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괴담
다음날, 아침밥을 하기 위해 집에서 가장 먼저 잠에서 깬 어머니는 환히 밝혀진 정현의 방을 보고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침대에 무릎을 세우고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책으로부터 거의 한뼘 정도 얼굴을 띄운 채 공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놀라움과 의구심을 품었지만 굳이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열아홉살. 세상의 진정한 공포를 단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나이의 고등학생이 그 밤을 보냈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허나 앞으로 이어질 기괴하고 놀라운 사건들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현의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벽이 깊어지면서 정현의 방을 비추는 달빛은 그 서늘하고 창백한 색조를 더해갔다. 어머니가 TV를 끄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전등과 스탠스를 모두 켰지만 정현에겐 그 방의 모든 그림자와 어둠, 이를 테면 침대 밑의 어둠 속에서, 옷걸이 너머의 그림자 속에서 속삭임이 들리는듯했다. 차마 폰을 다시 열어서 사진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현의 머릿속엔 혼란스러움과 함께 학교의 전설, 그리고 교실의 모든 아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밀려들어왔다. 그 생각은 너무나 빠르고 어지러웠고 또 극심한 공포를 몰고왔다. 무언가를 알아선 안된다고 하는 강박적인 생각은 아이들의 얼굴을 잊게 함과 동시에 또 떠올리게 했다. 몸이 덜덜 떨려오는 것을 참으며 책상에 앉았다.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에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잠시라도 글자를 읽으려고 하면, 불현듯 등 뒤로 거대한 공포가 자리잡았다. 도망치듯 침대에 올라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서야 약간의 안도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정현은 밤을 새웠다.
공포로부터 도주하기 위한 정현의 노력은 전기밥솥의 치칙거리는 소리가 날 때쯤에야 끝났다. 비로소 창밖을 보자 건너편 아파트 창문으로 붉은 아침 노을빛이 도롱도롱 맺혀 있었다. 몸을 일으켜, 웬일이냐며 걱정하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 하고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욕실 앞을 서성이는 엄마의 발걸음 소리가 더 없이 안심이 되었다. 30여분간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초조해진 어머니께 두어마디 둘러대고서야 겨우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밝은 태양. 정현은 용기를 내어 폰을 열어 대화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숨이 멎는 것을 느꼈다.
[수현 님이 대화방을 나갔습니다.]
[준연 님이 대화방을 나갔습니다.]
지원 : 봤어?
[건희 님이 대화방을 나갔습니다.]
수현과 준연이 방을 나간 뒤 방은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자정을 넘길 무렵 인영도 방을 나갔다. 그런데, 지원이 글을 남겼다. 봤어? 라는 지원이 남긴 단 두 글자. 그리고 건희도 곧 방을 나갔고, 이 단톡방에는 지원과 정현 단 둘뿐이었다. 정현은 황급히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파삭. 심장이 방망이질 치며 머리에 피가 몰렸다. 어쩔줄 몰라 우왕자왕하던 정현은 엘리베이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화급히 핸드폰을 주워 다시 현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폰을 던지고 나왔다.
(학교를 가야할까?)
(가는 게 맞는 것일까?)
(지원는 왔을까?)
(다른 애가 발이 없는 건 아닐까?)
생각은 혼돈을 맴돌았으나 발은 느린, 그러나 규칙적인 속도로 학교로 향했다. 학교를 가고싶지 않았다. 평소엔 7,8분이면 도착하던 학교다.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 있었으면하고 정현은 바랬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이미 학교 앞에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와도 얼굴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이고 가자니, 아이들의 발만 눈에 들어왔고 또한 동시에 어젯밤 인영이 한 말이 머리를 때렸다.
(신발.)
정현은 고개를 쳐들고 교가를 머릿속으로 웅얼거리며 걸었다. 잊어야한다. 잊어야한다. 규칙적인 발걸음소리, 까르르 터지는 여학생들의 평화로움과, 자전거 페달을 탄력있게 밟는 남학생들의 활력. 습관처럼 주머니 속 핸드폰을 찾다가 이내 그것을 집으로 두고 온 것에 헛웃음이 터지며, 하늘을 향해 쏘아진 시선이 이윽고 학교 건물에 발걸음이 다달으며 옥상에 닿았다. 정현은 불안한 시선으로 옥상에서, 5층, 4층, 3층...1층으로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야...)
한숨을 쉬며 실내화를 갈아신기 위해 가방에서 꺼내는 그때
"꺄아아아아!!"
등 뒤에서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 정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방황하던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향해 추락하고 있는 교복을 입은 형상이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뇌신경이 타버리는듯했다. 심장이 터질듯한 통증을 느끼며 정현은 뒤로 쓰러졌다. 정현이 쓰러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추락하던 아이가 그의 발밑에 떨어졌다. 쿠웅, 둔탁한 소리. 후두둑, 머리에서 터져나온 피가 정현의 셔츠에, 목덜미에, 얼굴에 튀었다. 가까이에 서 있던 다른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교실 속 아이들이 웅성이며 창문에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선생님들의 고함소리와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심장소리와 교차하며 쿵쿵 울렸다. 믿지기 않는 광경, 믿기지 않는 상황에 갈팡질팡하던 정현의 의식이 마침내, 피투성이 시신의 발목에서 허리, 그리고 본능적인 거부감과 원초적인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얼굴로 그의 눈길이 옮겨갔을 때 그는 드디어 모든 이성과 의식의 끈이 소멸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현은 의식을 잃었다.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것이 그의 마지막 감각이었다.
그것은 어젯밤 함께 공부하고 헤어졌던 친구, 건희의 얼굴이었다. 피투성이 얼굴의 두 눈이 있던 자리에는 끝없는 어둠만이 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