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홉살 때, 송민호의 '알람'이라는 음악을 들었다. "오늘은 맞추지 마 알람. 눈을 감아. 맘을 놓아. 하루 정돈 아무 꿈도 꾸지 말고 새벽에 목이 말라 깨지 말고 스스로를 허락해줘, 잠들도록." 이 말이 '십 대의 마지막 한 해' 보다 '고3'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학교에 지각 하는 꿈을 꾸지 않는 밤을 보내고 평안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그 시절을 보냈다. 나는 한 번도 지각을 한 적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누군가에게 밉보이는 것, 규칙을 어기는 것, 싫은 소리 듣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꿈은 늘 반대였다. 꿈에서의 나는 늘 지각을 하고 누군가와 갈등을 하고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을 겪었다.
그 시절 나의 꿈은 열정과 설렘으로 가득 차있기도 했다. 어딜 가나 영화감독이 꿈이라고 나를 소개하고 다녔고 사람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았다. 나중에 성공하면 싸인 해 달라는, 시사회에 꼭 초대 해달라는 그런 희망찬 말들을 들으며 꿈을 키워나갔다. 한편, 송민호의 '알람'이라는 가사에는 이런 말도 있다. "20살 무렵 느낀 설렘과 열정은 차츰 안개처럼 개인다. 점점 보이는 현실은 모노톤." 최연소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 최초로 흥행한 한국의 뮤지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여성 인물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역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와 같은 꿈들을 꾸며 설렘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던 나는 나의 꿈도 안개처럼 개일까, 현실을 마주하고 꿈이 흐려지는 날이 올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주 나중일 것이다.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스물 둘. 꿈이 안개처럼 개이는 시기는 꽤 빨리 찾아왔다. 나의 막연한 꿈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줄 알았던 부모님의 속마음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좋은' 직장에 안정적으로 취직하여 살아갈 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 같았다. 꿈의 주인이었던 나 조차도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지, 돈은 어떻게 벌지, 이 세상에 이렇게 나약한 나를 데리고 평생을 어떻게 살아내지. 생각하며 하루하루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다. 친구들의 꿈이 공무원 또는 회사원일 때 혼자 영화감독을 꿈 꿨던 탓일까, 그 꿈이 흐려지는 시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오자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행복은 분명히 존재한다. 불안은 목소리가 크고 행복은 작다. 고요하고 조그마한 행복을 불안이 가려버리더라도 기어코 행복을 찾아내어 만끽하는 삶을 살자. 그 정도 행복도 못하면 삶이 너무 아플테니까. 돈이 없어 여행도 못 가고 집에만 있기엔 무기력해서 도서관으로 향했을 때 한가득 내리쬐는 햇살에 잠시나마 불안이 녹아내리고, 뒤 따라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었을 때 받는 감사 인사에 또 잠시 행복해진다. 삶은 불안하고 굳건했던 꿈은 안개처럼 흐려졌지만, 이렇게 하나의 글의 마무리는 긍정적으로 하고 싶었다. 나와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과정은 험난하겠지만 그 끝은 결국 다 잘 될 것이다. 다 잘 될 것이다. 무책임하게 낙관적이기만 한 이 말이 때로는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결말 없는 수필이지만. 이 기록도 언젠가의 나에게, 어느 날의 누군가에게 조금의 파동을 남길 지 몰라 몇 자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