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책 속에 고요히 내려앉아

우리는 만난 적도, 같은 시대를 살아간 적도 없지만 그럼에도.

by 고요함

웃고 싶지 않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는 자신답지 못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혼자 있거나 친한 몇 사람과 있을 때를 제외하면 나의 모든 삶은 대개 이러합니다. 자신답지 못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자책감에 휩싸입니다. 나는 왜 자신답지 못했는가. 남들은 다 자연스러운데 나는 왜 이런가.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옵니다.


문을 조용히 잠그고, 천장 한 가운데에 있는 형광등을 켜봅니다. 새하얗고 눈부시도록 밝습니다. 때론 너무 밝은 빛이 부담이 됩니다. 영화나 책 속 인물이 아픈 구석 하나씩 갖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까요. 밝고 강한 빛은 태양처럼 세상 모든 곳을 비추고, 그 아래에 숨을 곳은 없습니다. 이 밝은 빛 한 가운데에서는 그 빛에 묻혀 나의 존재도 지워져버릴 것 같습니다.


모서리에 있는 작은 스탠드의 주황색 불빛을 밝히고, 한 가운데의 불을 끄옵니다. 달빛이 내려앉은 밤바다처럼 어둠 속 한 귀퉁이만 밝히고나니 이제야 방이 방 다워졌습니다. 이제야 내가 자신다워졌습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변두리에 있는 것을 좋아하나봅니다.


83년 전 어느 여름 날, 윤동주 시인은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 땅 위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느꼈습니다. 과거의 누군가가 꾹꾹 눌러 썼던 어느 문장들이 책 속에 고요히 내려앉아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만난 적도, 같은 시대를 살아간 적도 없지만, 당신의 책은 이 세상에 단 한 권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와 나는, 그와 누군가는 책을 통해 분명히 만났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어둠을 조금 내몰아주었고 고요한 위로를 건네주었습니다.


약 100년 전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었다는 사실이 이 세상을 조금 더 자신 있게 살 수 있게 해줍니다. 나 같은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아 외로울 때가 자주 있지만, 분명 100년 후에도 어딘가에도 나 같은 사람은 존재할테니까요. 그가 나의 문장을 읽고 밑줄 긋고 눈물도 조금 흘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나를 떠올려 줄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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