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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Nov 01. 2022

길을 잃는 순간도 인생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와 <인사이드 르윈>의 길 잃음

나는 길을 잘 못 찾는 편이다. 스마트폰 지도가 없었다면 혼자 낯선 곳을 찾아가는 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길치의 문제는 방향감각이 없다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거다. 이 길이 맞겠지 하고 당당하게 걷다가 뒤늦게 지도를 보니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약속에 늦은 게 아닌 이상 길을 헤매는 게 항상 안 좋은 것은 아니다. 그냥 산책 조금 더 한 셈 치고 다시 걸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동요의 한 구절처럼 계속 걷다 보면 어딘가에 도달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최근에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게 길을 잃은 인물이 나오는 영화를 두 편 보게 되었다. <캐스트 어웨이>와 <인사이드 르윈>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톰 행크스) 역시 끊임없이 어딘가로 이동한다. 감독은 그가 어딘가에 머무르는 순간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모든 노동자들이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 택배회사 ‘페덱스(Fed Ex)’의 직원인 척은 그 택배들처럼 일분일초를 다투며 목적지를 향해 움직인다. 크리스마스에 연인과의 시간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척은 ‘페덱스’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된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비를 피하기 위해 무인도를 쉴 새 없이 떠돌던 척이 섬의 생활에 익숙해지려 할 때 쯔음 영화는 4년 후로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척은 섬 밖으로 향한다. 영화의 중심에 고립의 상황이 있지만 사실상 중요한 것은 길 잃은 채로 떠다니고 표류한다는 것이다.

<캐스트 어웨이>가 공간을 표류하는 영화라면 <인사이드 르윈>은 어떤 시기를 방황하는 영화다. 이 시간은 물리적으로 반복된다기보다 심리적인 시기에 가깝다. 상실과 불행에 빠져 무기력함을 되풀이하는 시기다. 영화의 주인공 르윈(오스카 아이작)은 친구들의 소파를 전전하며 가난한 음악가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신을 불러주는 곳, 대신 연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 르윈의 곁을 에워싸고 있는 부조리한 죽음들은 그의 삶이 되풀이되는 원동력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르윈은 ‘자신을 목매달라’는 노래를 부르고 골목길에서 누군가에게 얻어맞는다. 영화의 마지막도 역시 같은 노래를 부르고 또 골목길에서 얻어맞는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다른 사건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르윈의 삶이 비슷하게 되풀이되리란 짐작을 할 수 있다. 상실의 시기를 끊임없이 방황하며 떠도는 르윈이 다른 갈림길로 갈 수 있을까?


<캐스트 어웨이>가 바다로 은유되는 인생을 표류하는 넓고 정처 없는 여정을 보여준다면 <인사이드 르윈>의 길 잃음은 조금씩 다르게 반복되며 끊임없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나선형의 모습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척은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서 있게 되고, 르윈은 얻어터진 채로 비슷하게 반복될 미래를 무기력하게 기다린다. 두 영화 모두 표류하고 방황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지만 그 길 잃음 속에서도 인물들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 인생이 멈춰 있다고, 실패했다고 단언하기란 어렵다. 이 모든 발버둥조차도 삶의 일부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한 곳에 정착해서 산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의 조상들은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가기 위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말하자면 길 잃음의 연속이었다. 정착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그렇게나 걸었던 걸까?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도시와 문명을 건설하는 것이 원래의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살기 위해 걸었고, 좀 더 잘 살기 위해 더 걸었을 뿐이다. 어쩌면 이러한 이동은 인간에게 필연적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고, 도시를 옮기고, 집을 옮긴다. 우리는 언제나 이동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이동과 길 잃음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언제나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다고 해도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은 바로 거기 그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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