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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05. 2024

사위어가는 시골의 반짝반짝한 그 슈퍼, 그 밥상

오래갔음 좋겠다.

 시골의 밤은 어둡다. 사람은 모두 방 안에 갇혀있고, 감히 길을 거닐지 않는다. 가로등도 없는 길은 시골에 남은 어르신들껜 그저 서럽고 외롭다. 지방소멸이라는 딱딱한 말보다는 그저 사위어가는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라고 부르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따라서 번영식당을 봤을 때 그 뜻밖의 휘황찬란함에 잠시 놀라 서 있었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법한 작은 시골마을에, 골목을 끼고 들어가야하는 좁은 자리에 앉아있는, 이 깔끔한 슈퍼마켓은 무엇이냐. 여기에 당도하기까지만 해도 정선 안에서도 무수히 버려진 집들을 스쳐지나갔을 터인데, 이 말끔함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반짝반짝 아름다운 풍경은, 밤이 되면 또 얼마나 외로운 자리가 될까, 하는 생각. 


 날은 청명하기 그지없는 10월이었고 공기는 포근했다. 나전역을 마을을 둘러싼 산의 능선이 퍽 느긋허니, 단풍이 더 깊이 물들어갈 때 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 아내는 들어가서 취재를 시작했고, 나는 아이를 안고서 가을걷이가 이미 끝난 깨밭을 바라보다, 조용히 가게로 들어갔다. 

"오빠 이쪽."

"응."


 아내가 가게 안 살림방 자리에서 나를 부른다. 나는 어깨 높이까지 올라온 매대 너머로 목소리만 들으며 매대를 지나 방으로 간다. 작은 가게 치곤, 물건이 많다. 가게만 휘황찬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여즉 동네에 제법 산다고 소리 높여 말하듯이. 하기사 그것도 나의 편견이다. 어디에나 여전히 사람이 살고, 물건은 사람을 기다린다. 시골이라고 가게가 작아고 말라가야만 하리란 법도 없다. 


"어휴. 진짜 그대로네."

"뭐 시킬까?"

"알아서 시켜. 뭐...음식보다야 가게 구경이다."

 이불이 쌓여있고 옷이 걸린 모양이 영락없이 살림집이다. 해가 저물면 상은 접어 내놓고 아랫목에 뜨끈히 불을 지피시겠다. 가족사진이 벽과 천장 사이에 그득히 걸린, 시골집 고유의 풍경을 보며 나는 무릎 위의 아이가 아마도 하룻밤 머물 일이 없을 우리 시골집을 생각해본다. 아빠는 어릴 때 이런 시골집에서 몇날밤씩 자고 집으로 돌아갔지. 그때는 마루 아래 공간에서 강아지와 술래잡기도 했었는데.


 이 집에 힘들게 왔다. 예약을 안하면 먹기 힘들다고, 새벽부터 차를 달리며 아내가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당일 오전 9시부터 예약이 가능. 그러곤 11시부터 사람을 받는다. 즉, 반찬거리를 만드신다고 최소한 두시간 넘게를 일을 하신 뒤에야 손님을 받는다. 메뉴는 고작 다섯 가지라지만 인심이라, 반찬에 상차림으로 먹는 곳일 터다. 보리밥 하나와 콧등치기 국수 하나를 주문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땐 5천원씩, 그리고 2년이 지난 2024년 현재, 1인분에 6천원씩. 

"음...어머니-."

"네에?"


 상차림을 받아본 나는, 국수를 한 술 뜨고, 조용히 옆방에서 손님을 받고 있는 사장님을 불렀다. 잠시 뒤에 사장님은 우리 방에 고개를 내밀어보이신다. 


"만두...만두국...안되죠?"

"안되지-."

"아아..."


 만두국...이 정서에 이 솜씨면...만두국이...얼마나 맛있을까. 나는 탄식하며 조용히 콧등치기 국수 면을 휘휘 저어, 아이가 먹을 앞그릇에 덜었다. 


"겨울에 와야겠어."

"왜? 만두국 먹고 싶어?"

"야 여긴 만두국 먹으러 올 곳이야. 아...콩국수도..."


 메뉴판이 원망스럽다. 10월에 와서, 여름 콩국수도 겨울 만두국도 먹지 못하니. 정선이 아무때나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말이다. 전주의 베테랑 칼국수를 떠올리게 하는 진하고 걸쭉한 국물에 메밀면의 향기가 녹아나있다. 고기 하나 없이 호박이며 채소들만으로 이런 시원하고 진한 맛이라니. 거기에 보리밥은. 1인분을 시켰는데도 두 그릇이 그득하게 나온다. 거기에 산나물들 석석 버무리고, 고추장에 참기름, 슬슬 비벼낸다.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순한, 그런 옛 맛. 강된장이 구수하니 내음이 티티하지 않다. 거기에,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두부 조림이 달큰하다. 맛이다. 참맛. 


 도시에서는 단가도 인건비도 맞추기 어려워 백반집이 줄어든다 하고, 집에서도 사람들이 배달음식의 편안함에 정성 들인 밑반찬들로부터 멀어지는 세상이니, 세상 어딜 가도 이런 정성들인 밥상이 귀하지 않을 턱이 없다. 거기에 칼국수의 비법한 솜씨까지 알게 되니, 이곳이 집에서 머나먼, 그리고 한번 여행코스로 잡기도 망설여지는 정선이라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아늑한 할머니 방에서 모처럼 바닥에 엉덩이 깔고 앉아, 식사를 마친 뒤에는 두 다리 모두 저릿저릿함을 느끼며 겨우 다리를 펴게 되는 이 옛 집에서의 한상. 한 끼에 6천원이라는 값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아늑한 시골에서 고스란히 삶의 모습을 섭취하는, 그런 경험.  

 우린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바람이 기분좋게 마음을 흔들지만, 보리밥에 국수, 그리고 반찬으로 빵빵해진 배가 조금 창피했다. 실파에 상추,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들깨를 보며 잠시 길을 걸어보았다. 아이의 울음소리도 웃음소리도 드물고 드물어진 시골 마을에.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시절에. 부른 배만큼 가슴 한켠도 무언가 가득 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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