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삶에서 중요한 일을 하게 될거야

by 모아

공동체에서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헛헛함도 잠시,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다. 나는 일주일간의 즐거운 시간 덕분에 마음이 많이 열려있던터라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었다. 무리 중 두명의 친구에게 유독 마음이 갔는데, 그 중 하나가 소잔이었다.

아르마니안계 독일인인 소잔과 나는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랐지만 춤추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상처 많은 과거에서 스스로를 구하고 보살핀 사람이라는 점이 무척 닮아있었다. 그녀는 매사에 신중하게 말을 꺼내느라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는데, 급히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고 충분히 침묵을 가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어떤 이야기든 그녀에게 흐르면 그 자체로 무게를 갖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녀는 남자친구로 잘생기고 몸좋고 속이 깊은 연하를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외에도 3개국어를 해야한달지 취미가 맞아야한달지 끝없는 리스트가 이어져서 네 남친을 구하려면 올림픽이라도 열어서 뽑아야 겠다는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맞다고 대답했다. 린 진지한 이야기에서부터 실없는 이야기까지 뭐든 할 수 있었다.

우린 금새 가까워졌고, 필리핀계 독일인인 캣하고도 친해져서 셋은 여느 또래친구들 처럼 많은 걸 함께했다. 캣 역시 무척 똑똑하고 섬세한 영혼이었는데, 나보다 조금 어리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20대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치만 그녀는 자신의 소심한 모습을 대범하게 드러냈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발언하는 것을 참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소심하다 했지만 용감하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캣의 솔직함이 참 좋았다.

우리는 함께 있을때 자주 웃었다

그렇게 우정도 깊어졌지만 동시에 난 다른 독일 사람들의 배제에 지쳐가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이민자의 자녀라는 배경때문에 늘상 인종차별을 겪곤 해서(캣은 이곳에 와서도 네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듣기도 했다) 내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생각 없이 쉽게 독일어로 중요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는 매번 스스로가, 혹은 친구들이 번역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그냥 얼떨결에 휩쓸려 다녀야 했다.

어느 날에는 농장에 가서 벌레를 잡는 일을 하는데,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쨌든 시키는 것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갑자기 쉬는 시간에 우리가 일하던 방식이 틀렸고, 지금보다 훨씬 빨리 해야 마무리를 할 수 있다며 채근하는 것이었다. 그랬으면 처음부터 말해주었음 됐을텐데, 이제야 그런 얘기를 하는게 웃겼고 게다가 그 모든 대화는 독일인들에게 독일어로 전해질 뿐이라 나는 소잔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서야 알 수 있었다. 여러가지로 더럽고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고 커뮤니티의 농부들에게 꽤나 정이 떨어졌다.

나는 이런 대접을 받느니 다신 농장 일을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독일어로 일을 휙휙 배분하는 바람에 또 남들이 마다하는 농장일이 내게 떨어졌다. 게다가 이어서 벌레를 잡는다고 했다. 힘든 일인건 고사하더라도 기분이 너무 더러워져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전날의 일때문에 기분이 나빴고, 독일인이 아니라서 적극적으로 내 의사를 반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을 바꾸어주었음 좋겠다고 얘기했다. 덕분에 나는 남들이 하고파하던 농작물 심기를 할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 고생스러운 일을 하는 캣과 얘기를 나누자 나만 편한 일을 한다는 게 좀 부끄러웠다.

"우와 채영, 너 진짜 좋은 업무 맡았구나."
"아이고, 그니깐. 찡찡거린 보람이 있어."
"왜 찡찡거렸다고 해? 넌 네 마음을 이야기해서 네 선택에 책임을 진 거야. 찡찡 거린게 아니야."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참 잘했다고 해주었다. 가 캣보다 편하고 즐거운 일을 하게 되었는데도 고까운 마음 없이 순수하게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칭찬해 주었다. 나라도 똑같이 대할 수 있었을까? 싶을만 건강하고 애정어린 마음씨였다.


그 뒤에도 내가 통역 문제로 힘들어 할때마다 둘은 늘 나를 지지해주고, 귀찮을 텐데도 늘 통역을 자처했다. 그리고 그룹의 리더에게도 지금 이런 문제가 있다는 말을 꺼내주곤 했다. 나에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둘은 독일에서 숨쉬듯 차별과 배제를 받아왔기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둘의 든든한 지지 덕분에 그룹에서 내가 하고싶은 말을 참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


어느날은 소잔과 둘이 방에서 이 주제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미 소잔이 충분히 위로해준 덕에 내 마음은 많이 안정이 된 터였다.


"있잖아, 사실 이런 게 너무 힘들긴 하지만 지나고나면 배움이 될 것 같아. 나는 고작 2주 겪은 이런 인종차별을 다른 사람들은 매일 겪고있는 거잖아. 이렇게 생생하게 겪어내니까 어떤 기분인지 이해가 돼."


소잔은 내 말을 듣고 감정이 벅차올랐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유를 몰랐던 나는 뭔가 미안하고 당황했는데, 그녀가 건넨 얘기는 무척 뜻밖의 이야기였다.


"아, 너처럼 마음이 열려있고 아름다운 영혼을 만날 수 있다니...참 감사하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녀의 말에 무어라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참 다정한 얘기였지만, 동시에 그녀가 겪은 깊은 슬픔이 내게 전해졌다.


"너는 분명, 이 세상에서 중요한 일을 하게 될거야."


소잔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내게 말했다. 나는 그 순간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몇주가 지난 지금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저 언젠가 먼 미래에 깊게 기억하게 될 삶의 이정표가 될 것 같다는 걸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었다. 여전히 내 마음속에 그 깊은 응시가 화살이 박힌듯 박혀있다. 나는 소잔이 내게 보여준 내밀한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삶의 방향이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바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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