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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15. 2024

미래교육과 우리 아이의 “스스로 공부하는 힘”

알파고는 중요합니다.

 어떤 변화들은 세상을 영원히 바꿉니다. 전기가 없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인터넷 없이는 어떨까요? 어떤 변화들은 사람들의 삶과 생각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2016년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지적 스포츠인 바둑에서 천재 기사 이세돌이 알파고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은 인공지능의 획기적인 발전을 선보이는 발표회와 같았습니다. 


 한국의 교육자들에게도 “알파고 쇼크”는 매우 큰 행운이었습니다. 지식과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폭풍처럼 밀어닥치는 계기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식의 축적과 활용에 대한 완전히 다른 시각이 제공되었죠. 이때까진 교육의 목표가 지식의 습득이었습니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해도 지식 자체의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었거든요. 많이 아는 학생이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보다 AI가 알고리즘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 클 수도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 알파고 쇼크로 인해 제공된 것이죠. 이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것, 즉 “역량”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지식을 습득하지 않고 어떻게 공부를 하지? 하는 의심이 드시겠지만, 당연히 지식의 가치는 줄어들긴커녕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제대로 쓰지 못할 지식이라면 없느니만 못하다는 관점이 추가가 된 것이죠. 지식을 어떻게 쓸 것이냐, 하는 능력은 실제로 중요합니다.  제가 인상깊게 읽은 책 구절이 있어서 소개해보겠습니다. 조금 긴데요, 전체를 읽어볼만합니다. 2014년에 출간된 강연집인 <교사, 입시를 넘다>의 한 꼭지, 최형우의 "교사, 미래 사회의 변화를 내다보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2014년에 현재의 인구절벽과 변화하는 미래 일자리 시장을 잘 예측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교사, 교수가 현재 인기 있는 직업인가요? 현재 지방대학 교수들은 파리 목숨 아닌가요? 많은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나요? 저는 후배가 지방대학의 교수로 간다고 한다면 뜯어말릴 겁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한테 가서 학생들 좀 보내달라고 빌어야 하잖아요. 로스쿨을 나온 친구들도 직장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연봉 2천만 주면, 자존심 다 버리고 취직하겠다는 로스쿨 나온 친구들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야생동물이 나오면 서는데, 변호사가 앞에 있으면 치고 간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변호사회에서 들으면 문제가 될 만한 것이죠. 그만큼 미국에 변호사가 흔하다는 겁니다. 변호사가 앰뷸런스를 따라다닌다고까지 합니다. 의료 분쟁을 대리해 줄 수 있다고요. 혹시 이혼할 거면 나한테 연락해 달라고 장례식이나 결혼식장 가서 명함을 돌린다고 합니다. 변호사가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 도산하는 병원들이 많습니다. 소위 멘붕 사태를 맞고 있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개원을 했는데, 장사가 안 되고, 빚도 못 갚아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거죠. 요즘은 대학 병원의 의사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옛날에는 모두 개원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만큼 장사가 잘 돼서, 오히려 대학 병원 의사들이 불쌍하다고 여겼죠. 그런데 요즘은 대학 병원 의사로 남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공기업이예요. 아주 목숨을 겁니다. 그런데 공기업의 기반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누가 알겠어요. 공기업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퇴직하고 나서 가장 사기를 많이 당한 사람들이 은행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예요.


