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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ay 25. 2023

틴더와 구토


친구와 술을 진탕 먹었다. 취한 나는 틴더를 켰다. 프로필 사진만 올려둔 채로 몇 달간 쓰지 못했던 그 앱. 친구도 기분 좋게 취해 있었던 터라 겁쟁이인 나 대신 적당한 남자를 골라주었다. 친구는 허세나 징그러운 섹스어필이 없는 사람을 솎아내려 욕지거리와 함께 한참을 끙끙거리더니, 내게 내일모레 시간 되냐고 했다. 그렇게 절친의 주선으로 낯선 이와 나는 이틀 뒤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그는 사진보다 키는 작았어도 꽤 잘생겼었다. 우리는 맛없는 라멘을 먹었고 아주 오래 산책했다. 그 사람은 ‘지도를 보지 말고 탐험해 볼래요?’라고 운을 띄웠다. 반해버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둘 다 많이 웃었고 조금씩 손을 잡을지 말지 간을 보았다. 헤어질 즈음엔 걱정이 무색하게 그 사람이 무척 맘에 들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한밤중 기습 전화로 친구에게 어떤 데이트를 했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 구구절절 풀어냈다. 카페에서 난 대화를 하며 습관적으로 잘게 찢어놓은 영수증 조각들을 켜켜히 쌓고 있었다. 그가 그걸 보더니 똑같이 따라 하면서 ‘아, 재밌네. 왜 너가 이렇게 했는지 알겠어.’라 중얼거렸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 정말 보이고 들리고 있다는 느낌. 친구와 새벽 세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통화를 끝낸 후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쯤엔 심장이 이상한 박자로 쥐어짜지는 듯했다. 명상 호흡을 해봐도 자위를 해봐도 심장은 계속 엉뚱한 짓을 했다. 직감적으로 이게 더 이상 설레는 감각이 아니란 게 느껴졌다. 어떤 낡은 고통이 나를 지나갔다. 거의 잠을 설친 채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엔 토를 했다. 억지로 손가락을 넣어 간신히 하는 토가 아니라 한순간 오심을 주체할 수 없어 나오는 토였다. 밥을 꼭꼭 씹어먹고 이를 닦는데 순간 메스꺼움이 느껴졌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몇 번의 헛구역질 뒤에 갑작스레 토가 쏟아졌다. 그것은 튀어나오는 생물 같았다. 세면대며 변기 커버며 토가 튀어 꼼꼼히 닦아야 했다.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장운동에는 이상이 없고 신경성이라고 했다. 뭐가 나를 이렇게 괴롭히기 시작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리둥절하며 아파하고 있을 때쯤 좋은 데이트였던 것도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연락을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에 걸맞게 하루 종일 카톡이 없었다. 내가 먼저 ‘내일 언제 볼 거야?’ 물어봤다. 답장은 두 시간쯤 후에 왔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이상한 괴로움이 심장으로 찾아왔다. ‘아! 나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갑자기 전 애인과의 기억이 스쳤다.     


전 애인과 헤어지기 직전에 그는 내가 너무 의존적이라는 이유로 거리를 두었다. 그 얘기에 대해 그다지 대꾸할 말이 없다. 나는 사는 일이 매일 슬픈 사람이었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이곳저곳 묻혀대는 게 지긋지긋해서 한이 맺혀 있었다. 친구들에게 제발 그만 힘들다고 하고 싶고, 그만 매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생기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않고 오직 그에게만 이야기했다. 그는 말 그대로 나의 숨구멍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 사람이 이제 더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다니! 뻔하디 뻔한 표현이지만, 내 세상은 그날 무너졌다.     


그때의 연락은 엄청나게 괴로웠었다. 그가 내게 질리면 질릴수록 더 그가 필요했다. 답장받지 못하면 숨을 쉬지 못하는 물고기인 양 굴었다. 온몸을 통과하는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괜찮은 척하며 연락했다. 그러나 얼마를 참았는지는 애초에 소용이 없던 일인지 더욱 차가운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 조용한 그 시간은 나에게 영원이었고 그에게는 찰나였다. 그때 느꼈던 메슥거림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틴더의 남자를 다시 만났다. 나는 이미 혼자서 마음이 박살난 상태였다. 그의 얼굴을 보는데 웃음이 조금 일그러져 나왔다. 그도 뚱하고 졸린 표정이었다. 그는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너무 늘어놓았다. 첫 만남에는 약간만 거슬리는 만큼이었다면 이제는 온통 그 얘기였다. 아무리 내가 그의 취미나, 친구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같은, 부정적으로 빠지기 어려울 만한 주제를 들어 질문해도 어느새 소용돌이처럼 염세적인 한탄으로 빠져버렸다. 그의 말들은 우리의 시간을 블랙홀처럼 잡아먹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나 탄식이나 지겹다는 말을 뱉었다. 차라리 나는 그의 예쁜 속눈썹을 바라보며 그냥 저 가지런한 속눈썹을 만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겹다 생각하면서도 그의 카라를 고쳐주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하는 식으로 성적 관심을 살짝 드러냈다. 그는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고, 일찍 일어나고 싶다며 두 시간 만에 귀가했다.    

 

첫날에는 왔었던 잘 들어갔냐는 인사가 오지 않았다. 헤어진 직후에는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생각했지만, 막상 거절하는 듯한 제스처에는 아주 꼼꼼히 상처받았다. 30분 간격으로 계속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하며 그의 답장을 기다렸다. 나는 정말이지 그를 연인으로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날 원하지 않는 건 가슴을 찌르는 통증을 유발했다. 차라리 섹파라도 하고 싶었다. 그가 나를 욕망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엉망진창의 감정인가 생각하다가, 또 전 연인을 떠올렸다. 그와 나는 온전하고 지독한 사랑을 1년 반 동안 지속했다. 진짜배기 사랑은 영혼을 조심스레 들어 아주 섬세하게 보듬어 주다가, 그것이 끝날 때 영혼을 바닥에 내팽개쳐 개박살내 버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늘 되뇌던 ‘그와의 사랑은 모든 게 감사했지’라는 마무리가 너무 납작하게 생략된 말뿐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는 어긋났다. 나는 어딘가 아프다. 누구나 사랑을 가질 수 있다만 그 일은 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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