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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17. 2024

학습 주도성,정말로 해답일까?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짓만 하는 아이, 정말 괜찮아요?

 결국 우리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많은 관심과 에너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고, 직장에서도 성공을 거두는 것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행복을 추구해나가면 더 좋겠죠. 


 이런 희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나중을 위한 입시교육을 어릴 때부터 미리 시켜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하는 길이라는 믿음이 우리 사회엔 널리 퍼져있기도 하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거의 그런 행운은 우연히 찾아옵니다. 공부를 열심히 시켰더니 어느새 그 아이가 노래도 혼자서 열심히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혼자 척척 해내고 하는 식이죠. 


 다시 말하면 아이가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를 보이고, 재능을 꽃피울 여력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나 않을까 하며 노심초사하는데, 엉뚱한 구석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며 “저렇게 자기 분야에서 흥미를 보이니 잠재력이 있구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부모님들은 많지 않죠. 


 그런데 과연, 대학이나 기업에서도 똑같이 생각할까요?


기업의 생존과 개인의 역량     


 변화하는 미래사회에 대비하는 것이 아이를 기르는 부모님들만의 고민은 아닙니다. 사실 많은 기업들이, 어쩌면 자녀교육보다 훨씬 앞서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해 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막 시작하려던 시절이죠. 그때 미국 등 선진국들은 오히려 거꾸로 성장이 늦어진다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이후 시작된 30여년의 장기 호황이 막을 내리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때 기업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었거든요. 1920년대 시작된 대공황처럼 경제가 마비되고 기업이 사라지는 경험을 여러번 거쳐왔습니다. 대책을 세워야겠죠. 그중 한가지가 직원을 채용하고 승진시키는 것에 “역량”이라는 요소를 대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라, 역량? 우리가 앞에서 창공에 의지를 심자. 이렇게 여섯가지 미래 역량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역량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잠깐 보실까요?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과 교육을 포함한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은 다음과 같다.   

가. 자아정체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진로에 필요한 기초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관리 역량
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처리 역량
다.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 사고 역량
라.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심미적 감성 역량
마.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하는 의사소통 역량 
바.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역량 

 앞에서 보았던 역량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잠깐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 더욱 좋군요. 교육과정 총론이라는 것은 헌법처럼 국가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굉장히 두툼한 책자입니다. 지금 위에서 보신 것이 교육과정 총론의 두 번째 페이지의 내용들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죠. 바로 다음 페이지, 그러니까 우리 교육과정 총론의 세 번째 장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추구해 온 교육 이념과 인간상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함양하여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이를 위한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은 다음과 같다.      


가. 인문・사회・과학기술 기초 소양을 균형 있게 함양하고,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따른 선택학습을 강화한다. 
나. 교과의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학습 내용을 구조화하고 학습량을 적정화하여 학습의 질을 개선한다.
다. 교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학생 참여형 수업을 활성화하여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기르고 학습의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한다.
라. 학습의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를 강화하여 학생이 자신의 학습을 성찰하도록 하고, 평가 결과를 활용하여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한다.
마. 교과의 교육 목표, 교육 내용, 교수・학습 및 평가의 일관성을 강화한다.
바. 특성화 고등학교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에서는 국가직무능력표준을 활용하여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초 역량과 직무 능력을 함양한다.


 좋은 내용이니 한번 읽어볼만 하죠? 그런데 “역량”이라는 말이 핵심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는 점을 거듭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량이 뭔지 알아야 그것을 아이가 함양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지 않겠습니까? 대체, 역량이란 뭘까요? 이번엔 역량의 정의를 몇가지 찾아보도록 하죠.      


“내재된 특성으로서 효과적인, 그리고 훌륭한 직무수행을 발현시키는 것” (klemp)

“개인의 직무 중심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연관지식, 기술, 태도의 조합으로서 직무의 수행와 연관되며, 잘 인식되는 기준으로 측정될 수 있고, 훈련과 개발을 통해 향상될 수 있음" (parry)

“개인에게 내재된 특성으로서 규준지향의 영향 혹은 직무 상황에서 뛰어난 수행능력과 관계됨” (Spencer and Spencer)


 역량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찾아보았더니 먼저 살핀 교육과정 총론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죠? 역량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다듬어서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것이 교육계가 아닌 기업과 산업계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마이크를 기업의 입장으로 돌려보죠.      


