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끝없음에 관하여>
당신이 길에서 누군가를 붙잡고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생각해보자. 하나는 “편의점 가는데요.”처럼 구체적인 장소를 대답해주는 친절한 유형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비교도 취급하며 무시하거나 욕을 하는 정상적인 유형이 있을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질문이 용인되는 곳은 철학 강의실 안이나 문학 혹은 영화 같은 예술 작품 속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질문이 절실하다. 바로 길을 잃은 사람들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이 아리송한 질문에 로이 안데르손 감독은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로 그 대답을 대신한다.
우주에서 내려다본 인간의 조각모음 같은 이 영화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유로이 건너 다닌다. 인간사는 ‘한 여자’ 혹은 ‘한 남자’의 이야기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의아해지려는 찰나 열역학 제1법칙이 나온다. 작은 방에서 침대에 걸터앉아 빗으로 머리를 빗고 있는 여자아이를 향해 의자에 마주 앉아 있는 남자아이가 책의 내용을 설명한다. “모든 것은 에너지이며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히 보존되며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뀔 뿐이다.” 열역학 제1법칙에 따라 <끝없음에 관하여> 속 욕망과 슬픔, 냉소, 희망과 사랑의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꿔 끝없이 이어진다.
모든 장면에는 욕망, 슬픔, 냉소 그리고 희망과 사랑이 뒤섞여 있다. 이 에너지들은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이 뒤섞인 형태로 세상 곳곳에 퍼져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아들의 무덤을 돌보는 부모와 시든 나무에 물을 주는 여자의 사랑은 생과 사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어떤 여자들은 종종 욕망의 시선을 받는다. 아이를 찍는 노인은 아이를 사랑하고 그 젊음을 욕망한다. 여자를 사랑한다고 윽박지르며 때리는 남자는 사랑보다는 소유욕이 더 클 것이다. 학창 시절 자신보다 못났던 친구를 향한 질투는 아내에 대한 사랑보다 앞서 있다. 무언가를 향한 욕망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비극에도 사랑과 희망은 존재한다. 영화 속 모든 장면에서 우리는 덧없는 허무와 그렇기에 아름답고 안타까운 인간의 삶을 발견한다.
때로 인간들은 사랑과 믿음을 잃고 길을 헤맨다. 욕망에 눈이 멀어 잘못된 길을 들고는 한다. 믿음을 잃고 악몽에 시달리는 가톨릭 사제의 이야기는 세 번이나 등장한다. 사제는 계속된 악몽에 의사를 찾는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진 사제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어 생긴 문제를 의사가 도와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공짜로는 일하지 않는” 의사는 환자보다 돈을 우선시한다. 욕망이 믿음을 앞지르자 믿음은 갈 곳을 잃고 헤맨다. 와인에 취해 비틀거리며 영성체를 나눠주어도 구원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힌 신도들은 사제를 신경 쓰지 않는다. “믿음을 잃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절박하게 의사를 찾아도 진료시간을 넘긴 환자는 문밖으로 쫓겨난다. 믿음과 사랑을 앞지르는 욕망은 인간을 소외시키고 소외된 인간은 길을 잃고 만다.
<끝없음에 관하여>의 카메라와 나레이션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넉넉한 풀숏으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는 씬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인물들의 개별적인 상황이나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다. 나레이션은 이런 카메라와 같이 “한 여자” 혹은 “한 남자를 보았다. “는 서술만을 공평하게 반복한다. 감독은 인간을 종착지가 아니라 길의 한가운데 놔두고 지켜본다. 개별 사건에 거리를 두며 보다 전체를 조망하도록 이끄는 카메라와 단편적인 씬들을 통해 신과 같은 초월자의 시점을 빌리게 된다.
한 여자가 기차에서 내린다. 여자는 아무도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슬퍼한다. 모든 사람이 일행과 함께 플랫폼을 떠났을 무렵 한 남자가 화면 우측의 계단에서 힘겹게 뛰어 올라온다. 남자는 서운함을 내비치는 여자와 꼭 껴안은 뒤 계단으로 내려간다. 여기서 여자가 어디서 왔는지 남자와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우리가 이토록 우울함에 잠식되고 슬픈 이유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울함의 조각을 떼어다 만든 이 영화는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한다. 신에 대한 믿음보다 인간이 서로에게 가지는 약간의 이해와 믿음이다. 혼자서는 길을 잃는다. 함께 하는 이들만이 길을 잃지 않는다. 삶은 끝없이 이어진 길의 고장 난 자동차처럼 때때로 멈추고 말 것이다. 고장 난 자동차를 보며 걱정하는 남자의 왼쪽 위에 무리지은 새들이 날아간다. 남자가 가려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길이다. 이 새들의 무리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길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우리는 함께 흘러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폐허가 된 잿빛 도시 위를 떠다니는 커플은 영화의 시작과 중간에 두 번 등장한다. 이 연인은 안개처럼 뿌연 도시와 구름 속에서 그저 서로 껴안은 채 떠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고장 난 자동차가 등장하는 씬 뒤에 영화의 시작인 이 커플의 장면을 붙여 생각해보자. 이들은 방향도 높이도 모를 불안정한 상태로 오로지 서로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의 시작점이자 시간순으로 모든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있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