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Apr 11. 2024

육아엔 결핍이 필요해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 30개월, 그리고 앞으로의 긴 삶에 대한. 

 딸기가 상해버렸다. 물가가 치솟아 오르는 이 때에. 


 이유는 간단하다. 따님은 태어나신 지 30개월을 채우셨다. 잘 먹어야 할 시기의 연속이고, 과일, 그중에서도 딸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엄마 아빠 입장에선 비싼 딸기를 사다 놨으니 아껴서 그 딸기를 먹게 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그 딸기를 먹지 않고 아이가 먹을만큼만 내서 먹인다. 그러나 아이의 변덕이란, 그리 잘 먹던 딸기를 어느 날은 한 입만 먹고 휙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버린다. 그러면 남은 딸기나 조금 우리가 먹는다. 


 그마저도, 집에선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고 간식을 먹지 않는 우리집인 터라 그 시점이 되면 나나 아내나 배가 부르고 딸기 따위가 들어가는 배는 아닌 상태라, 그리 이따금 먹게 되는 딸기 말고는 우리가 따로 꺼내어 먹는 일도 없다. 그러니, 딸기를 사나놓긴 해야 하고,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주기는 불규칙하고, 그런데 비싸기도 하고 우리는 손을 잘 대지 못하니, 어어어 하다가 퍽 많은 양의 딸기가, 상해버렸다. 손질을 해서 상한 부분만 도려내고 주기에도 민망하도록. 아니, 어쩌면 저렴한 딸기를 찾느라 신선도가 이미 떨어져가는 상품을 사왔던 탓일까. 어느쪽이든. 


 하여 딸기를 버리며, 아이가 한입만 먹고 달아나버리는 일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는, 육아에 있어서의 결핍을 떠올린다. 넉넉한 세상이다. 우리의 수입 지출과는 상관없이, 상품으로 그득한 대량소비 사회다. 결핍을 느끼기 힘든, 그래서 소중함을 알기 더욱 어려운 환경이다. 

 

 아이가 세상을 알아갈 무렵에 마트에 데리고 가기 시작한다. 운동장 여럿을 합친 공간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보며 부모는 이것 먹어볼까? 저것 먹어볼래? 하며 아이의 눈 앞에 과자들을 흔든다. 배가 고파지기 전에 눈 앞에는 온갖 간식거리들이 내밀어진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니 오며 가머 할머니는 아이를 슈퍼마켓에 데리고 간다. 밥그릇을 놓고 달아나도 배가 곯을 일이 없으며, 반찬을 가려도, 당류를 탐해도 아이의 세상은 늘 풍족하고 넉넉하다. 


 하니 아이의 입장에선 이유식을 떼고 나니 365일이 뷔페나 마찬가지다. 뭐든, 자기가 먹고 싶을 때만 먹어도 되고, 먹고픈 것만 먹어도 되는. 엄마와 아빠의 입장에선 뭐라도 입에만 들어가면 감사한 시기이니, 또, 나중에 나아지려니 하는 생각에, 그냥 아이가 하고픈대로 밥상을 달아나면 따라가주고 먹다가 뱉으면 받아먹어준다. 


 나는 여섯살에 처음 혼자서 밥상을 차려먹었다. 메뉴도 정확히 기억한다. 냉장고에서 조기구이를 꺼내 가시도 스스로 발라먹었다. 서툴게나마 말이다. 그리고 다른 반찬도 몇가지 꺼냈었다. 뭐든 스스로 하려는 자발성이 살아있던 시기에 있던 특이한 일이지만 그 이후 내가 살아오면서 갖게 된 집밥에 대한 감각으로, 이러한 우리 따님의 뷔페식 집밥라이프를 견디기 쉽지 않다. 밥을 지금 남겨? 아니, 먹고 싶은 것만 먹겠다고 떼를 써? 받아들이기도 견디기도 쉽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버릇을 고치겠다고 애를 배를 억지로 곯릴 마음도 없다. 뭐든 먹으면 이쁘다. 또, 어린이집에선 혼자서 얌전히 앉아, 씩씩하게 밥을 잘 먹는다고 한다. 또 이따금씩 밥 한그릇을, 고기반찬도 필요없다며 싹 다 혼자서 비울 때도 있다. 이 맛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긴 하다. 조금 더 이 시간을 견디면 아이는 딸기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밥은 끼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이미 좋고 나쁜 간식을 가릴 줄 알아서, 젤리를 먹고 나면 평소보다 길게 양치질을 하는 일을 잘 받아들여준다. 


 그러나 결핍을 받아들이는 일. 스스로 그것을 극복할 의지를 발휘하는 일을 가르치는 것만은, 요지경의 세상에선 여전히 쉽지 않을 터이다. 아이에게 적정한 수준의 결핍을 조성해주는 일은 어지간히 어렵다. 엄마와 아빠의 존재가 늘 물질적 감정적 보완재로 자리할 터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아이는 더욱 더 자기의 취향에 따라 행위를 취사선택할 것인데. 과연 결핍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육아엔 결핍이 필요하다. 아이가 스스로 필요를 충족하고자 행위하는 자발성의 영역. 그것을, 감정적 빈곤 없이 아이에게 부여해야 한다. 이제 고작 30개월이 아이를 두고, 고작 밥투정 조금에 또는 우리가 손을 못대서 버려버린 딸기에. 고작 이런 문제에 결핍에 대한 고민을 꺼내는 것이 과한 일일 것이라 스스로 생각은 하지만, 이 일은 이미 존재한다. 남겨진 밥을 주방에 서서 먹는 아빠에겐, 이것은, 또 다른 심대한 결핍이다. 


 결핍, 그리고 또 다른 결핍. 아이를 기르는 일은 영영 고민의 연속이다. 상투적인 문구이지만 이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둘이서 트램폴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