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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28. 2024

너희는 나에게 설레임을 주었어

(근엄)

"반장. 나와봐라."


 시험이 5일 남았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힘들게, 급상승한 학습 난이도를 견디던 아이들의 첫 수확날이다. 중간고사는 연습. 기말이 본게임.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의 기말고사. 더워지는 날씨에 아이들의 옷차림은 산들바람처럼 가벼워지지만, 학교를 오가는 발걸음은 무거워져간다


"네?"

"싼 걸로 사와."

"와!"


 나는 카드를 꺼내 반장에게 건낸다. 교실에서 빠른 걸음으로 5분이면 후문을 관통해 아이스크림 집에 당도할 수 있다. 고등학교 후문 앞에 아이스크림 집이라니 그 사장님, 간교하기도 하시다. 물론 요즘 세태에, 교사라도 아무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뿌리진 않는다 한다만은. 나는 그렇게 아이에게 카드를 들려보내고 남은 아이들의 자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이유 하나. 기말이 중간고사에 비해 어렵게 출제되었다. 아이들에게 미리 좀 인심을 얻어두어야 한다. 이유 둘. 마침 수업을 마친 학급이 내가 부담임인 반이다. 그리고 이유 셋. 다음주부터 나는 중학교를 돌며 홍보를 해야하고(다친 다리로.), 그래서 출장비가 약간 나온다. 학교에서 발생한 과외수익이므로, 아이들에게 환수하는 것이다. 한번 출장을 나가면 2만원 정도인데, 700원짜리 쭈쭈바를 30개쯤 사면, 딱 한 학급 정도. 한번 출장을 가면 한 학급 분량의 쭈쭈바가 나온다. 물론 그 출장으로 내가 겪는 고달픔도 제법 크지만 말이다. 서너시간 출장을 다녀오면, 그 빠진 시간만큼의 수업을 다른 날 몰아서 해야한다.


"와-."

"얼른들 먹고 공부해."

"감사합니다 쌤."


 그렇게 세 학급을 돌며 차례차례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한 학기를 마무리하기로 헀다. 또 아이들의 입장에선 굳이 학생들의 성적을 등급으로 나누어야 하는 것 때문에 이번 기말 고사에서 시험 문제의 난이도와 시험 범위의 광범위함으로 억까를 당하는 처지이므로, 이정도의 보상은 그들에게 마땅한 처우라고할 수 있다.


 그러나,


- 우웅


 마지막 세번째 학급에서, 반장과 부반장 아이 둘이서 나가고 나서 얼마 뒤에 카드가 결재되었다는 푸시 알림이 떴다. 확인을 하진 않았다. 앞반에선 22000원, 앞반에선 20000원 정도가 나왔다. 그 정도려니.


 그런데 아이들에게 카드를 들려보내니 아이들마다 잔머리를 돌리는 양상이 또 재미있다. 20000원을 정직하게 긁은 아이들이 있고, 2000원 정도의 군것질 거리를 따로 챙겨온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학급마다 인원수가 딱딱 떨어지니까 2000원이 더 지출될 이유가 없는데, 앞반에서, 그 2천원의 잔머리 중 일부를, 나에게 쥐어준다. 큰 귤 정도 사이즈의 라면과자다. 원 녀석들.


 이렇게 아이들마다 성정도 다르고 씀씀이도 다른가보다 하며 마지막 세번째 학급의 아이스크림이 도착하길 기다리는데,


"다녀왔습니다-."

"이히-."


어.


 방실방실 웃는 반장 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쭈쭈바의 약 160%정도의 가격을 점하고 있는, 설레임.


 설레임이다.


 그제서야 나는 폰을 열어 카드 알림을 보았고, 찍혀있던 것은, 대강의, 33000원. 와우.


"오...설레임..."


 앞반과 앞앞반은 쭈쭈바였단다.


 그러나 뭐라 핀장을 줄 일은 아니었으므로 웃으며 그 상황을 지켜는 보는데, 반장 애는 방실방실 웃기만 하고, 따라간 부반장 애는 나에게 슬 다가와서 그래도 눈치를 본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설레임을 받아들었다.


"샘 이거 드세요."

"야 앞반 애들은 쭈쭈바 먹었어."

"에이- 우리가 설레임 급은 되니까요 샘."


 말은 잘한다. 나는 그 순간 김영철 아저씨의,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라는 대사가 떠오르며, 실제로 약간의 흥분,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적 동요로 인한, 설레임 같은 가벼운 심장의 요동을 느낀다.


 너희는 나에게 설레임을 주었어. 삼만삼천이백원만큼의.


 설레임을 다 먹고, 화장실을 들르며 이 가벼운 해프닝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험난하다는 교직의 세태다. 대학원 동기는 학위 논문으로 "강남 교사의 이탈 현상"을 탐구했다. 우수한 학생들이 몰린다는 강남에선 교사들의 고난이 커, 초임교사들이 멋모르고 발령을 받아 들어갔다가 상처를 입고 빠져나온다. 뉴스에선 잊을만하면 면 교권에 대한, 학생의 인권에 대한, 그리고 양자의 영혼을 망가트리려는 어떤 책략들에 대한 소식을을 던진다. 교사로 사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런 시기에 아이들이랑 갖게 된 이런 소극은 말 그대로, 설레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겁도 없이 선생님의 카드로 설레임 스물아홉개를 사 올 수 있는 용기. 나와 아이들의 관계. 그런 어떤 재미난 신뢰 같은 의식, 인식들. 학교란 것이, 학생들이란 존재가, 교사라는 위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과 논박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글쎄 이런 일들이 차라리 진짜로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리가 아닐지.


 그러니, 정말로 되새길수록 설레임 같은 일이다. 살아있는 아이들은 설레임을 집었고, 그로 인해 나 역시 잠시의 설레임을 가졌으니. 이제 생기부나 잘 써줘야겠다. 특히, 아이스크림을 사 온 반장 부반장 아이들에겐, 각자의 개성에 대해서도 써주면 좋겠다. 고지식하게 딱딱 싼 것만 사온 아이, 창의성을 발휘해 군것질거리를 따로 챙긴 아이, 과감하게 용기를 갖고 도전을 한 아이들.


 그럼 아마도, 이 학생부의 기록도 더욱 생명력이란 걸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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