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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28. 2023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서울의 봄>

훌륭한 미장센, 뛰어난 템포, 살짝의 흔들림

- 저걸 살렸네.


 영화가 시작된 직후, 거의 첫장면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공 격인 이태신 소장(정우성 분)의 뒷모습을 통해 쨍하게 날이 선 것을 볼 수 있는 군복의 다리미 선이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군복이 워낙 밋밋한 디자인의 옷이라 그 와중에도 옷 이곳 저곳에 마치 재봉선 처럼 접힌 자국을 일부러 잡아서 다리미로 다려, 선을 긋는다. 이태신 소장의 뒷모습을 통해 웃음을 머금으며 그 다리미 선을 보고 있다보면 이내 다른 배역들의 군복 차림도 속속 나타나는데 그들 역시 모두, 군복의 다리미 선이 쨍쨍하게 날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못해도 소장, 보통 중령 대령은 되는 인물들이 제 손으로 다림질을 했을 리는 없고 공관병들이 다리미질을 한 것일 테지만 어쨌든, 영화 시작 지점에서 김성수 감독의 이름을 크레딧으로 보게 되고 나서 영화에 대해 갖는 첫 인상이 바로 그 다리미 선이라, 적지 않게 기대가 되었다. 부침이 있었을지언정 확고한 색깔을 보여줘 온 김성수 감독이 정우성 황정민과 만들어낸 작품. 그리고 실제로, 원래 감각적인 연출이 장점이던 김성수 감독 답게 원거리와 근거리, 광원과 조명 등 다양한 시각 기법으로 2시간 20분 간 눈을 즐겁게 한다. 실제 역사에 비해 (당연하겠지만)강렬하게 묘사한 군사적 충돌도 그렇고, 쿠데타를 둘러싼 치열한 음모와 정보전 이외에도 2시간 20분 간 제법 화려한 시각효과가 빠릿하게 잡힌 다리미줄처럼 영화의 생동감을 살려낸다.


 다리미 선 다음으로 영화에 대해 갖게 되는 인상은, 생각보다 템포가 빠르고 건조한듯 담백한듯 흘러가는 반란까지의 초반부 전개다. 생각보다 빠르다. 생각보다 설명은 적고, 이미 알려진 역사적 결말대로의 전개를 빠르게 끌어온다.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육군사관학교와 비교되는 "갑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쿠데타 당일, 공수사령관과 수도경비사령관, 수도치안대장인 헌병감이 함께 요정에 초청되어 붙들리게 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조금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물론, 갑종의 경우 초반부터 하나회의 어둠 속 확장을 보여줌으로써, 세 지휘관이 왜 중요했는가는 후반부에 이들이 각각 쿠데타 진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설명이 되긴 하지만, 쿠데타 시작까지가 다소 빠르게 전개되는 감이 있어서 이 부분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도 생길듯 하다. 물론, 그런 것을 굳이 다 설명하지 않는 것이 요즘 연출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이런 설명을 자제하고 보여주기 중심의 연출이 좋은 점은 당연히 매끄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나쁜 점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10.26 사건이나 당시 정세에 대한 설명이 초반부에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영화 첫 편집본이 5시간이나 되었고, 그걸 줄이고 줄여서 현재의 2시간20분짜리 최종본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런 디테일한 시대상황의 묘사는 그 과정에서 대부붑 컷 당했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서울의 봄>이 빠르게 쿠데타에 진입하면서 보여주는 그 날 선 긴장감과 숨통 조이는 긴박감,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을 순식간에 흐르게 하는 스피디하면서도 꽉 찬 전개는 12.12 자체가 얼마나 기가 막히는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었는지, 그것을 영상화하는 것이 왜 의미가 있는지를 훌륭하게 입증하고 있다. 음모가 실행되고, 위기를 맞고, 또 다른 대책이 세워지고, 그것을 가로막는 반란군과 육군본부, 하나회와 다른 일반 장교, 그리고 국방부 장관, 대통령 등 다양한 인물들이 뒤섞이며 이끌어가는 12.12의 내러티브는 그 자체로 꽉 찬 역사적 현장감을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여기에, 음악은 긴장감을 더하고 CG로 작전도를 묘사하는 디테일하면서도 참신한 기법이 배우들의 호연과 긴박한 시나리오라는 잘 깔린 판에 얹혀지니 거의 지루한 구간 없이 영화가 끝까지 빠르게 흘러간다. 전개 및 연출 상의 아쉬움이라면 중반부, 반란군의 음모가 연신 엎어지면서 두번 정도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상황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조금 새로운 방향으로 연출이 되거나, 동어반복적인 요소들을 걷어내거나 했다면 더욱 훌륭했을듯하다. 워낙 극의 결말부까지 긴장을 고도로 유지하며 진행된 덕분에 후반부에 감정선을 조금 늘어트리는 지점에서까지 큰 아쉬움 없이 즐길만했다. 


