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키는 168cm에 뼈대도 굵은 편이고, 살집도 통통히 붙어있다. 특히나 허벅지가 굵은 편이라, 가장 말랐을 때도 허벅지 사이가 떨어지는 다리는 남 얘기였다. 굵은 허벅지와 엉덩이는 엄마에게 물려받았는데, 엄마는 자기의 남다른 다리를 참 싫어한다. 엄마는 상체는 가녀린 편이라 사람들이 말랐다고 칭찬하다가도, 바지를 입은 엄마를 보고 놀라는 게 싫다고 했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미국에서는 엄마 같은 몸매가 진짜 예쁜 거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엄마는 들은 체도 안 한다. 어쩌겠나, 미국이란 나라는 엄마가 가본 적도 가볼 일도 없는 낯설고 먼 곳이다. 엄마와 나는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이제 내게 ‘너는 나 정도는 아니야. 보기 딱 좋아.’라고 말해주지만, 그건 내가 한동안 내 몸매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아달라 말해둔 덕분이다. 어릴 적 엄마와 쇼핑하는데, 엄마가 점원에게 저희 딸은 덩치가 너무 커서, 맞는 게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고 내가 잘 맞는 옷을 고르자 너한테도 맞는 게 있냐며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때는 과체중도 아니었는데 키와 체격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굉장히 부적절하고 무례한 몸을 가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내 몸은 태생부터 너무 큰 몸이라고 생각했다. 내 몸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주 수치스러웠다. 나의 유해한 생각을 사회는 정답이라고 부추겼다. 상의는 어떻게 사더라도 맞는 바지는 찾기 어려웠다. 썸을 타는 사람에게 몸매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지하철 의자가 정한 일 인분의 자리를 눈치 없이 넘쳐흐르는 허벅지를 보면서 최대한 다리를 오므려야 했다. 늘 눈치를 보면서, 이런 피곤한 삶을 모르는 소위 모태 마름 여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허벅지가 떨어져 있는 기분은 어떨까? 옷을 살 때 기성 사이즈가 딱 예쁘게 맞는 기분은 어떨까? 연애 시장에 스스로를 내놓을 때 몸매 때문에 거절당하는 경우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은? 나의 몸은 늘 이런 전제들을 보기 좋게 빗겨나갔다.
그런데 나는 두꺼운 내 몸을 좋아하기도 했다. 나는 짧은 치마를 입거나 몸에 붙는 옷을 입을 때 내가 섹시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날씬한 몸이 주는 단정함과 세련된 느낌이 있다면, 살집 있는 내 몸은 섹슈얼한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는 것 같다. 내 몸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의 몸을 볼 때도 그렇다. 무대를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는 비욘세의 허벅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니키 미나즈의 ‘아나콘다’ 뮤직비디오가 너무 문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몰래 몇 번을 돌려보기도 했다. ‘페르세포네의 납치’라는 조각상을 보면서는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의 살결을 손으로 꾹 쥐어 푹 파인 모양새가 배를 간지럽혔다. 아마도 내가 남자였다면 그런 여자들을 쫓아다니지 않았을까?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의 납치’
그리고 나의 두꺼운 몸은 나를 지켜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가 가녀리지 않다는 것을 욕하면서도 가녀리지 않기 때문에 조심한다. 한국 여자로서 비교적 큰 체격에 당찬 목소리를 갖고 있어, 내가 강하게 의견을 내면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럴 때는 내 덩치가 든든하다. 또 최근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 심하게 앓느라 밥을 잘 못 먹어 살이 많이 빠졌는데, 내가 마른 사람이었다면 좀 더 고생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살이 과하면 문제가 된다는 얘기는 살보다 그 잔소리들이 더 병적일 정도로 많이 들어왔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살도 그 쓰임이 있어 내 몸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록산 게이의 ‘헝거’에서 저자가 말하듯, 살은 나를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 몸을 사랑하는 일은 싫어하다가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선형의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늘 두 상태를 바삐 오가는 마음을 좀 더 보듬어 주는 일이었다. 몸이 미워 보일 때 자책하지 않고 내가 지치진 않았는지 살피고, 몸이 사랑스러워 보일 때에는 나를 무시하지 않고 어화둥둥 해주면서 그 낙차를 줄이려고 했다. 지금은 주로 내 몸을 좋아하고 아껴주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하게는, 내 몸이 싫을 때 자책하지 않으면서 생각에 푹 빠지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면 나에게서 또 사랑하고 싶은 구석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