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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19. 2024

유재석과 카메라 울렁증, 그리고 자녀교육의 상관관계

지식과 기능, 그리고 역량! 

 최고의 MC 유재석에겐 10년이라는 길고 긴 무명 기간이 있었습니다. 방송 바깥에선 늘 빼어난 유머감각을 보여주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긴장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게 그 이유라고 하죠. 만 18세, 우리 나이로 스무살의 나이에 KBS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는 모습으로 당당히 합격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카메라 울렁증은 조금 의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는 우리 주위에도 많습니다. 운전이 그 사례가 되겠죠. 면허증을 딸 때까진 당당하게 필기시험도 다 맞고 도로주행도 잘했는데, 막상 실제로 운전을 하려 하니 너무 겁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 사고를 내기도 하죠. 이런 경우에는 운전 자체가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차를 몰지 않게 되는 일도 흔합니다. 


 시험을 봐 면허를 땄는데, 왜 막상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석에선 숨도 못쉬게 웃음을 터지게 만드는 사람이 왜 카메라 앞에선 벌벌 떨까요? 면허 시험장과 실제 도로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한 결과, "역량"이라는 해답에 다다랐습니다.


역량은 무엇이고 지식능력과 어떻게 다른가?     


 역량이라는 개념은 1970년대 미국의 기업들이 경제발전이 둔화되자 노동자들의 능력을 새로이 평가할 필요성을 느끼며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IQ로 대표되는 지적 능력이 인재의 주요한 척도였고, 이것은 좋은 학력으로 보증되었습니다. 그런데,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들로 꽉 찬 기업들조차 사회의 변화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겁니다. 자꾸 기업의 성장을 느려지기만 했습니다. 


 유재석과 비슷하죠? 분명히 빼어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전혀 실력 발휘가 안되는 것입니다. 당시 기업이 만난 위기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국제화가 촉진되면서 미국이 절대 강자로써 군림하지 못하고 다양한 도전자들, 신생기업들과 겨루어야 했죠. 그런 상황에서 기업의 노동자들이 저마다 재산을 축적하고 풍요로워지면서 통제하기 까다로워졌죠. 회사의 활동을 감시하는 주주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의 간섭도 골치가 아팠습니다. 기업은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아야했고, 다양한 채널로 의사소통에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계속되면서 기업으로서는 적응하기가 늘 쉽지 않았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기업이 휘청이는 일도 터지곤 했죠. 


 이런 복잡한 문제들이 경기 둔화와 함께 한꺼번에 닥쳐왔으니 명문대 졸업장, 높은 IQ 점수도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재 평가의 척도가 필요했습니다. 진짜로 우리 기업을 살리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을 뽑아서 길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기업은 “역량”이라는 개념을 적극 받아들였습니다.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지식을 어떻게 잘 쌓아서 좋은 평가를 받느냐 하는 인재 선발 관점이 아니라, “어떻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 효과적인 판단을 하고, 실천하느냐?”로 기업의 구성원들을 평가하기로 한 것이죠. 


 “지식”은 면허증을 따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입니다. 차의 구조, 신호의 종류, 적절한 운전 지침 등을 숙지하고 있어야 안전하게 길을 달릴 수 있겠죠. 그러나 지식만으론 차를 몰 수 없습니다. 실제 차를 몰아서 “능력”을 입증해야하겠죠.


 “능력”은 운전면허처럼 시험을 치름으로써 확인받을 수 있는, 개인이 갖춘 일정 수준 이상의 자질입니다. 지식을 토대로 현실에서 무언가를 움직이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요, 배우가 빼어난 연기를 하는 것도 능력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역량”은 지식과 능력을 검증받아서 운전면허를 발급받은 사람이 도로에 나와서 실제로 운전을 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운전 잘해?”라고 물을 때 그것이 운전에 대한 지식이나 운전 능력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도로에서 다른 차들과 주행을 조율하고 교통신호나 보행자들에게 반응하는 복합적인 능력에 대해서 묻는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역량은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실제 복잡한 조건 속에 그것을 펼쳐낼 수 있도록 함을 별도로 평가해 말합니다. 


