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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Dec 08. 2024

나르시시즘의 춤

*글에 성적인 묘사가 등장하니 주의 바랍니다.


‘완전히 나르시시즘에 빠진 춤을 춰보자.’ 즉흥춤 리서치를 함께하는 친구 중 하나가 의견을 냈다. 나는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닥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떤 친구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비쳤다가 이내 머리카락으로 가리면서 연습실에 크게 걸린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나를 좀 봐달라는 것처럼 시선을 우리에게 향하며, 조금은 연극적인 동작을 선보였다. 머리가 연신 흘러내린 채로 찰랑이는 모습이 좀 귀신 같기도 하고 예쁜 것 같기도 해서 정말 홀리는 기분이었다. 각자의 춤이 끝나고 소회를 나눌때 친구가 말했다. 


“나는 사실 춤출 때 흘러내리는 내 생머리가 예쁘다고 생각해. 근데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부끄러웠는데, 춤으로 춰 보니 좋았어.”


그 이야기가 인상에 남았다. 우리는 늘 몸의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며 춤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지, 내면의 상태에 집중해서 친구가 ‘남에게 예쁘게 보이는지’에 대해 의식한다는 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놀라우면서도 나도 그런 마음이 내심 있음을 돌아볼 수 있어 반가웠다. 분명 내가 컨택즉흥*이라는 춤에 있어 1순위로 생각하는 것은 나의 감각과 욕구다. 누군가 물으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 신경쓰지 않고 나를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는 내 춤이 유려해 보이길 바란다. 누군가가 목격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길 바란다. 단지 그 마음에 사로잡혀 내가 나이길 포기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도 솔직하기 부끄러웠다. 잘보이고 싶은 마음은 짜치는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틀이 없는 춤’에 빠져버린 내가, 언젠가부터 ‘틀이 없기 위해 애쓰는’ 마음을 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와 전남친은 롱디였다. 한창 사랑하기도 바쁜데 한참을 떨어져 있으려니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참 답답했다. 우리는 만나면 매일 빠짐없이 섹스를 하는 사이였다. 그러다 헤어지고 다시 연락을 하며 전화로도 조금씩 야한 얘기를 시도했다. 나는 좀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제대로 폰섹스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편하면서도 서서히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초반에 영상으로 보는 걔의 모습은 참 어색했다. 몇 번 못보고 헤어진 몸이라서 정이 덜 붙어 아직 낯설고 거슬리는 기분이 있었다. 어떤 부분은 좋고 다른 부분은 싫었다. 화면 너머로 보기보다는 진짜 만져보고 냄새도 맡고 싶었다. 그에 비해 작은 화면에 띄워진 나는 하고 있는 짓이 낯설긴 했어도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 몸의 형태가 마음에 들었다. 살집이 좀 있어서 섹시했고, 특히 허리가 들어가 있고 허벅지가 굵어서 하체로 떨어지는 라인이 옛날 명화에서 보던 생기 넘치는 여자들 같았다. 작은 가슴도 봉긋 자리잡은 게 나쁘지 않았다. 웨이브 머리로 젖꼭지가 가려졌다 보였다 하는 게 활짝 보이는 것보다 감질나고 꼴렸다. ‘포르노를 찍어도 잘 팔릴 거 같은데.’ 이렇게 샅샅이 스스로를 대상화하는게 무척 빻았다는 건 알았지만, 배덕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와 헤어지고 폰섹스를 할 일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감각을 잊고 있었는데, 혼술을 하고 살짝 취한 어느날 갑자기 혼자 춤을 추고 싶었다. 그날의 무드는 라틴음악이었다. 나른한 음정, 뜻 모를 가사의 쫄깃한 발음에 절로 골반이 움직였다. 마침 방에 거울이 있었고 어설프게 끈적한 춤을 추는 나를 바라보는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거울을 보며 추던 춤도 떠올랐다. 스킨십이 많은 컨택즉흥을 출 때는 되도록 야한 느낌을 빼려고 노력하는데, 그날은 일부러 섹시해 보이려는 움직임과 눈빛을 꾸몄다. 애인 없이는 존재한 적 없었던 내 모습이 오랜만에 혼자 나와서 신기했다. 신나고 몸에 열이 올라서 옷을 하나 둘 벗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나체까지 가는 건 뭔가 민망해서 속옷까지는 남겨두었다. 


내 맨 살을 거울로 보다 보니 누드 모델을 처음 시작할때 잘 하고 싶어서 혼자 연습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일할 때 주워 들었던 스킬을 발휘해 몸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자세를 취해보았다. 몸의 굴곡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때는 잘 해야 했지만 이제는 내가 보기 좋으면 그만이라 즐거웠다. 거울 속의 내가 진짜 섹시했다. 마음에 드는 모습은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참으로 남사스럽고 생경해서 흥분됐다. ‘이걸 자위라고 해야하나? 나는 날 만진 건 아닌데. 근데 뭔가 엄청 야하고, 섹스 같아.’ 낯설지만 안전해서 그 이상함을 충분히 곱씹을 수 있었다. 나의 움직임은 오롯이 나의 것이라는 게 가장 달콤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마음이 한껏 들떴다. 또한 그 날의 기억이 소중한 건, 이제 나랑 자는 사람이 나한테 섹시하다고 말하면 ‘나도 알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 나도 봤거든. 



*컨택즉흥: 신체가 닿는 지점을 바탕으로 즉흥적인 움직임을 탐구하는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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