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두 codu May 16. 2022

성욕과 사랑의 경계를 맴도는 외로운 청춘들의 낭만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영화 <파리, 13구>(2022)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파리의 아파트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거대하지만 빽빽한 도시 속 각자의 작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카메라는 굽어살핀다. 각기 다른 모양의 외로움을 살펴보기 위해 감독은 1명의 남자와 3명의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에밀리 웡(루시 장)은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다. 카미유라는 이름의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자 당황하지만, ‘일단 자고 본다’는 연애관의 에밀리와 업무 스트레스를 격렬한 섹스로 해소하는 카미유(마키타 삼바)는 이내 룸메이트이자 섹스 파트너가 된다. 에밀리는 카미유를 사랑하게 되지만 카미유는 깊은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카미유는 잠깐의 쾌락을 공유한 것으로 만족하고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에밀리는 계속해서 쾌락을 갈구한다.

그저 개방적인 젊은이들의 쉬운 관계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누구나와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이들도 관계에 대한 갈증은 존재한다. 두 사람은 성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관계의 공허함을 드러낸다. 이성과의 잠자리는 쉽지만 진짜 친밀한 관계인 가족이나 연인 앞에서는 그야말로 ‘관계 장애’의 면모를 보여준다.


노라(노에미 멜랑)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홀로 파리에 온 만학도다. 조금 늦은 시작이지만 공부에 열정이 있었고, 학교 생활도 기대하고 있었다. 신학기 파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보기 위해 쓴 금발 가발과 진한 화장은 노라에게 포르노 배우라는 오명을 씌운다. 소문은 거침없이 퍼져나갔고 노라가 포르노 배우 앰버 스위트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온갖 음담패설이 노라의 메시지 창을 장악했다. 노라는 노트북 앞에 앉아 금발 가발을 쓰고 앰버 스위트에게 개인 채팅을 요청한다.

두 개의 이야기로 나누어지는 듯했던 영화는 카미유를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 로맨스가 되나 싶더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네 사람의 관계 장애는 상실의 슬픔과 외로움을 성관계로 풀어내려는 것이다. 데이팅 어플을 이용해 성관계를 하는 것은 요양원의 할머니를 찾아뵙는 것보다, 동생의 열정을 격려하는 것보다 쉽고 간단하다. 포르노 사이트에서 돈을 내고 누군가의 몸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간단하다. 이렇듯 육체적 쾌락은 간단하게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내면의 진정한 공허는 쉽게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파리, 13구>가 이들의 가벼운 성욕 해소보다 그 외로움에 집중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욕과 쾌락, 사랑과 슬픔으로 나뉘는 감정의 공식에서 전자의 묘사에 치중한 듯 보인다. 나체와 성관계 묘사가 그대로 드러나지만 사랑은 오히려 카미유가 동생 에포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에, 닮은 듯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는 곳에 존재한다. 섹스는 놀이 혹은 숙제처럼 느껴지고 그렇기에 클라이맥스의 키스신은 영화 속 어느 장면보다 높은 사랑의 농도로 표현된다. 흑백으로 절제된 룩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지극히도 남성적인 시선을 따라가는 화면에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파리, 13구>는 관능적이고 자유로운 파리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구현한다. 현대 파리의 외로운 청춘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마침내 낭만적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육체의 감각적인 쾌락과 낭만적 감성을 충족시키며 파리의 낭만을 되새김질하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의 운명성 속에서 흩어지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진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