 이제 왜 유재석이 카메라 울렁증으로 긴 무명시기를 거쳤는지, 단서가 충분히 제공된 것 같습니다. 지식과 능력은 절대성을 갖습니다. 비행기를 예로 들자면 그것을 조종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나 능력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고, 그 기준을 넘어야 자격을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조종사가 된 뒤 비교적 짧고 안정적인 단거리 노선만 비행한 사람과, 멀고 불안정한 장거리 노선을 주로 비행한 사람 간에는 적지 않은 역량의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절대적인 지식과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은 상대적으로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업무에 따라 다르게 발달합니다.


 과거에는 역량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능력과 지식만 판별해 사람을 선발했습니다. 그마저도 지식이 곧 능력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좋은 능력도 갖고 있을 것이라 기대를 갖고 대학 졸업장으로 사람을 뽑았죠. 그러나 지식과 능력만으로는 기업의 불안한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각종 자격증과 경력으로 능력을 증명한 전문가들이 대규모의 기업 환경 변화 속에서 상당히 무력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죠.


 또한 과거에는 채용시험을 보고 각자 실적을 내면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쟁이 이루어지고 승진을 할 수 있는 구조였는데, 더 이상기업은 직원들이 실적을 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시각각 국제경제가 변화하고 기업의 수익성도 마구 변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보다 신중히 신입사원을 뽑고, 신속정확하게 직무에 대한 훈련을 시키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그들의 업무를 관리해야 했죠. 


 그래서 단순히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느냐” 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발휘하는가?” 하는 역량 측면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직원들의 업무 수행을 관찰하고,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살피게 되었죠. 유재석이 그렇듯, 우리가 운전대를 잡으면 실수를 하듯, 능력을 갖고 있는 것과 그것을 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역량의 결정적인 측면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첫째, 지식과 능력은 타인과의 관계와 무관하게 발현되는데, 역량은 타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둘째, 주도성이 역량의 발휘에 결정적이라는 점입니다.      


주도성과 관계성을 지닌 아이가 역량을 뽐내고공부도 열심히 한다.


절대성을 가지는 지식과 능력은 그것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 통제된 조건을 먼저 설정합니다. 전국 모든 수험생들이 같은 조건에서 수능을 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역량은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에서 개인들이 어떤 판단력과 추진력을 발휘하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따라서 훨씬 복잡한 요소들이 관계됩니다.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혹은 미래 산업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으로 역량 중심의 평가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죠. 그래서 기업에서 역량을 평가할 때는 같은 현장 직원들 간에 상호 평가를 하거나 장기간 업무를 모니터링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업무 상황과 수행 능력을 다면평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좋은 역량을 뽐내게 될까요? 첫째관계성이 높은 사람이 좋은 역량을 발휘합니다관계성이란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가 아니라, 자아 성찰부터 시작해 대인관계, 집단에서의 관계와 역할 수행, 생태적 환경과 국제적인 차원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종합적인 고려를 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포함합니다. 


 환경운동으로 유명한 청소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툰베리는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범지구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제적인 협력을 촉구하고 있죠. 우리가 흔히 관계성으로써 인식하지 못하는 특성입니다만, 실제로는 그 관점에서 살펴야 합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고려하고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며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아이를 이끌어주셔야 합니다그런 아이들이 공동체에서 적절히 역할을 수행하며, 협력을 이끌어내고, 높은 공감능력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에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심미적 감성 역량”,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하는 “의사소통 역량”,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역량”으로 이런 특성들을 묶어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아이들이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아우르며 그들의 상황과 입장을 잘 배려함으로써 관계를 잘 가꾸고, 공동체의 행동 목표를 잘 세워 실천해나갈 수 있다면 좋은 역량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을 확률이 부쩍 올라갑니다. 아직 그런 수준으로 역량이 발화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금새 자신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관계성의 씨앗이 이미 뿌려져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관계성은 아이의 지식과 능력, 역량을 두루 확장시켜주는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의 경험이 공동체와의 만남을 통하여 훨씬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얌전히 공부만 하며 책상 앞에 머무르는 아이와, 학교 자치회 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통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음을 꾸준히 해 온 아이 사이에는 경험의 양과 질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들은 아이에게 삶이 예측 어렵고 복잡한, 갈등이 얽힌 곳이라는 것을 천천히 일깨워줍니다. 이러한 경험들 속에서 아이는 점차로 깊은 생각, 적절한 실천행위를 하는 방법을 깨달아가죠. 이를 통해 지식에 대한 관점 역시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Learning by Doing! 공동체는 아이의 훌륭한 교과서입니다. 


