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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03. 2024

경주에 가면 통닭을 뜯어줘요

경주 중앙시장 오복닭집

 통닭을 사오며 나는 괴로워했다. 


 경주의 벚꽃축제,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시기에 여행을 왔고, 우리의 숙소까지는, 통닭을 방금 사 온 경주중앙시장으로부터 약 20분. 나는 아침을 굶었기에 점심을 먹고도 이내 소화가 되었으며, 우리는 경주를 돌아보랴, 아이와 놀아주랴 여섯시즈음이 된 시간에 이미 충분히 배가 고팠다. 그런 찰나에, 뜨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통닭을 조수석에 올려두고, 20분을 가야하니. 


 매널. 매널이 듬뿍 올라간 매널통닭. 시장 통닭 특유의 카레 향에 매널의 알싸한 향이 고문처럼 코와 배를 찔렀다. 경주의 시내의 좁은 도로는 대릉원에서부터 꼬리를 물어 길이 막히고, 겨우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차를 몰았을 때, 더 이상 편의점도 마트도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맥주를, 시장에서 살 걸 그랬구나. 통닭. 매널통닭. 경주에서 산, 매널통닭. 그것을, 맥주도 없이 먹어야 한다니. 아, 그것은 잔혹한 운명의 데스티니.

 그거슨, 경주중앙시장이다. 황리단길에서 걸어가기에도 충분하다. 시장 주차장에 따로 주차비를 걷는 것 같진 않아보이므로, 나는 18000원의 유료주차장에 왜 갔ㅈ...하. 


 오복닭집은 경주의 통닭집 중 유독 평이 좋다. 오래된 관광도시인지라, 지역에 돈이 도는 편이고, 해서, 이런 통닭집들이 아직 명맥을 제법 잇고 있다. 나도 몇 해 전에 결혼 전이었던 당시의 여자친구분이었던 현재의 아내분과 낮엔 황리단길, 밤엔 중앙시장 야시장에서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도 야시장에 굉장히 사람이 많았다. 그러한 터라, 솔찬히 맛난 통닭집이, 아직 존재할 수 있는 것. 


 시장통닭이라, 말 그대로, 생닭을 널어 팔기도 하고, 솥을 두고 튀겨서 팔기도 한다. 꽁지마다 털이 뽑히지 않은 것은 왜일까. 버릴 부위라서 그런 걸까싶기도 하고, 아니면, 요즘처럼 기계가 털을 빼주는 방식이다보니 남는 것일 수도 있다. 

 다양한 것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추억을 자극한다. 어릴 때 시장통닭집들은 큰 튀김기에, 뚜껑을 눌러서 튀기기도 했다. 그런 큰 튀김기는 기름을 씻어내는 것이 번거롭고 어렵다. 또, 비싸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장통닭이 사양화되고 나서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딱 저렴하고 간소한 튀김솥에 큰 화구. 거기에 시장통닭을 튀기는 것이니, 가마솥 통닭이라 부르기 알맞다. 거기에 가루를 가볍게 묻혀서 튀기는 방식이다. 아마도, 저 큰 통나무 도마에서, 염지도 안된 생닭을 타다닥 도리쳐내서 가루에 석석 묻힌 뒤 기름솥에 퐁당. 


 가루를 묻혀내 튀기는 방식이니, 튀김옷이 가볍다. 기름에 가루가 남는 방식이니, 기름을 자주 갈아줘야 한다. 그러므로, 어지간해선 깔끔한 기름에서 튀겨내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21000원에 매널통닭을 하나 주문해 받아왔다. 30분 전엔 주문 필수.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었다면 차를 대놓은 김에 둘레둘레 돌아보며 갈 텐데. 아쉽다. 시장 구경을 하며 여유를 부리기엔, 숙소에는 주린 마누라와 아이가 있다. 빠르게, 통닭만 받아서 후다닥 달려간다. 


"빨리 와. 동백이가 너무 배고프대."

"야- 나는 지금 차 안에서 거의 실신할 지경이야 통닭 냄새 때문에 죽곘어 지금."


 낭패. 낭패다. 시내를 벗어나 10분 이상, 편의점이 보이지 않는다.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마트를 가려면 5분여 앞의 숙소를 두고 15분여를 돌아서 가야한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전화가 왔고, 어쩔 수 없다. 숙소에 있는 음료라곤 맹물 뿐이지만, 나는 직진, 그대로 숙소로 향했다. 

"진짜 아무것도 안사왔어?"

"응. 빨리 먹자. 나도 배고파."


 나는 정말로 호다닥, 같이 사 온 김밥과 함께 통닭을 풀어 식탁에 올린다. 너무나 배가 고프고, 거기에 이 통닭은, 정말로 맛있는 향기가 가득하다. 어째서 경주에서 통닭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그 자체로 완벽한 해답. 얇은 튀김옷이 부드럽게 입안에 스며들고, 염지가 안된 생닭을 얇게 토막내어, 감칠맛이 듬뿍이다. 거기에, 양은 둘이서 먹기에 넉넉하게 많다. 사진을 다시 자세히 보니 1.4kg짜리 생닭을 토막낸 것이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치킨집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닭은 1kg 내외라고 하니, 그보다 반마리를 더 먹는 것이다.


 맛있다. 맛있다. 정말로 맛있다. 매널을 듬뿍 올려서 먹기도 하고, 튀겨진 닭껍질조각을 깊은 곳에서부터 긁어내서 먹기도 한다. 여기에 맥주가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일품의 진미다. 


 경주에서 통닭을 먹기로 한 것은 황리단길의 그 멀끔한 신축한옥들도 싫고, 찾아가는 것도 조금 까다로운 옛스런 한정식집들이 아닌, 지역의 고유한 특미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자고로 오래된 도시엔 시장이, 그 시장엔 옛날부터 자리잡아온 통닭집이, 하나 둘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어디서도 맛보기 어려운 귀한 통닭을 맛봤다. 그것도 이 가볍고 부드러운 튀김옷이라니. 까드득, 입에서 터져나가는 바삭한 후라이드치킨이 하나의 분야라면, 가루를 얇게 입혀 튀겨내는 이것도 통닭의 한 분야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중에서도 황홀하게 부드러움과 바삭함이 어우러진 맛이다. 그래서, 경주에 와 이걸 먹길 정말 잘 했다는 결론이 얻어졌다. 


 이걸 먹으러 가자면, 경주에 갈만하겠다. 물론 가는 김에 동궁과 월지도, 석굴암도, 황리단길도 볼 수 있으니 가자는 것이지. 매널통닭이 경주의 전부가 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아마도 다음에 또 경주에 온다면 이 통닭은 또 먹자고 할 것이다. 오히려 나와 아내에겐 이 맛이 새로운 체험이라 할만했다. 그 많은 식당들은 오히려 서울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인데, 이 가격에, 통닭의 이 맛이란, 서울에선 찾아볼 수 없는 맛인 때문이다. 


 비록 멀고 먼 길을 힘겹게 다시 올라왔지만, 우리는 이 통닭의 맛을 오래 그리워한다. 그리워하고 있다. 집 주변에서 마늘통닭을 검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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