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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하지 않는

by 모아

나는 내 직관과 감정이 이끄는 일을 하고 싶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직관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내 삶을 꾸려나갔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불화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루에 한 장씩 그림을 그리던 아이였음에도 미대를 가지 않았다. 그건 특별한 사람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에는 요가에 빠져서 열심히 수련해 놓고, 막상 티쳐 트레이닝을 해볼지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그때는 너무 큰 돈이 든다고 생각했고 내가 무언가 도전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때의 나는 26살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한 선택을 뒤늦게 후회하면서, 지금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하려고 한다. 나의 마음은 외로움에 크게 공명한다.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이 없어 사무치게 외로웠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가족들과 집에 있어도 난 늘 혼자라고 느껴졌다. 우울함을 표현하면 가족들에게 더 외면당했기 때문에, 되려 우울함이 계속 깊어졌고 아주 깊은 곳에서 외로움과 슬픔을 길어 올렸다.

그래선지 외로운 존재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늙어서, 병들어서, 마음이 닫혀서 고립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보면 큰 슬픔이 밀려온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시골에 묶여있는 강아지들을 보아도 그렇다.

나는 내가 가진 경험과 재능으로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예술로 일을 만드는 사람이다. 지금은 춤으로 그 뜻을 펼쳐보고 싶다. 내가 외로움을 달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컨택즉흥이라는 춤. 춤을 추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교감해야 한다. 그 연결이 주는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전한다. 내 안에서 진심으로 나온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한다. 평안하고 행복한, 좋은 것들에 대한 마음에 대해서 말하는 만큼 마음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 온갖 너저분한 감정도 꺼낸다. 내 마음이 가진 힘, 따듯한 연결, 폭식증, 가족과의 불화, 결핍, 불안함 등을 다채롭게 수놓고 싶다. 글에 공명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모임도 열고 싶다. 안전한 공간에서 취약함을 조금이라도 내보일 수 있는 모임을 열고 싶다.
내가 모든 걸 통달해서 여는 모임이 아니라, 나도 한참 부족하고 못난 존재라서 같이 얘기하고 위로받고 싶다.

요즘 컨택즉흥춤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고, 차차 책도 내고 글쓰기와 대화 워크숍을 열고 싶다. 자리가 잡힌다면 나만의 공간을 꾸며서 내 공간으로 초대하고 싶다. 춤도 추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어떤 예술 활동이든 상관없이 펼치고 나눌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꿈꾼다.

그리고 나는 노동하는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길 원한다. 무의미하게 과도한 야근을 하고 싶지 않고, 힘들 땐 애써 설명하지 않고 쉬고 싶다. 일 년에 한두번 정도는 여행을 하며 다양한 세상을 겪어보고 싶다. 조직에 고용된 상태에서 이런 것들을 지키는 건 정말 많은 에너지가 드는 기싸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원하는 내가 좋은 노동자가 아닌 걸까 스스로 의문을 품기도 했다. 직장에서 길게 일해보지 못했다는 마음은 자기 비하로 향했다.


그런데 나는 이제야 묻고 싶다. 도대체 왜 일이 사람 앞에 먼저 해야 하는지. 왜 나는 ‘좋은 노동자’라는 상품이 되어야 하는지. 노동자 바깥의 진실한 나를 위한 시간은 왜 이렇게 쉽게 희생되어야 하는지. 한없이 억울하다. 그래서 선언하고 싶다. 나는 내 행복을 일보다 우선시하고 싶다고 말이다. 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보다 나의 건강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켜내는 길을 찾고 싶다. 노동자로서 인격을 존중받고 싶다. 평가 이상으로 인신공격을 하는 비난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잘못된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타협하지 않고 싶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도 말하고 싶다. 솔직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여자이긴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중산층 엘리트 청년이다. 내가 가진 자원으로 인해 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현저히 해치는 일을 피해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야만 하나? 돈이 없고 배움이 짧으면 일을 하다가 부품처럼 다치고 죽는 게 팔자라는 건가? 그런 일들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주요한 동력인데 말이다. 사회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정말 천박하다. 양심이라곤 없고 욕심만 그득한 자본가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내 욕구가 과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나는 그런 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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