 1970년대에 미국의 기업들은 상당히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경영인들이 전문적이지도 않았고, 국제화로 인해 새로운 경쟁자들이 마구 등장했고, 기술변화는 너무 빨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재들을 제대로 뽑고 성장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업인들이 좋은 인재란 무엇인지 살펴 보니 이게 꽤 복잡합니다.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좋은 직원들의 능력은 수면에 가려진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기업이 직원들의 역량을 분석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하죠? 그냥 딱 시험 쳐서 직원을 뽑아놓으면 알아서 그들이 실적을 내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마당에, 제대로 사람을 뽑으려고 하니 지식, 기술, 특성, 동기 등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걸 기업을 알게됩니다. 그나마 지식이나 기술은 별도의 시험을 통해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자격증이라는 간단한 방법도 있고요. 그런데 개인의 특성이나 동기가 지식이나 기술의 밑바탕이 되는데 더욱 알기 어렵죠. 그래서 아주 많은 돈을 들여 역량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합니다. 

 

 그 결과 최근에는 다음의 네가지 요소로 간명하게 역량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동, 성과, 상황, 공유죠. 


 첫째로 역량은 행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협업과 의사소통 등, 실제로 업무현장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행위들을 포함하게 됩니다. 빠른 추진력과 실행력도 모두 행동을 드러내주는 지표들이죠. 


 둘째, 성과는 해당 직원이 세운 목표에서 실제로 결과를 잘 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셋째 넷째, 상황과 공유가 더욱 중요합니다. 


좋은 역량에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필수!


 여기서 말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직원에게 주어진 업무와, 업무를 둘러싼 상황을 말합니다. 알기 쉽게 교육 문제로 바로 이어볼까요. 우리 교육현실이 어떨까요? 미래 예측은 어려워지고, 교육기관보다는 사교육의 영향력이 크며, 경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교사의 역량을 평가한다면 수업을 할 때 이런 교육을 둘러싼 상황들을 잘 감안해서, 자신의 수업 속에서 그런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업무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탐구를 하며 보다 나은 행동과 성과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는 객관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 이야기해보죠. 우리 아이에게 뛰어난 자질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디에든 대회를 내보내면 되겠죠. 그러면 그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단번에 공유될 수 있습니다. 꼭 우수상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학생들과의 비교와 경쟁을 통해서 실제로 우리 아이가 어느 수준인지는 잘 알 수 있게 되겠죠. 마찬가지로, 기업에서도 직원들의 능력을 잘 알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직원들도 그런 객관적 평가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힘을 쓰게 됩니다. 꼭 시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적을 관리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성과물을 남기려고 하겠지요. 


 역량평가에 있어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사물에 대한 흥미를 생존에 연장시켜, 환경에 적응하고 환경을 조정하는 학습의 과정을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한 아이가 주변 환경에 흥미를 갖고, 그를 탐구하며, 조정과 적응을 하며 차츰 자기의 세계를 넓혀가는 것과 직원이 기업의 직무환경에서 업무에 적응하고, 조정을 하면서 성과와 실적을 넓혀가는 것은 거의 구분이 어려울만큼 유사하죠. 


이런 유사성은 기업의 삶, 직원 개인의 삶, 학습자인 아동의 삶이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지속된다는 간단한 원리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가 학교교육을 삶으로부터 분리하여 교과서의 내용과 시험문제에만 함몰될 때, 아이의 삶의 지평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죠. 아이를 관찰하고 있다보면 여러 가지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영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 매 순간에 자기를 둘러싼 생활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바꾸려면, 억지로 할 필요도 사실은 없죠. 아이의 생활환경을 개선시키면서 아이의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낼 자극을 형성해줄 수 있다면 아이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지식에 한정되지 않고 역량을 함양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다시, 복습을 해보죠. 역량이란 행동, 성과, 상황, 공유의 조합으로 나타납니다. 아이들의 기능과 점수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되, 상황과 맥락을 아이가 사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부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면, 어째서 공부를 해야하는지 공부를 하는 이유와 그 결과를 충분히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도 아이의 현재 수준이 바깥에 드러나는 것을 잘 관찰하고 세심히 관리해 주어야하겠죠. 아이가 부끄러워할 때, 그럴 수 있다고 격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꾸 자기의 역량을 드러내려는 연습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와 사물을 잇는 흥미의 연결망을 인식한다고 할 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과제는 아이 스스로 연결하지 못하는 사물들과의 관계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만들 것이냐? 이것은, 어떻게 아이와 대상과의 관계를 잘 설명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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