 제가 모 공대의 원자력공학과 교수님과 이야기했는데, 자기네들은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합니다. 두바이인가, 아랍 에미리트인가. 거기에 원전을 수주했다고 했을 때는 쾌재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후쿠시마에 원전이 터지면서 원자력 공학과 출신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1970~80년대에 건축학과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생산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삶의 질이 굉장히 낮습니다. 보기에는 굉장히 멋있을 것 같죠. 실장님이라고 불리면서 건축 설계하는데, 일단 원두커피 마셔야 하고, 담배를 피워야 하고, 또 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퇴근 안하냐고 질문을 하면 멋있게 좀 더 하다 간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시다”를 몇 년이나 해야 해요. 굉장히 열악하고 취약합니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사회복지 영역입니다. 사회복지학과가 우리나라에 너무 많이 생겼습니다. 너무 많은 인력들이 배출되고 있어요. 그들이 모두 제대로 된 자리들을 얻을 수 있을까요? 굉장히 불안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학과는 사회복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의 복지를 위해서 존재 한다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당장 우리 손안의 교통카드도 지식의 중요성, 기술의 변화로 달라지는 세상의 모습을 생생하게 입증합니다. 교통카드라는 기술 하나가 없앤 일자리가 몇 개나 될까요? 못해도 수십 만 개는 될 것입니다. 교통카드의 발명 전에는 길가의 작은 가게에서 버스 티켓을 팔고 신문을 팔았죠. 서울의 큰 전철역마다 출퇴근 시간대엔 5~6개의 매표소마다 줄을 선 사람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지하철 표를 샀으니까요. 정액권이 있긴 했지만 그때그때 표를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교통카드가 보편화되면서, 그리고 신용카드가 교통카드와 연동되기 시작하면서 버스 정거장과 지하철의 매표소는 완전히 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업무나 일자리를 찾아봐야했죠.


 인터넷에서 "미래 유망 직업"을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자료가 쏟아집니다. 조사기관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아마 많은 부모님들께서 한번쯤은 관심 갖고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보건 의료, 법률, 사회복지, 산업안전, 항공, 컴퓨터 네트워크 등이 자주 꼽히는데 최근엔 발전한 AI 기술이 법률가를 대체할 것이라고들 합니다. 또한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나날이 번창만 할 것 같던 항공산업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죠. 미래 예측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가 아이를 가르칠 텐데, 미래 예측조차 시시각각 달라지는 세상입니다.      


어떻게 아이의 공부하는 힘을 키울까?


 이쯤 되면 우리가 미래에 대해 몇가지 원칙을 정하고 그 틀 안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과거의 암기 중심 지식교육과 학벌 중심의 학교교육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합니다. 체인지메이커나 창의력교육에서 보듯, 아이가 공부를 할 때도 문제풀이보다는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해졌습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장애물이 있죠. 시험 성적이 지식 축적에 따라 좌우된다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프로젝트 활동, 체인지메이커 활동, 동아리 활동 등에서 뛰어난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협업능력 등을 드러낸 아이라고 한들 시험 하나를 못보면 무슨 소용일까,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시험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식습득 보다는 자기관리 능력 등, 단순한 지식보다는 아이의 역량적 요소들이 많이 작용하게 됩니다. 또한 대학이든 기업이든, 지식의 습득 이상으로 역량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보다는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영역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격려해야 합니다. 직업에 대한 대화는 아이의 재능과 흥미를 고려해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어렵죠. 경쟁은 불안하고 아이에게 들어가는 교육투자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아이가 기대와는 다르게 엉뚱한 모습을 자꾸 보입니다. 그럼 학교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소식, 주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이를 책상에 앉히고 감시를 하게 되죠.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학부모가 아무리 뛰어난 적성을 가진 아이를 기른다 할지라도 20대까지 어찌어찌 그 방법을 쓸 수 있을 뿐이지 성인이 되고 나서 30대부턴 어김없이 시대의 변화를 맞이해야 합니다. 50대가 되어서도 여지없이 생존경쟁에 다시 뛰어들게 되는 것이 요즘의 세태죠.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충분한 자율성 없이, 변화가능성에 대한 경험과 성찰을 스스로 가져본 경험 없이 그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반대의 사례가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창의력과 통찰력 모두 최고의 역량을 뽐내고 있는 백종원 씨의 경우를 볼까요? 요식업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사업가였는데, 소유진 씨의 남편으로 방송에 몇번 정도 소개된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이목을 끄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번쩍 하고 알파고 쇼크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이 발생! 소비자-제작자 쌍방향 의사소통형 방송에 나와 편안한 입담과 요리솜씨를 뽐내더니, 지금은 요리사업 전문가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지식이 기술의 변화를 부르고, 그로 인해 생겨난 사회변화가 사람의 개인적인 삶의 모습까지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비결은 무엇일까요? 지식을 습득하는 영역과, 그 지식을 응용하여 다양하게 탐구, 분석, 재구성을 하는 영역이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둘이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이루어지더라도 나중에는 합쳐질 수 있습니다. 수학을 열심히 하는 아이가 요리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다보면, 나중에 수학에서도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백종원 씨가 공부도 안하고 어릴 적부터 웍만 잡고 있던 것도 아니지만,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것에 절대 NO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우선입니다. 흥미를 보이는 영역에서 창의력과 인지능력을 먼저 틔우고, 그 다음에 학교에 보내서 책을 읽혀도 늦지 않습니다. 아이의 인생은 너무 기니까요. 


