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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18. 2024

우리가 그리는 아이의 모습은 현실이 된다

구체적으로 아이의 학습상 그리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따분한 삶을 사는 주인공 월터가 그리는 몽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상의 세계에서 월터는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모험가가 되기도, 우주 비행사가 되기도, 화재 건물에 뛰어드는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 소심한 직장인인 월터의 삶이 그려지는 동안엔 그 몽상이 허무맹랑하기만 하고 실속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어떤 사건에 이끌려 월터는 자신이 그동안 바라오기만 했던 모험 속으로 직접 뛰어들게 됩니다. 몽상은 구체적인 현실이 되고 월터는 자신이 바라던 삶의 생생한 순간을 몸소 경험하죠. 


 말 그대로, 월터의 상상은, 선명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월터를 통해 우리는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잘못 찍혀 흐릿한 사진 속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분간할 수 없지만 선명하게 찍힌 사진 속에선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분간해낼 수 있고, 또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까지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역시도 어떤 것을 꿈꾼다면, 희망한다면, 그 모습을 생생하게 마음 속에 먼저 그려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 우리는 아이의 어떤 모습을 마음 속에 품고 있을까요? 우리의 상상이 구체적이고 명확할수록 실제로 그런 아이로 키울 수 있는 길도 명확하게 그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되길 바라실까요? 예를 들어, 서울대 의대? 그것은 아이가 얻어낸 결과물일 뿐, 아이 고유의 특성이나 능력이라고 할 수 없겠죠. 그럼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이것도 선명한 모습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왜 공부를 할까요? 어떻게 공부를 하죠? 하루에 몇시간이나 공부를 하면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될까요? 또, 시키지 않아도 좀 알아서 척척 공부해주고, 그러면서 성적도 빼어나고, 또 아이 스스로 행복해야 하겠죠? 


 이런 아이, 세상에 어디에 있냐구요?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천재, 수재 혹은 영재라고 부릅니다. 다만 셋이 다 조금씩 다르죠?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의 선명한 미래 모습을 말이죠.      


천재수재그리고 영재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모습. 먼저 천재가 있습니다. 천재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천재는 교육을 통해 다듬어질 수 있는 그 이상의 잠재력을 타고난 아이들이므로, 우리가 모습을 그리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늘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게 되니까요. 교육을 넘어선 발달상을 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천재교육이라는 말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천재의 재능을 발화하기 위해 약간의 역할을 할 순 있지만, 천재와 교육의 관계는, 일반적인 아이들과 교육의 관계와는 같지 않죠. 


 우리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 수재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여러 과목에서 전반적으로 좋은 성취를 보이는 우수한 학생에게 붙는 영광스러운 호칭이죠. 그런데 이렇게 빼어난 학생을 만드는 “수재교육”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수재는 교육의 성과로써 얻어진 아이들의 성적을 중심으로 표현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본래부터 교육이란 아이들을 빼어난 아이들로 만들고자 구성되어 있고, 마땅히 수재들은 교육을 통해 생산되어야 할 당연한 목표이니, 따로 수재교육이라는 말도 굳이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또 수재라는 말이 천재처럼 아이의 도드라진 특성을 담고 있지 못합니다. 


 영재는 어떤가요? 천재와 같이 하늘이 내린 비범한 재능까지는 꼭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이른 시기에 한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분명한 성장세를 보이는 아이라면 영재라고 불려집니다. 그렇기에 천재처럼 드물지도 않죠. 미술 영재, 트로트 영재, 언어 영재. 각각 저마다의 영역에서 영재로서의 재능을 뽐냅니다. 그 덕분에 영재는 아이들의 고유한 개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육계의 거목인 정범모 선생께서는 그래서 천재, 수재, 영재 세 유형의 아이들 중에 “영재”가 우리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천재는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재는 교육의 결과일 뿐이니, 우리는 생생히 그려야 할 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영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영재교육의 길은 “영재”라는 말에 숨겨져 있습니다. 천재天才가 하늘이 내린 재능, 수재秀才가 빼어난 재능을 뜻한다면 영재英才는 한 아이가 가진 잠재력이 인내의 시간을 가진 꽃피워져 드러난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학생들이죠. 그래서 영재교육은 아이가 가진 본질적인 힘에 주목하며 그것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영재교육은 어떤 교육을 말할까요? 영재교육을 받으면 모든 아이는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나요? 대답은, 네 그렇습니다. 교육을 통해 누구라도 영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아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살아가도록 하면 말입니다.      


영재교육과 개별화 교육     


 놀랍게도 영재교육의 가능성이 실험으로 입증된 사례가 있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의 Bloom이라는 교육학자가 “완전학습” 이론을 소개했고, 우리나라의 여러 교육학 교수들이 이것을 실제 실험을 통해서 증명했습니다. 


 완전학습이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95%가 학습목표의 90%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론입니다. 교육 방식만 조금 바꾸면 다양한 배경과 성적 차이를 가진 아이들도 대부분 우리가 바라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맞춘 개별화 교육입니다. 당시의 우리나라 연구진들은 30명씩 두 학급을 구성해, 한 학급은 1명의 교사가 30명의 학생을 강의식으로 가르치고 다른 학급은 30명의 교사와 30명의 학생들이 각기 마주 앉아 1:1 수업으로 진행했습니다. 완전학습을 위해 적절한 수업 목표를 제시했고, 그 목표를 위해서 수업 시작 전에 아이의 수준을 진단하여 부족한 부분을 해결할 방법들을 미리 교사가 준비토록 했습니다. 