 주도성 역시 역량 발달에 필수적입니다우리가 어떤 가치로운 행위를 하는 것은 다음의 네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불편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의 여러 가지 문제들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더라도 그것을 수동적으로 그저 받아들이는 일이 많습니다. 다음 단계는 그 불편함이 “문제점”, 즉 해결해야 할 과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해서 문제를 바라보고, 그에 따라 자신의 생각도 조정해나갑니다.


 문제해결 노력에 있어서 자신의 가치관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편한 것,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문제가 사실 객관적으로 충분히 합리적인 거라면 어떻게 되죠? 오히려 자기 고집만 앞세우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정말로 이것이 해결해야 할 일인지, 나는 그 문제 해결의 적임자인지 생각해보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세 번째 단계는 종합적인 고찰의 단계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탐색해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창의적 문제해결의 단계입니다. 기존의 방안 중에서 최상의 것을 추리고 거기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해결방안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이상의 네 단계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역량은 자신의 삶과 진로에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관리 역량”,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처리 역량”,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 사고 역량”입니다. 


 우리 아이가 미래 사회에서 유능한 재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능력과 지식에만 반영되는 방식의 공부 활동보단, 그것을 넘어선 역량으로 자꾸 확장시켜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과 직접 대화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한 뒤, 책임을 지는 것들 말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되도록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기르길 원하고, 가르친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건 “능력”까지입니다. 예측불가능한 상황, 다양한 사람들의 갈등이 얽힌 상황을 직접 아이가 경험하고 복잡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에 뛰어 들어가야 비로소 “역량”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역량이라는 관점에 우리가 익숙해져야 아이들의 발달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당장 지금까지 여섯가지의 역량을 설명드렸죠? 아이의 모든 역량을 고루 발달시키기로 마음 먹고, 오랫동안 관찰하고 종합적으로 아이의 특성을 판단하려는 습관이 우리에게도 자리할 수 있을 것입니. 


 아이가 직접 타인과 의사소통하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의 행동방침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속적으로 기회를 부여하고, 피드백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의 역량을 키우고 미래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재석은 국민MC가 된 뒤 더욱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하여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의 깊이를 더해가게 됩니다. 넓게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깊이 있게 대상에 대해 탐색합니다. 환경의 복잡성을 고려하며 대상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발현되는 역량의 특성으로 인해, 자신의 역량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관계성과 주도성이 역량 발달의 핵심이란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성, 무명 시절을 견디는 주도성으로 유재석은 국민MC가 되었습니다. 관계성은 아이 본연의 자아성찰능력을 중심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의 맥락을 헤아리고, 하나의 큰 줄기에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함께 담을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통해서 발전됩니다. 기꺼이 그런 어려운 작업에 뛰어들도록 하는 주도성은 점 점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고 결과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하며, 더욱 질 높은 경험들을 아이에게 선사할 것입니다. 


 여섯가지 역량을 기억해두면 좋겠죠? 한 가지 요령을 알려드립니다. 앞글자들을 따서, 창공에, 의지를, 심자”라고 말해보세요. 창의적 사고 역량공동체 역량의사소통 역량지식정보처리 역량심미적 감성 역량자기관리 역량이렇게 여섯가지 역량이 쉽게 기억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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