 셋째, 평생학습은 현실입니다. 자신의 전문영역 안과 밖에서 관찰력, 분석능력, 호기심을 발휘해 무엇이든 체험해보고 그로부터 배움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평생에 걸쳐 발휘하는 것입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운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네비게이션만 보고 운전하는 사람이 있고 네이게이션이 제시한 길을 보는 한편, 꾸준히 표지판을 보고 도로정보를 살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전자보다는 후자가 지리를 빨리 알게 될 것입니다. 


 다시 요리는 어떨까요? 매일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고 도통 요리 솜씨를 발전시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집에서 해먹는 밥이라고 해서 음식에 발전이 없다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그 밥을 먹는 가족들은 새로움과 즐거움을 느낄까요? 


 네비게이션에만 의지하는 부모, 매일 메뉴가 변하지 않는 부모가 될까요 아니면 네이게이션 없이도 길 잘 찾아 운전하는 부모, 매일 다양한 음식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모가 될까요? 하루 하루 팍팍한 삶 속에서 어느 쪽이 우리 자신에게 보람있는 길일까요?


 변화탄력성(changeability)은 유연성과 탄력성, 예측불가능성 등을 포함합니다. 사실 10년 뒤 유망직업 같은 것을 머리에서 지우는 게 지금은 좋습니다. 어떤 고정된 현상을 머리에 입력하는 순간, 학부모와 아이의 인식에 경직성이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럼 경직성이 생각의 왜곡을 부르게 되죠. 아이에게 특정한 직업을 설정하고 그 코스에서 좋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게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에게 전문성을 불어넣어준들, 미래의 변화상은 예측이 어렵습니다. 우리 아이가 경제구조 변화와 기술혁신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평생교육. 아이가 쉬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워가며 탄력적으로 미래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교육이론을 소개하자면, 4C 이전에 3R이 있었습니다. Reading(독서), Writing(쓰기), Arithmetic(산수)인데 이것은 미래역량인 4C와 달리 아주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교육 요소죠. 그런데 평생교육의 관점에선 이것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올바르게 읽고 쓸 줄 알아야 비판적 사고와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산수를 잘 해야 빠르게 정보를 해석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세상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학습 역량”이죠.


 마지막으로 변화탄력성을 우리 인식체계에까지 확장하여, 아이를 고정된 존재로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는 예측 불가능의 우주이죠. 아이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짓고 사진과 동영상을 증거로 남겨오던 시절의 부모들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낯빛을 바꾸어 "다시 봐, 이걸 왜 못해?"라는 말을 합니다. 자신들이 바라는 상에 아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죠. 그 모습은 아이에게 당혹스러움, 멘붕 그 자체입니다.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성장과 발달을 가로막고 서서, 어느 한 방향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부모님들의 "이걸 왜 못해?"하는 목소리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아이들은 결국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부터 학력경쟁에서 밀려나며 저학력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받아들게 됩니다. 그 상태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시간을 허비하게 되죠. 이미 아이의 창의력과 자율성을 억누른 부모님들이 뒤늦게 학원이든 과외든 붙여주지만 대개의 경우, 그야말로 낭비로 끝납니다. 


 변화를 인식한다면, 변화탄력성을 나와 아이의 역량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키운다고 한다면, 그 시작은 바로 지금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길은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바다 위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와 우리가 타고 있는 것이 안전한 자동차가 아니라 망망대해를 탐험하는 작은 범선이라면, 미래는 아무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부모의 능력, 재력, 시간도 언젠가 한계를 맞이하게 되겠지요.


 아이의 삶을 이끌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를 부여하고 변화에 적응시키는 것. 그런데 그것은 바로 지금,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변화 자체를 필연으로 여기고 늘 미래를 대비하는 학습자 또한 이미 즐비하다는 것도 잊지 않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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