 아이의 반응에 주목하며 지속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심한 자료와 학습활동을 제시하고, 아이들이 배운 것을 꼼꼼하게 검토해 놓치는 것이 없도록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배운 것을 토대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해서, 아이의 학습 수준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죠. 


 결과는 당연하게도 매우 상반되었습니다. 1명의 교사가 가르친 30명 학급은 20%의 우수한 학생, 60%의 평범한 학생, 20%의 학력 미달자가 나온 반면 30명의 교사가 각각 1명씩 30명을 가르친 학급에선 85% 이상의 학생들이 우수한 학력을 달성했습니다. 성실한 교사가 한 사람 한 사람,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체계적인 맞춤형 수업을 해줌으로써 주어진 학습 목표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것이죠. 또 이러한 교육 방식을 일찌감치 시작하여 아이의 장점과 잠재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떤 아이라도 영재와 같은 뚜렷한 발달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실험 연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개별화 학습이 완전학습으로, 완전학습이 영재교육으로 이르는 과정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상을 해오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교육에 필요한 높은 전문성과 지식에 비행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사교육은 너무 비싸고, 아이들의 경쟁은 숨가쁘니까요. 그 때문에 아이들의 배움을 시작부터 끝까지 관리하고 맞춤형 수업과 평가를 설계해서 제공하는 우리의 모습 역시도, 아무리 노력해도 생생히 그려지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정리하자면, 영재교육의 길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성공적인 육아를 하는 가정에서는 그런 비법을 잘 지켜내고 있습니다.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알면서도 우리는 시간과 지식이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영재 같은 우리 아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상상하는 일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려준 그림대로 아이를 키워야 할까요? 


 아니, 아직 방법은 있습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라는 우리 아이의 본모습으로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것입니다.      


학습 주도성이라는 아이의 본래 모습     


 아이들이 어느 영역의 영재가 되는 과정을 머릿속에 한번 그려봅시다. 그림을 한번 예로 들어볼까요? 처음에는 아이가 그냥 마구잡이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가, 차츰 형태가 명료해지고 세밀한 표현이 가능해집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나 작품을 골라서 그리기 시작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 나름의 상상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몇 년이 소요됩니다. 우리는 슬슬 아이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되지요. 그때 드는 조바심을 스스로 달래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도록 도와주면, 아이가 그림 실력이 또래에 비해 훨씬 뛰어날뿐더러, 그림을 그릴 때만은 몇시간 동안 집중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보아도 됩니다. 미술 학원에 보내도 되겠지요. 그리고 학원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훨씬 빼어난 작품을 만들면서, 아이의 나이에서는 배울 수 있는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이 상태를, “교육목표를 최고 수준으로 달성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완전학습을 거쳐 그 이상을 이룬 것이죠. 어그렇다면 남은 것은? 충분한 시간과 지원을 주면, 아이는 해당 영역에서 영재 수준의 집중력과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모습이 그리 어렵지 않게 그려지실 것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척척 공부하고, 집중하고,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영재와 같은 모습. 우리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은, 타고난 주도성을 존중하며 그로부터 자신의 재능을 발화하도록 이끌어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아이가 재능을 발휘할 영역을 잘 만나기만 하면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녀 교육에서 실수를 경험할까요? 아이의 타고난 배움의 힘으로부터 아이의 모습을 그리지 못하고,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아이를 끼워맞추려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원래의 아이의 모습도, 우리가 그리는 모습도 흐릿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세상 모든 걸 다 해줘도, 공부만은 결국 아이의 몫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일을 이미 태어난 직후부터, 아주 오래 해 왔습니다. 지금 당장 성적과 주도성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주도성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주도성을 희생하고 성적을 택한들, 공부에서 주도성을 마음껏 발휘하는 아이들과 다시 경쟁이 이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아이의 부담은 더욱 커질 뿐이죠. 반면에 주도성을 키우면, 그 뒤에 다시 성적을 올릴 기회가 옵니다. 늦고 빠름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보여준 “자기주도적 학습” “개별화 학습” “완전학습”의 모습을 어떻게 다른 영역으로, 특히, 공부로 옮아가도록 하는 것이냐 하는 고민이 남습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충분한 대화와 아이의 반응을 살피는 주의력입니다. 완전학습의 경험을 공부 영역에도 적용해볼 수 있도록 다양하게 아이가 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아이의 반응에 따라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주고, 적절한 조력을 주면서 공부에서도 효능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충분히 그림 영재를 공부 영재로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완전학습의 경험과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아이가 품고 있으니까요. 


 단 한가지, 이 일은 매우 긴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일이란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가 영재와 같은 재능을 스스로 꽃피운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계획들이 있다면, 또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사려깊게 관찰하며 호응해주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그리 지루하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우리 아이의 미래의 그 모습이 어느덧 성큼 성큼 다가올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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