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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18. 2024

부록 : 우리 아이 성적표 읽는 법

좋은 교사가 좋은 수업을 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가능한 방법입니다만은

 - 퇴근 후 방학이신데 대단히죄송합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하나 문의드려요ㅠㅠ

2학기 영어 수행평가 중 학습자료 분석 및 평가(20점) 이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좀 전에 저희 반 학생 학부모님이 전화하셨는데, 영어 성적이 이해 안간다고 세부지필, 수행점수 알려드렸습니다. 분명 성적 서명했을 텐데 그 수행평가가 뭐였는지 학생도 기억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말, 혹은 1월 초. 성적푤르 받아본 가정에서는 아이와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1학기 중간고사는 첫 시험이니 그러려니. 기말고사에는 다들 열심히 하다보니 그러려니 하다가 2학기 중간고사가 되고, 기말고사로 한 해의 성적까지 모두 나오게 되면 아이의 성적에 대해, 지금의 발달 상황에 대해 더는 의심을 견디지 못하고 수업 담당교사들에게까지 문의를 해 오는 것이죠. 


 이런 건의 경우에는 수행평가 관리를 잘 해왔다면 큰 문제 없이 근거를 제시해 학부모님의 걱정을 불식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교사가 결정하고 학교에서 관리해서, 일방적으로 아이들이 따라가게 되어 있는 학교 성적 처리 절차에 대해, 집집마다 불만과 아쉬움은 당연히 생기곤 합니다. 그런 마음이 방학을 시작한 교사들에게도 어김없이 전달되곤 하죠. 다행히, 이 문자를 보내온 학부모님은 금새 받아들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보고, 흔들림 없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이의 성적에 대해 받아들이고, 노력한 점을 긍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 성적표를 잘 활용하여, 아이의 공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2017학년도 1학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성적확인을 받았습니다. 성적확인이란, 고등학교에서는 내신 점수를 대학 전형의 자료로 중대하게 활용하고 있고 또한 성적이 결정된 이후에 뒤늦게 문제제기가 들어오거나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고 서명을 함으로써 모든 항목의 점수가 명확하게 합의되었다는 것을 상호 동의하는 절차입니다.


 이 해에 저는 영어 과목의 수업을 재구성해서 2년차에 접어들었고, 전년도의 수업의 부족한 점들을 많이 개선해서, 상당히 만족스럽게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이 하나하나 눈에 보였고, 매 수업때마다 풍성한 영어문장을 서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쓰고, 저는 고쳐줍니다.

 한 학기 동안 풍성한 교감을 나누며 네가지의 수행평가, 그리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두번의 지필평가를 거치고 나서 아이들과 성적확인을 하는 시간은 여러가지 감정이 겹치지요. 딱 2점이 모자라 1등급을 놓치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그래도 한 학기 동안 정말 열심히 해서 정이 가는 아이들 등 다양한 표정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성적확인 후 서명은 교사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업무입니다. 일단, 아이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가 실제로 꽤 있고요, 그리고 모든 학급을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서명을 받으면서, 동시에 아이들끼리 서로의 성적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하니 손이 꽤 가지요.(아이들끼리 성적을 못보게 하는 이유는 중요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입니다.) "꼬리표"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찢어서 나눠주는 경우도 있고, 저같은 경우엔 종이에 길게 구멍을 뚫어서 한번에 한명씩만 볼 수 있도록 해서 아이들을 한명씩 부릅니다.


 그리하여 이 해에, 저는 서술형 채점과 기말 이후 교육활동으로 바쁜 와중에 심드렁~하게 성적표를 들고 첫번째 교실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한명씩 불렀습니다. 학급 전체의 영어 과목 성적표에, 한줄로 길게 구멍을 뚫어서 만든 가림막을 끼우고, 첫번째 아이에게 서명을 받았는데...

"가영이(가명) 너는 수업참여 점수가 2점 빠졌네."

"네."

"그래도 1등급은 나오겠다만...열번만 채우지."

"아 막판에 수학 대비하느라 때문에 영어수업을 좀 쨌어요."

"하하 그래 잘했다. 수고했어."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들의 성적에서 아이의 성격이 보였습니다. 가영이의 경우는 점수가 이랬습니다.


중간고사 : 97.4 / 기말고사 : 95.8

EBS듣기평가 : 만점 / 어휘평가 9.8점(-0.2점) / 수업참여 : 8점(-2점) / 영어에세이 : 만점



 가영이는 학력이 대단히 높은 1등급 학생이지요. 그러나 수업참여 점수가 낮았습니다. 수업참여 점수란, 위의 사진처럼 아이들이 수업 중에 자율적으로 영작 문장을 나와서 쓰고, 그 횟수가 10번을 채우면 만점입니다. 학급에서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만점을 받는 항목이면서, 제가 진행하는 수업의 핵심 요소입니다. 아이들이 영작한 문장을 토대로 문법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의 영어 문법 지식과 어휘지식을 진단하고, 시험에서 서술형평가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수업 참여 점수가 낮았네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둠형, 활동형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이 아이의 경우는 학원에서 선행학습까지 모두 마치고 오기 때문에 수업 내용은 완전히 알고 있고, 교사에게서 더 많은 "강의"를 들어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시험에서의 실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러니 수업참여를 8점 정도 맞춰놓고는 더 수업에 참여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 이 아이에게는 어떤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하느냐? 아이에게 조금 더 높은 턱걸이를 부여해줘야 하는 경우겠지요. 1등급은 이미 맞았으니, 영어말하기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고 그것을 생기부에 기재해주는 등의 요령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아이와 나눈 대화를 하나만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나은이는 진짜 열심히 했는데. 지필이..."