 상당히 많은 제작비가 투자된 영화이고 그에 따라 흥행성적도 받쳐주는 추이이긴 하나, 이 영화가 오늘 이 시점에 500만 이상, 어쩌면 1000만까지라도 간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이 영화가 갖는 의의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서울의 봄>이 왜 지금, 우리를 찾아왔고 우리는 그에 답하고 있는지.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지. 


 나는, 이 영화가 나오게 된 지금 시점에 지난 2년 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의 하나인 20대와 30대의 남녀들에게 전두환이란, 광주란, 12.12란, 그리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아쉬움을 느끼며 그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 민주주의의 과실은 지난 30년간 기성세대가 모조리 향유해 버렸고 IMF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비극 이후로 우리 이후 세대에게 남은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반란군의 음모와도 다를바 없는 교활한 손길 뿐이다. 집은 더욱 구하기 어렵고, 서로에 대한 불신은 커져갔으며, 그에 따라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며 이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일 조차 불편하고 거북한 일이 되고 있다. 지금의 20대 30대 세대에게 그래서, 이 영화가 어떤 울림을 줄지에 대해서도 짐작하기 어렵다. 어디에나 일베식의 조롱이 흔하게 들려오고 광주는 여전히 소수이며, 전두환과 이명박이 뿌린 불온한 불씨들이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갈등의 불길을 확산시키고 있다. 예전 <변호인>이 그랬듯, 이 영화도 일베 류의 조롱과 별점테러를 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편, 이 영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를 떠올려본다. 우리 민주주의의 봄이, 꽃피워질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던 시기에 들려온 의외의 비보들. 그리고 검찰권력에 의해 자행된 테러와 쿠데타를, 나는 떠올린다. 그것은, 마치 전두광(황정민 분)의 반란처럼 분명히 명확하게 눈으로 보이는 음모였고, 막을 수 있었고, 막아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가족을 멸문지화의 지경에 처하도록 하고, 울산에서의 선거개입이라는 의혹으로 대통령을 표적해서 타격하려던 음모가 실제로 이루어졌던 봄. 그렇게 빼앗긴 봄에, 마침내 쿠데타를 성공하고 광소하는 전두광을 바라본다. 패배자로 전락해 혹독한 고문으로 할퀴어진 피해자들의 몸을 바라본다. 시선은 내면으로, 그리고 이태원에 가 맺힌다. 


 막을 수 있었던 반란을 우리는 너무나 어리석게 허용했던 것 아닐까. 역사의 한 장면이 우리 스스로의 손에 의해 반복된 아이러니함 속에, 이 전두환이 만들어낸 악의 씨앗들이 오늘날에도,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이태신 소장(정우성 분)의 눈빛으로 인해 내 양심을 조명한다. 마치 2012년의 대선 패배 후 <레미제라블>이 당대의 슬픔을 어루만지던 기분 처럼, 나는 <서울의 봄>이 일정 정도, 우리의 오늘의 패배를 돌이켜보며 위안삼을 수 있도록 해준다고 느낀다. 내일로, 향하는 길엔 무수한 피와 눈물이 자리했다. 그리 함께 걸어온 길에 직접 민주주의가, 최초의 지방자치가, 역대 민주주의 정부가 피어났다. 비극적 패배 뒤 이어진 것이 민주주의의 승리였던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 패배 이후, 우린 여기까지 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서울이 봄>이 주는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는, 서울역은, 사람들은. 그리고 노태우는, 김영삼은, 정주영은. 일베는, 노누체는, 극단적 페미니즘은, 또 우리는.


 우리는 과연, 저 어두운 새벽을 홀로 걷던 이태신의 그 두려움을 대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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