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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Feb 26. 2023

<화니와 알렉산더>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의식의 넓이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화니와 알렉산더>(1982)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까? “단지 재미만은” 아닐 것이다. 예술과 이야기는 영적 전율을 느끼게 해 주고 심오한 재미를 보여준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이런 예술에 대한 감독의 지극한 경의와 인간의 가능성과 희망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다. <화니와 알렉산더>는 영화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무의식까지 깊이 침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 공간의 이동과 차원의 이동


<화니와 알렉산더>의 아이들은 가정의 형태를 띤 공간을 전전하게 된다. 예술적 환경의 안락하고 따뜻한 에크달 저택을 떠나 에드바드 주교의 엄격하고 냉혹한 규칙의 세상을 경험하고, 모든 가능성이 혼재된 이삭의 골동품 가게를 탐험한 뒤 다시 에크달 저택으로 돌아온다.


각각의 양육자들 즉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른들이 바뀌며 아이들의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처음 양육자는 아버지 오스카다. 그는 연극과 극장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약하다. 그리고 죽는다. 유령이 되어 곁을 맴도는 아버지는 환상의 어렴풋한 존재로 남는다. 아버지 오스카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상징하는 존재다. 다음 새아버지가 된 주교 에드바드는 오스카와 정반대에 위치한 인물이다. 엄격한 질서와 규칙 그리고 한 치의 자유도 용납되지 않는 에드바드의 집과 그의 가족은 냉혹한 현실 그 자체다. 알렉산더는 이 위기를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 상상력과 이야기라는 거짓말로 극복해 나가려 하지만 주교는 강하다. 에드바드는 영적으로 초라하지만 현실적으로 강한 인물이다. 에드바드의 현실 세계에서 알렉산더는 그를 이길 수 없다. 아이들은 에드바드의 공간에서 벗어나 이삭의 골동품 가게로 가게 된다. 이곳은 움직이지 말아야 할 것이 움직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인물은 아론과 이스마엘 남매다. 이 공간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움직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특히나 이스마엘은 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상대방의 욕망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이스마엘이 보여주는 혹은 들려주는 알렉산더의 욕망은 실현된다.


 


- 환상과 상상력


영화는 알렉산더의 인형극으로 시작한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종이 인형을 만지작거리던 알렉산더는 이윽고 문을 열고 방을 나간다. 화니와 엄마를 차례로 불러보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알렉산더는 집을 떠도는 유령처럼 그렇게 홀로 집을 돌아다니다 테이블 아래 들어가 눈을 감는다. 눈을 뜨니 조각상이 손짓하고 있다. 알렉산더가 보는 환상성은 시작부터 드러난다.


알렉산더는 연극을 하는 집안의 아이답게 이야기꾼의 소질을 지니고 있다. 알렉산더의 거짓말은 그저 어떤 이야기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받아들이는 이의 몫이다. 여기에 정답은 없다. 정답은 신 혹은 시간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주교 에드바드는 알렉산더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억압하고 처벌한다. 그러나 주교는 상상의 실현에 끝내 제압당한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환상의 일부가 된다.


- 연극과 역할


집안의 책임지인 알렉산더의 할머니 헬레나는 남편과 극장을 운영했었고, 극장은 아들 오스카에게 물려주었다. 알렉산더의 아빠인 오스카는 연기는 잘 못하지만, 극장이라는 “작은 세계에 대한 사랑”만이 자신의 유일한 능력이라 말할 정도로 연극과 극장을 사랑한다.


“밖에는 커다란 세계가 존재합니다. 작은 세계는 우리가 커다란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게 그 모습을 비춰 주기도 합니다. 혹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잠깐 동안이나마 냉혹한 바깥세상을 잊게 해 주죠. 우리 극장은 작은 방이며 질서, 일상, 사랑이 넘칩니다.”


연극과 배우는 영화 속 에크달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부모나 자식 같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역할은 그때그때 바꿔 쓰는 가면처럼 여러 모습이 있다. 감독은 에드바드처럼 고착된 하나의 가면보다는 여러 가지의 가면을 써서 차라리 진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에밀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배우와 연기는 인간의 다양성을 나타낸다. 한 가지 모습만 고집하는 인간은 그 모습이 흔들리고 깨어질 때 무너진다.


<화니와 알렉산더>는 공간을 통해 무의식의 끝으로 다다르고 가면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헤아린다. 그 끝에는 삶의 모든 가능성과 예술을 긍정하는 희망이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게 가능하고 개연성이 있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얄팍한 현실의 틀 위에 상상은 새로운 무늬의 천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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