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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25. 2023

햅쌀과 늦벼

소품 같은 이야기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가을걷이 무렵 농활을 갔는데, 3일째 되는 날 우리 농활대는 초토화되어 있었다. 사대장이자 농대장 녀석은 전날의 농민주체 형님과 마신 술을 감당 못하고 완전히 술병이 나 있었고 마침 가을걷이는 순조롭지, 일손이 급하지도 않지, 날씨는 화창하고 높은데, 우리 농활대는 아무런 할 일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 때 마침 쌀도 똑 떨어졌다. 농활대 살림을 맡았어야 할 내가 쌀의 양을 잘못 계산한 탓이다. 소찬에 국이라도 끓여 사대장의 술병도 좀 덜어주고, 후배들을 부양해야 하는데...나는 마을회관에서 저 멀리 보이는 정미소에 왁자지껄한 농군들을 보고, 가서 쌀을 좀 얻어와야겠다 생각했다. 풍요로운 김제의 들판에서는 한창 가을걷이를 하며 탈곡기를 탈탈 돌리고 있던 것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1톤 들이의 대형 포대에 쌀이 가득했다. 나는 지폐를 한장 들고 농군들(당시엔 "형님"들이라고 불렀다.)에게 종종 뛰어갔다. 


"저 형님들 농활대인데요, 쌀 좀 팔러왔습니다."

"쌀 떨어졌나보네이 팔긴 뭘 팔어 야 한바가지 받어가라."

"아이고 오늘 저희 일도 하나도 못했는데 햅쌀을 공짜로요."


 껄껄 웃는 인심. 나는 들고갔던 전기밥통의 내솥에 와르르 담아주신 쌀을 받고 머리를 주억거렸다. 갓 껍질을 벗겨 건조해낸 쌀알이 맑은 하늘의 흰 구름처럼 고왔다. 침이 꼴딱 넘어가는 밥맛이 벌써부터 떠올랐다. 이 쌀이 얼마나 맛있을까? 그런데, 


"야야 우린 햅쌀 먹도 안헌다 맛없어서."

"그제 그거 맛도 없는 쌀이여."

"네?"


 깜짝 놀라 내가 째깐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농군형님들이 말을 덧붙인다.


"햅쌀이 말여 추석전에 빻을라고 기르는 조생종이여, 맛 없어 그거. 가을 되서 걷는 쌀이 맛있는 쌀이랑게."

.

 추석은 벼가 익고 맛이 채워지는 시기에 찾아오지 않는다. 음력 8월 15일 대보름. 맛있는 벼가 익기에는 아직 이른 날이다. 그 날을 위해 우리는 햅쌀을 사서 밥을 한다. 더 맛있는 벼가 있다는 것도 모른채로. 물론 조상께 올릴 쌀이니 맛이 덜하고 더함이 차이가 있겠냐만은. 


 그 말을 듣고 와서 쭐래 쭐래 가슴에, 그 늦벼를 품고 와서는 쌀을 씻었다. 빨리 농활대원들에게 밥을 차려주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전기밥솥이 아닌 무쇠솥을 씻어 가스불에 올렸다. 그리고 간단한 반찬을 하며, 밥이 되길 기다렸다. 조생종이 아닌, 늦벼. 10월 하순에 김제를 찾은 우리 농활대원들에게 마련된 이 한 포대기의 쌀. 갖 도정한 백미. 그것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나는 다들 쉬고 있는 조용한 마을회관에서, 마침내 다 익은 밥을, 무쇠솥의 뚜껑을 열고서 먼저 주걱으로 휘 휘 저은 다음, 주걱에 붙은 밥을 한...


"...어."


 세상에. 


 이 맛이다.


 세상에. 


 정말, 이게 최고의 밥이다. 최고의 쌀이다. 조생종, 그 햅쌀이 아닌, 늦벼. 무르익은 맛 좋은 벼. 갖, 도정한 새 쌀. 


 아이들은 추석 전에 걷기 위해 심어진 햅쌀이 아닐까. 가끔, 나는 지쳐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날 들판에서 형님들이 들려주신 쌀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우리의 학교를 떠올린다. 무르익기 전에 베어지는 벼들처럼, 저마다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우리의 학교 공간에서 아이들은 알차게 커나오지 못한다.


 19살에 정해지는 평생의 경로라는 환상에 맞추기 위하여 어떤 부모들은, 어떤 교사들은. 채 녹지도 않은 땅에 어거지로 쟁기질을 하고 비료를 뿌린다. 물웅덩이 깊이 외따로 종종 꽂아진 벼이삭은 5월부터 쏟아지기 시작하는 땡볕에, 엉기어 오는 잡초와 벌레들에, 태풍에 이지러지고 쓸리며 버티고 버티며 추석을 기다린다. 추석, 차롓상에 올려질 햅쌀이 되기 위해. 


 만약에 좀 더 시일을 벼에게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면.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갈 무렵까지 벼들을 길러낼 수 있다면. 대학 너머의 삶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국영수 문제풀이가 아닌 인생의 대화와 삶의 문제들을 나누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밥의 맛과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지고 깊어질 수 있을까. 


 혹은 추석이 없었더라면, 저마다의 벼가 저마다의 계절에 맞추어 거두어지고, 저마다의 맛을 뽐낼 것이고, 이런 벼 저런 벼가 저마다 하늘거릴 텐데. 아이들의 삶에서, 대학이라는 구분이 지워진다면 아이들의 삶도 저마다 자유롭고 풍요로울 텐데. 


 그날 그 밥의 맛을 나는 다신 보지 못하고 있다. 세상 그 어떤 밥이 갓 껍질을 깎아낸 쌀보다 싱싱하고 달큰할 수 있을까. 그날 그 밥처럼, 나는 아직 교사로서 한 아이의 참된 내면을 일깨워내지 못했고, 나 자신의 삶의 알곡 역시 키워내지 못하였다. 


 다만, 나는 그 맛, 그 늦벼의 단맛 만은 기억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도 잠을 줄여가며, 다른 것을 포기하며, 무언가 가치로운 일이 있다고 믿으며, 하루를 견뎌나가는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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