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베를린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밍밍한 말차라떼를 마시고 있다. 은은한 바람을 타고 오는 담배냄새를 맡으며, 아마도 내가 한국어로 중얼거리는 말들을 누구도 모를 곳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사실을 고하자면 나는 베를린으로 여행을 왔다기보다 서울에서 도망쳐왔다. 나의 장거리 여행은 으레 그런 식이 었다.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수렁에 들어가 있을 때 도망치는 것이다. 나에게 첫 여행으로 어떻게 혼자 인도로 갈 생각을 했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죽기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떠올랐던 건 그때문이다.
최근의 나는 작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그 마음에 고꾸라져 있었다. 더 잘 써야 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많이 써야 하겠고, 주제도 잘 묶여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 틀을 하나둘씩 가져오니 도리어 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 와서 나는 많이 울었다.
처음으로 울었던 곳은 반세 호수였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이곳저곳을 휘저은 탓에 해가 다 져버린 다섯 시쯤 도착한 호수는 너무너무 추웠고 물도 심히 얕았다. 수영을 하려고 야무지게 비키니까지 챙겨 입고 왔는데 물속에서 30분을 버티지 못했다. 그렇지만 덕분에 넓은 호수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그때, 가장 수줍은 사람이 조용히 목소리를 내듯 눈물이 흘렀다. 약간은 낯설고 의아했지만 눈물이 주는 온기를 가만히 느꼈던 것 같다.
고요했던 호숫가그것은 어떤 외로움이었다. 외로웠고 그리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엄마와 동생을 생각하며 보고 싶었고 내가 없는 동안 마음이 힘들었던 동생이 더 힘들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상담 선생님이 슬픔은 사랑이라고 한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경전의 구절처럼 되뇌었다. 슬픔은 사랑이지. 나는 가족들을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사회가 요하는 생산성이 충분한 청년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는 나를 떠올리며, 나의 진실한 내면과 멀어져서 허둥거리는 외로움에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내가 불안과 걱정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내면의 에너지와 닿고프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세상과 잘 맞지 않아 아픈 사람들의 글을 보고 또 울었다.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자, 왜 이번에도 서울에서 도망쳐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예전에도 늘 필요한 도망이었다. 그리고 그 도망이 반복된 만큼, 이번에는 더 빠르게 구체적으로 (어쩌면 서울에 있으면서도 깨닫게 될지도 모를 만큼) 깨달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빈 공간이 필요했구나. 내가 몰두했던 걱정거리를 내려놓고 내가 진짜로 어떤 상태인지 바라볼 수 있는 공간. 텅 빈 곳에는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으니까, 평소엔 나도 모르게 밀어냈던 슬픔이 슬쩍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쉽게 울고 웃고 있다.
나라는 사람의 의지는 늘 모습을 바꾼다. 어떤 때에는 제법 옹골차고 명확해서, 사회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만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도 자주 있다. 사실은 내 커리어니 연봉이니 다 상관없고 그냥 사랑만 허벌나게 하며 살고 싶다. 생생하게 살아있고 호기심과 애착을 가지는 것 외에는 나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예술이 좋고 소외된 생명이 마음에 쓰인다, 그렇게 살면 돈을 별로 못 만질 것 같은데도. 그 단순하고 명확한 진실을 소화하기 위해 또 도망쳤나 보다. 이 뜀박질 덕분에 또 한숨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