"아 시험은 진짜 못보겠어요."

"듣기는 만점이잖아. 어떻게 공부했어?"

"저 듣기는 잘해요."

"음...중학교 때보다 많이 어려워?"

"네 맞아요 시험도 어렵고."


 나은이의 성적은 아래와 같습니다.


중간고사 : 55.7 / 기말고사 : 52.2

EBS듣기평가 : 만점 / 어휘평가 7.6점(-0.2점) / 수업참여 : 만점 / 영어에세이 : 만점



 학습 동기가 강해서 수업 참여에 따라서 영어 에세이, 수업 참여 점수가 만점이고 듣기평가도 만점입니다. 스스로 공부할 능력이 되는 아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필평가 수준은 딱 평균선입니다. 왜 이럴까? 하고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중학교에 비해서 상승한 수업과 시험의 난이도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였습니다. 단어 점수가 낮은 걸로 봐서, 단어 공부를 더 할 필요도 있는 것 같군요. 다른 수행평가는 모두 만점인데 단어가 저정도 점수인 것은, 암기를 싫어하는 성향의 아이입니다. 나은이가 학원을 다니는지 궁금한데, 방과후수업을 듣거나 교사가 독해 자료를 더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해보입니다.


문제는,


 문제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교사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의 성적표에서 아이들의 개성을 읽어낼 정도로 자신의 수업과 평가를 잘 활용하는 교사들이 많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2017년도의 저 좋은 수업을 놓고, 다음해에 고3 수업을 해야 했습니다. 고3에선 저렇게 못하지요. 고1 수업은 다른 선생님이 맡아 다른 방향으로 다르게 했습니다. 저의 수업은 붕 떠서 날아가버린 거죠. 그러나 교사로서는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한 교사들이 이 수준으로 수업을 재구성한다고 해도, 자기가 먼저 나서서 학부모들에게 말을 거는 일도 불가능합니다. 불필요한 접촉이죠. 통지표의 가정통신문에 잘 적어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러기엔 일이 너무 바쁩니다. 좋은 교사일수록 학교에서 짬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이들과 나눈 대화도, 학부모님들께는 닿지 못합니다.


 학부모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이처럼 성적표를 읽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수업을 잘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실제로 아이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각 과목의 각 수행평가에 어떻게 참여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아이의 성장의 디딤돌로 삼아낼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지식을 갖춘 학부모들은 정말로 드뭅니다.


 만약 학부모님들이 그런 지식이 있다고 해도, 이를 테면 학교에다가, 이 수업 이 선생님 수행평가가 좀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안된다. 바꿔달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서로 어렵고 피로하고 곤란한 문제입니다. 아이들에게 더 불이익이 없길 바라면서, 아이가 그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의 공정성에 잘 적응하길 바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대신에,


 그 대신에 학부모님들께서 성적표를 받아보고 하실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아이의 성적이 변하는 추이를 바라보며 아이가 갖는 흥미가 무엇이고, 어떤 분야의 재능을 길러줄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점수"는 아이의 "현재 시점의 교과 능력"이 아닙니다. "교과 관련 지식"은 반드시 "시험 점수"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위에 예시로 든 나은이의 경우가 그렇겠죠. 영어 능력을 따진다면 지필평가 평균 55점보단 10점은 더 얹어줄 수 있는 아이입니다. 실제로 수행평가에서 고르게 좋은 점수를 받았고, 그것이 총점에 합산되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나은이가 지필평가에서 55점을 받은 것은 "영어 공부를 못해서"가 아닙니다.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이 부족할 뿐인 것이죠.


 나은이에게 방과후 말고 또 어떤 코칭을 할 수 있을까요? 장기적으로 영어 실력을 늘려갈 잠재력이 충분한 것으로 보이니, 대학 진학 직후에 빠르게 영어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면 또래들보다 좋은 입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도 여러 코칭을 할 수 있겠죠. 모든 평가항목에서 80% 정도의 달성도를 나타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공부는 그럭저럭 하는데, 높은 점수를 받겠다는 의지는 없죠. 승부욕을 드러내는 성향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 아이에게는, "한번쯤 85%가 아니라 200%의 노력을 해 보아라."라는 조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성적표"란 건 애초에 아이들을 혼내는 매개체가 전혀 아닙니다. 평가의 목적은, 아이들의 상태를 진단하고, 어떻게 보완해나갈지를 알리는 지표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적표를 받아들고서 실망이란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 아이의 학교 생활을 읽어내는 기회는 소멸됩니다. 점수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시험"에 적응할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고, 높은 점수를 받는 아이가 꼭 한군데 씩 엎어지는 것이 눈에 띈다면 그 아이의 기질 문제이니 그것을 순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지요. 그것이 평가의 본래 목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발달"이란 것은 일종의 한정된 자원임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모든 아이에게 부여된 시간은 같습니다.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자극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에는 아이의 인지수준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아이마다 한계선이 있습니다. 시험도 잘보면서 교과지식의 원리까지 정통한 아이는 손에 꼽을만한 영재일 것이고,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하여 문제풀이를 거듭하는 학생이라면- 안타깝게도, 아이의 자발성이라는 역량과 창의성이라는 역량에 투자되지 못한 "공부자원"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성장을 읽어낼 수 있는 전문성을 학부모님들이 갖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성적표를 읽어내는 일도 연습을 거듭하면 충분히 학부모님들의 자질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아이와 마주앉아서 하나씩 보고서, "이 과목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하나 둘 이야기하다 보면 해가 쌓일 수록 아이의 학교 생활이 잘 보이실 거예요. 즐거운 대화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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