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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유코치 티아라 Dec 07. 2021

된장찌개는 할머니다.

 


보글보글 가스레인지 앞에서 된장찌개를 끓으시는 할머니, 친정집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여든이 넘어서도 손녀인 내가 오면 된장찌개를 좋아한다며 끓여주셨다. 다 큰 내가 할머니께 식사를 차려드려야 하지만 할머니의 된장찌개는 내가 흉내 낼 수 없기에 그리고 그것이 할머니의 기쁨인 것을 알기에 그냥 기다리는 나였다. 


 다 끓여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된장찌개 냄새가 가득 찰 때쯤 들리는 할머니의 외침!!

“아이구야!!” 이 말에 할머니방에 누워있던 내가 얼른 부엌으로 달려간다.


세상에나.. 첫째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쌀포대에 있는 쌀을 부엌에 뿌리며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쌀이 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야!!"라는 고함을 지르니 할머니께서는 얼른

“고마해라 아가 그랄 수도 있지 여 나둔 내 잘못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내가 아이들에게 화내는 게 싫어서 할머니께서 얼른 하신 말씀이지만 그 말을 들어도 화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다시는 쌀을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꾸지람을 한참 하고 쌀을 모두 주운 뒤에야 울면서 외증조할머니 뒤에 숨은 첫째가 보였다. 한참을 할머니 품에서 울던 첫째가 진정하고 할머니와 함께 식탁에 앉는다. 

식탁에 앉아 훌쩍이며 된장찌개에 밥을 먹는 첫째를 챙기며 할머니께선


“머라 하지 마라. 니는 어릴 때 더 별났다. 그러니 아 밥 묵 구로 니는 방에 가있어라”

하셨다.

훌쩍이며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먹고 있는 첫째를 보자니 어릴 때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 지냈었다.  마산 할머니 집은 골목길 옆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다닥다닥 붙은 집은 옥상과 옥상이 연결되어 있던 동네였다. 겁이 없던 그땐 아이들과 함께 옥상과 옥상을 점프하며 놀던 게 일상이었다.


한 여름, 쨍쨍한 햇빛 때문인지 친구들 없이 홀로 옥상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LPG 가스통! 호기심이 발동했다. 

가스배달원 아저씨처럼 나도 한번 움직여보고 싶다는 마음에 요리조리 움직여보았으나, 6살 어린 꼬마에게는 무리였다. 가스통에 호스가 연결되어 있고 그 끝에 보이는 동그란 손잡이가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 이끌리듯 돌리기 시작했고 한참을 돌리고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아서야 멈췄다.


 ‘ 오! 재밌는데? ’라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옥상을 둘러보니 이 집 저 집 LPG 가스통들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닌가. ‘아! 다 돌려봐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 집 옥상에서부터 옆집, 뒷집, 주변 집들까지 옥상을 뛰어다니며 돌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돌아가기에 돌렸을 뿐.. 내가 한 짓을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신나게 놀았으니 얼마나 더웠을까? 저녁 준비하는 어른들의 소리를 들으며 오후네 옥상에서 흘린 땀을 식히기 위해 마을 평상에 누워있었다. 


부릉부릉 오토바이 소리가 여기저기 온 동네를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저씨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에 기웃기웃 살펴보니, 가스배달원 아저씨였다. 


오후 내내 옥상에서 돌렸던 손잡이는 가스를 잠그는 밸브였던 것이었다.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 가스레인지가 되지 않으니 가스가 다 된 줄 알고 동네 사람들이 가스배달 전화를 한 것이었다. 배달 아저씨들이 와서 보니 가스가 다 되긴커녕 밸브가 잠겨있는 걸 보고 밸브를 열면서 누가 이런 장난을 쳤는지 화를 내고 있으셨다.


'앗 큰일 났다!!'라는 생각과 본능적으로 내가 한 게 아닌 척 아무 일도 없던 척 집에 들어갔으나 할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다. 누군가 옥상에서 혼자 놀고 있는 날 봤던 것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의 끊임없는 꾸지람과 난생처음 빗자루로 여러 대 맞았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께 엄청 맞은 순간이다. 앉은뱅이 빗자루는 

부러지지도 않고 어찌나 아프던지... 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도망하며 한대라도 덜 맞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한참을 혼난 후 할머니는 저녁을 준비하셨고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들렸다. 보글보글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 나도 모르게 잠이 스르르 들려는 순간 할머니께서 밥상을 들고 들어오셨다.

“밥 묵자! 된장찌개랑 비비 주까?"라며 내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셨다. 

무심한 듯 계란 프라이도 얹어 주시면서 말이다. 

내가 돌린 가스통 밸브 열고 만든 된장찌개라며 “ 어여 먹자. 그게 뭐라고 그걸 돌리노..가스통은 진짜 위험한기다.. 펑하고 터지면 우짤 끼고.. 엄마 아빠도 못 본다. 괜찮긋나? 안되제? 이제 옥상에서 놀지 마라 “하며  괜찮다고 어서  먹으라고 하셨다. 



가스통 잠그고 놀았던 나에 비해면 쌀을 눈 뿌리듯 뿌리는 것 정도야 뭐... 

우습다는 생각에 들었다. 

훌쩍이며 먹던 밥, 땀을 흘리며 먹던 꿀맛 같은 된장찌개가 기억난다.

식구들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이며 보글보글 소리를 듣고 있자니 할머니와의 추억이 보글보글 하나 둘 피어오른다.

된장찌개를 끓이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손녀에게 증손녀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주던 할머니가 더없이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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