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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17. 2024

아빠의 무게

아이고 아파라

"아우, 아야야..."


 발목이 휙 하고 돌아가는 순간의 불안감. 무릎이 휙 꺾어지는 순간의 불쾌감. 그리고, 찰나의 섬광같은 '뚝'하는 감각과 함께, 나는 물 속으로 풍덩 떨어졌다. 그리고 왼다리를 부여잡고 반사적으로 워터슬라이드에서 아이를 안고 멀리 떨어졌다. 


"아빠 괜찮아? 어디 아파?"


 아이는 내가 발목을 붙들고 움직이지 않자, 나보고 아프냐 묻는다. 아프지. 엄청 아프다. 아이를 안고 워터슬라이드를 타다가, 둘이 합쳐 100kg이 넘는 무게를 발목으로 제동을 해보려 했고, 무릎과 발목은 우리 둘의 몸을 당기는 중력의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톡 하고 꺾어졌다. 


 좀 다친 정도가 아닐 거라는 확신과 다리를 휘감는 통증은 명확한 답으로 정리되어 나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다리를 부여잡고 있기엔 내게 매달린 아이의 걱정과 염려는, 너무나 비싼 비용이다.


"아빠 괜찮아. 괜찮아."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 다음, 아이에게 말했다.


"미끄럼 또 탈거야?"

"응! 너무 재밌어!"


 또 우지끈. 아윽. 


"자 올라가봐."

"응!"


 아이를 워터슬라이드 계단으로 일단 올려보낸다. 그런데, 아이가 끝까지 다 올라가서는, 가파른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 


"아빠아- 도와줘-."


 날 보고 애처로이 지어보이는 표정. 그리고, 지금도 서 있기 조차 고통스러운 발목의 통증. 나는 무게를 실어 한번 몸을 지탱해보았다. 아야야. 겁나 아프다. 그러나, 일단 걸을 순 있다. 절뚝이면서 말이지만. 


"응 기다려-."


 나는 아이를 따라 올라가, 워터슬라이드 위로 기어코 아이와 함께 앉았다. 발목이 꺾여 돌아간 나와, 다시금 워터슬라이드를 탈 생각에 신난 아이. 나는 아이와 함께 또 풍덩, 물에 빠져들었다. 이번엔 두 다리를 쭉 펴고, 덕분에, 100kg의 무게가 고스란히 물 속으로 쳐박혔고, 이번엔, 엉덩이를 제법 시큰하게 부딪힌다. 


"와우-! 우후-!"


 어쩜 이리 좋아할까. 이번엔 엉덩이뼈의 통증에, 나는 아프단 티를 내진 않았다. 다친 것은 아니고 좀 아픈 정도. 


"또 탈 거지?"

"으응!"


 나는 두어번, 아이와 함께 워터슬라이드를 오르락거렸다. 그리고, 30분여를 논 다음에야 비로소 잠시 몸을 쉴 수 있었다. 아내는 그동안 같이 간 일행들과 함께 점심 바베큐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는 다친 사실을 알렸다.




"뼈가 이쪽이 깨졌네요...X레이로는 안보였는데."

"헐."


 나는 X레이에 이어 CT까지 찍고는, 또 초음파까지 보자는 의사의 진료에 조금 불신을 했더랬다. 발목 인대든 뼈든, 비급여항목인 초음파까지 봐야해? 했으나, CT에 발목 부근 뼈의 골절이 잡혔고, 그래서 초음파를 봤더랬다. 빙글빙글 CT 사진은 발목 뼈가 깨져있는 것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다행한 건 수술은 안해도 됩니다. 20% 정도 깨졌는데, 25%였으면 수술을 했거든요 여기. 인대도 손상이 있는데 인대보단, 발목이 돌아가고 골절이 생겼으니 관절이 지금 엉망이 됐다는 거죠."

"아하...수술은...다행이네요."

"붓기를 최대한 빨리 빼야해요 잘못하면 발목 관절이 경화가 되면 가동이 안돼요."

"아...붓기를 빨리 빼야하는군요..."


 윽. 어젯밤에 아내가 찜질이라도 하라는 말을 들을 걸 그랬다. 나는 파스든 찜질이든 치료가 아니라 진통 목적이며, 그러니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진통이 아니라 쉬는 거라며 그 말을 안들었다. 정작, 찜질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거지며 짐나르기며를 다 했는데 말이다. 

    



"애가 다친 것보단 낫지."

"그렇지."


 친한 선배가 자기 아들 사진을 툭 올린다. 내 부상 소식에, 그래도 아빠가 다치는 것보다 낫다며. 그 집 아들은 발등에 미세골절이란다. 아이가 깁스를 하고 장난꾸러기 얼굴을 하고 있다. 아이가 다친 것은 불과 지난 주. 나는, 그래 뭐 그나마 애가 좀 안전하게 워터슬라이드를 타라고 안고 타다가, 내가 크게 다쳤다. 그나마 내가 다치는 것이 낫지, 애가 다쳤다면 상상하기 싫은 일이다. 지금도 이렇게 아픈다 말이다. 너무 너무 아파서, 특 건드리기만 해도 절로 신음소리가 나오는데, 아이가 참았을까. 


 아빠의 무게란 게 재미난 문제다. 아이로 인해 다치고, 그것으로 차라리 안도하는. 그리고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설거지에 청소에. 할 건 다 해야 한다. 엄마가 다치면 남편이란 보루가 있지만, 아빠가 다치면 아내가 땜빵해줄 일이, 우리집에선 크지 않다. 내게 많은 것을 의지하는 아내에게 마땅히 내가 할 일들, 예를 들어 분리수거라거나를, 당분간이라고 해도 맡길 수 있을까, 쉽지는 않다. 그런 고민을 아빠 쪽은 해야한다. 


 당분간 아빠에게 안기지 못할 아이는 또 어찌할 것이며, 아내가 그것을 짊어지는 것도 문제다. 그냥, 아이에게 아빠가 다쳤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싶지는 않은데 싫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어찌되었든 곤란한 일. 번거로운 일. 그러나, 재미난 일이다. 여러가지로 말이다. 일단 나아야지. 오늘은 만사 때려치고 침대에 누워서 아내에게 물이라도 따라오라고 해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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