞먹는 수준이다.


레서판다가 되어 분노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누구에게 문제였을까? 위기의 순간 엄마와 이모들은 밍을 위해 봉인을 깨트린다. 그 기원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탄생한 레서판다의 힘은 또다시 가족을 구해낸다. “나쁜 걸 밀어내기만 할 게 아니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게 중요해.” 내면의 야수를 몰아내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미리엄의 말대로 “판다든 아니든” 변함없이 안아주면 그만이다.


13살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라고 소리치던 메이는 완벽한 딸이 되지 못해 자책하는 13살의 엄마 밍을 만난다. 지금의 자신과 똑 닮은 훌쩍이는 밍을 다독이며 손을 내미는 순간 엄마와 딸의 ‘성장통’은 일단락된다. 밍의 레서판다는 메이의 다마고치에 봉인된다. 밍은 자신의 야수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고 그를 돌본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착한 딸이 되려 했으나 각자의 방식으로 실패한 모든 이들을 위로한다. 누구나 내면에 거대한 레서판다를 감추고 있기 마련이고 이를 얼마나 드러내는지도 모두 다르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픽사의 전작 <엔칸토: 마법의 세계>에 이어 여자아이의 감정 해방을 그리는 작품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도미 시 감독의 연출 아래 사춘기 여자아이의 격동적인 신체적, 정서적 측면을 고루 다루었다는 데서 더욱 의미 있다. 다양한 인종의 모계 중심 가정을 그려내며 폭넓은 공감대를 아우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2002년의 캐나다 토론토를 배경으로 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다마고치, 캠코더 같은 추억의 아이템과 2000년대 초반 감성의 보이그룹 ‘4 타운’의 노래로 레트로 한 재미를 담고 있다. 반짝이는 눈 같은 만화 영화 같은 표현과 리드미컬한 연출이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스토리에 생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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