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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Nov 12. 2024

꿈속의 아빠

꿈에서 아빠와 만났다. 차들이 지체없이 쌩쌩 달리는 도로 사이에 우리는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어디론가 가야 하는 참이었기 때문에, 아빠에게 목적지에 데려다 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아빠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아빠의 거절은 늘 겪는 일인데, 그 말을 전하는 아빠가 미안한 내색을 해서 어색했다. 마치 나랑 대화하면서 교감을 하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람이 차가워서 아빠의 옆구리에 파고들어 안겼다. 아빠는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장난을 쳤다. 미남인 아빠가 웃음기를 머금고 있으니 홍콩 배우 같이 멋있어 보였다. 널널한 자켓에 얼굴을 파묻고 밖에서 들려오는 차들의 소음을 모른 채 했다. 그러고 있으니, 추위가 다소 가시는 듯했다. 포근한 기분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이 황당무계한 꿈을 소화하지 못한 채 한동안 벙쪄 있었다. 다정한 연인 같기도, 좋은 친구 같기도 한 아빠의 모습은 내가 생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아빠가 내 눈을 마주 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나에게 있던가? 아마도 없다. 어쩌면 몇몇 운 좋은 사람은 겪어볼 수 있는 살가운 가족의 모습. 


현실의 아빠는 나에게 불시에 전화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친구들이랑 당구 치러 가는 중인데 집이냐고 묻는다. 만나러 오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한때 잠시 같이 살던 내 집은 아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리기 참 편한 곳이다. 그래서 꼭 그 약속 전에 갑자기 연락한다. 미리 약속을 잡는 경우는 없다. 아빠는 그에 대한 이유조차 내게 설명한 적이 없다. 굳이 내가 고민해 본 바로는 새 부인이 나와 동생을 만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적당히 둘러대어 만날 약속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아빠에게 내가 그 정도인 사람일 뿐이다. 이 홀대에 화를 낼 타이밍을 20년 정도 놓쳐버렸고, 나는 이제 감정의 동요 없이 대꾸할 수 있다. 나는 오늘 없다고, 다음에 놀러 오라고. 그러면 우리의 짧은 교류는 끝이 난다. 


꿈이 그렇게도 뜬구름같이 느껴졌던 이유에 대해 다시금 떠올린다. 나는 아빠에게 응석을 부릴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려면, 내가 그 사람 앞에서 좀 구려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먼저 느껴야 할 텐데…. 번듯하고 상냥한 딸인 나도 본체만체하는 아빠가 그런 무게를 견딜 리 없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떼를 쓸 줄 아는 아이들을 볼 때면 괜히 밉다. 나는 굴리고 굴려서 매끄럽게 갈아야 하는 마음을 툭 내던지는 꼴이 얄밉기 그지없다. 걔들은 속으로 삼키는 내 못된 심보도 모를 거고, 떼쓰지 못하는 마음이 주는 결핍도 모를 거다. 그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우리는 더욱 서로를 모르겠지.



해외의 외딴섬에 갇힌 적이 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애가 나랑 함께 여행을 하자고 섬에 초대해 놓고는, 몸이 힘들다며 만남을 취소해 버렸다. 배신감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섬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지쳤는데다 도착한 곳은 기대와 너무 달랐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자연이 펼쳐져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람이 태풍처럼 불어닥쳐 창문과 문이 시끄럽게 흔들릴 지경이었다. 마치 괴한이 밖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애인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무서워서 걔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바람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웠다. 애인은 패닉에 빠지려는 나를 차분히 달랬다.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좋으니, 네가 귀마개를 낀 채 통화를 하자고 했다. 그러다 먼저 잠들어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남의 시간을 막 쓸 수 있는지 몰랐다. 신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해 주는 것도 아닌데, 멀리서 사는 너와 섹시한 통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를 위해 통화를 하면서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한다고? 사치스럽게 느껴졌지만 나에게 너무 필요한 것이라 선뜻 받았다. 그 순간은 되게 낯설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평생을 바라온 관심과 돌봄이 이런 형태일까 하는 인상을 남긴 순간이었다. 그 강렬한 경험은 섣불리 기대하게 하고 동시에 두렵게 만들었다. 

‘어쩌면 채워질 수 있어….’


그 후로도 다소 채워진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내게는 이 결핍을 메우는 일이 너무 중요해서 다른 건다  제쳐놓고 이 사랑에 열과 성을 다했지만, 그 때문에 더 많이 다치기도 했다. 역시 기대가 생긴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 느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걔는 어떤 미래도 확실하게 약속한 적 없었지만, 무척 배신감이 들었다. 걔의 옆에서라면 나도 떼쓰는 법을 익힐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옆자리는 또 내 자리가 아니라고 하니까 불같이 화가 났다. 도대체 언제 내 자리가 생기는 걸까?

헤어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 본 것도 그 애 앞이 처음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애에게 가장 고마웠던 선물을 또 한 번 받아냈다(조금은 억지로 뺏은 것도 같다). 


이제 그만 끊자던 걔의 말에 벌컥 성질을 내면서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내 성에 찰 때까지 전화하고 싶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걔는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깨는 모습에 나는 자도 된다고 했지만, 그는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어떡해?’ 하고 대꾸했다. 진짜 괜찮다고 하니 스르르 잠이 드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잠이 들고 나서는 멈춘 화면 같았는데 코를 고는 숨소리 덕에 아직 통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장면은 시간이 멈춘 채로 기억에 남아있다. 머물러 있는 시간은 영원과 구분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 그 찰나도 내 삶의 큰 부분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충분히 응석 부려본 아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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