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갖게된 최초의 취미, 혹은 특기
두 다리에 힘이 붙어 뛰어다닐 수 있게 될 무렵부터 내가 자란 공간은 부모님이 경영하시던 서점에 붙은, 연탄 아궁이로 바닥을 덥히던 작은 단칸방이었다. 방 가운데에 앉아있노라면 낮고 작은 냉장고 위에 TV가 올려져있었고, 장롱은 한쪽 벽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으며, 철제 선반 몇가지가 아이 둘 키우는, 그러나 간소한 새간들을 담고 있었다.
그 작은 집에서 나의 거실, 공부방, 놀이방은 모두 오롯이 그 아홉평 남짓되는 도매서점 공간이었다. 높은 곳을 오르기 좋아하는 네댓살 아이들의 고 시기에 나는 책더미에 올라갔다. 거기서 누나와 나는 서로를 밀어댔고, 차례로 바닥에 머리를 찧어서 머리에 흉터를 만들었다. 책더미 위에 올라 잡히는대로 책을 읽었다. TV가 하나이던 시절인지라, 내가 재미붙일 영상 따위는 볼 수 없었기에 바구니 하나를 겨우 채운 몇가지 안되는 장난감 외에는 거의 책이 내 놀잇감의 전부였다. 그림책 보듯 만화책을 봤고, 종이만 보이면 낙서를 했다.
그로 인해, 그림이 내가 가진 첫번째 취미이자 특기가 되었다. 손목의 힘을 빼고 방향을 조절하게 되던 시기부터는 나는 로봇 삼국지라는 만화책을 그렇게 따라그렸다. 아버지의 전역노트에 전투기를 그리고, 엄마의 서점 장부 뒷면에는 날으는 돼지가 등장하는 네 컷 만화를 그렸다. 넉넉하고 행복하던 어린시절이라곤 할 수 없지만, 나는 유년을 그렇게 관통했다. 만화를 보며, 그림을 그리며, 상상하며 즐거웠다.
그놈의 그림은 내 영혼의 반쪽에 간직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예술가적 자유로운 기질을 품고 산다. 공부가 업이 된 지금은, 이게 그렇게 훌륭한 장점은 아니다. 자유에 대한 의지는 낙인자국과 같이 벗어둘 수가 없는 것이기에 나는 늘, 책상에 앉아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일을 하는 공간에서도, 대학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한켠에 자유의 바람을 느낀다. 썩 이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게 내 본질이며, 내 안에 공존하고 있는 양면임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방면 우리 나이 닷살에, 딸은 이제 얼굴의 구색을 대강 갖추어 나간다. 어버이날 행사로 가족의 그림을 그렸다. 아직은 무언가의 모양을 모사하는 것은 흥미를 갖지 못할 나이다. 유치원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고 나는 이 그림이 순수히 딸의 손으로 그린 것인가 하는 의문을 벗지 못한다. 자기와 인형, 엄마의 모양은 이것이 사람인지 오징언지 알기 어려운데 가운데에, 아마도 먼저 그려놓았을듯한 아빠의 모습만 안경까지 제법 실하게 그려놨다.
이 미심쩍은 그림에도 나는 그러나, 아이의 다양한 발달의 경로가, 몇군데 교차점들로 모여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네살 때부터 태권도와 발레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에게 우선 우리는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시켜보고 있다. 재미있어 해서 두달을 추가로 신청했다. 그리고 내년에는 태권도를 보내주기로 굳은 약속을 여러번 해주었다. 이런 체육활동들로, 안그래도 팔팔하고 뛰놀기 좋아하는 아이의 운동능력이 아빠로서 상당히 버겁고 피곤할정도로 발달하고 있다. 유치원 교육과정에 따라 배우고 있는 영어의 경우 알파벳을 거의 다 외웠고 숫차를 포함, 영어 단어는 20개 정도는 익혔다. 요즘엔 이것을 영어로 무엇이라고 하느냐 묻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초콜렛은 우리말도 영어도 초콜렛이라 하면, 아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런 몇가지 교차점, 그리고 아이와 나 사이에, 그림이 놓여진다. 나는 아이의 그림을 보면서 나의 과거, 그리고 지금을 반추한다. 오늘을 보며 과거의 나를 투영한다. 물론, 딸아이에게 앞으로 그림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알지 못한다. 단지 이루지 못한 꿈의 단편에 불과한, 그래서 일상의 수면 위로는 드러날 일이 없는 그림에 대해 내가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성찰이 한바퀴 뇌리를 감돌고 나면, 우리 딸이 아빠를 이렇게 좋아해!라는 감동 따위는 고려의 요건은 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아이가 그림을 좋아했으면 하고, 아이의 여러 취미 중 이것이 위로와 자존감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아빠와의 소통에 있어서 그림이 종종 의미있는 경로가 되었으면 할 뿐이다.
늘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 사람들에겐 아이의 이런 모습은 색다른 감정을 전해준다는 것을, 물론 그것이 내 과도한 기대이며 나중에 아이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품게 된다. 아이가 그림을 좋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나중에 아빠의 낙서일지라 해도 좋아해주었으면. 서로에게 이런 교감이 보다 뜻깊은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보다 먼 미래를 생각하면 내 멋대로 품는 이런 기대들이, 비교과 사교육비의 어마무시한 공포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것 또한 상상하게 된다. 어휴 그렇게 운동이며 그림이며, 봉급도 많지 않은데 버티겠어? 하는 잔소리가, 어느새 우리 겨드랑이 사이를 훅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나는 그런 현실에서 갈등한 끝에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길을 택했다. 그로 인한 절절한 아쉬움이 이 글의 주요한 동기이기도 하다. 아이에게도, 그런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을지 모르는 일.
그러나, 다른 소중한 무엇인가가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의 이별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성장통이라는 것을, 겪으며 배워왔기에. 그 또한 딸에게도...
...흐음.
...흐음.
음...
뭐, 얘 그건 니가 알아서 하렴. 그만큼 키워놨으면 니가 알아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