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종료에 대한 소고
"선생니-."
"어, 저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몇천명 살리신 거예요."
평화로운 수요일 오후, 우리 교무실을 찾아든 국경없는 의사회의 모금운동원 두분은 짧은 인삿말과, 후원 참여를 요청하시더니 선생님들 자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부장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마치곤 내게 다가오신 모금운동원 분께 나는, 이미 후원중임을 밝혔다.
"몇천명-...까진요, 고작 한달 2만원 돈인데."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분은 후원하신대요 벌써!"
"아 아닛, 이런식으로...!"
겸연쩍은 내가 고개를 조아리자 운동원께서는, 방금 설득을 시도했던 부장선생님에게 바로 되돌아갔다. 우리 교무실에서 홀로 국경없는 이사회에 후원을 하고 있던 나는, 본의 아니게 바람잡이가 되는 바람에 제법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내 덕분에 부장선생님은 정말로, 그 자리에서 국경없는 이사회에 후원 등록을 해버렸다.
그리고 우리 교무실 사람들은 후원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연말정산에 15%밖에 공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자발적 후원활동으로 경제 선순환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기관의 직접 지원보다는 공제 비율을 늘려 참여를 높여주는 것이 더 나을텐데,와 같은 이야기.
그리고 잠시, 각자의 업무로 되돌아간 사이, 나는 마침내 결심해왔던, 그러나 미뤘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헬프에이지'를 검색, 홈페이지에 띄워진 후원모금문의에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제가...한 10년 이상 후원을 유지해오고 있었는데요, 아이가 좀 커서 교육비 문제도 있고, 부득이하게 후원을 종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네 말씀 잘 이해했구요, 우선 그간 후원 유지해오신 점 너무 감사드립니다."
헬프에이지는 내가 사회인이 된 첫 해, 퇴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만난 모금운동원을 통해 후원을 시작한 기관이다. 한국노인복지회라는, 굉장히 익숙한 명칭을 가진 기관이다. 전화 상담원께서는 정말로 친절한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곤, "즉각적으로" 모금 종료를 처리해주셨다.
"벌써 15년이나 후원을 유지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회원님의 후원금으로 많은 노인분들께서 따듯한 겨울 보내실 수 있었고, 맛있는 식사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
"네에 저도...좀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인연 맺도록..."
"네에 저희도 그럴 수 있도록 기원하겠습니다. 회원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월 만원이라는 소액 후원에, 겨울만 되면 독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난방비가 더 필요하시다며 고작 4개월간 만원정도씩을 더 요청하던 기관과의 후원, 아니 인연이 끝났다. 두 해쯤 전 시작한 국경없는 의사회 후원과 합치면 연 40만원이나 되는 돈이 후원금으로 지출되는 터라, 어느 하나라도 줄이지 않을 순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연초에 연말정산을 하면서 후원금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 보다 오래된 헬프에이지의 후원을 종료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만두기로 놓고는, 벌써 6월까지 전화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아 미뤄두고만 있었다.
어쨌든 15년간, 사회에 발을 들인 첫해부터 꼬박꼬박 내 통장에 찍혀온 이름이다. 게다가 성실하게 매년 달력이며 소식지를 보내주던 신뢰도 높은 기관이다. 경제적 이유로, 내 손으로 후원금을 잘라내고 나니 제법, 반성하는 마음도 들지만은. 아이가 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돈을 효과적으로 배치해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내 월급 사정에서, 연 20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은, 다른 후원금의 규모를 고려해도 이제 내가 결단을 해야할 시간이다.
오늘, 이미 후원을 하고 있는 국경없는 의사회 모금운동원들께서 방문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연말정산을 할 때까지 묻어뒀을 테지만.
이제 영락없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린 부모님을 두고 남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도 오지랖이라는 아내와의 대화. 유치원을 마치면 집 앞 슈퍼로 뛰어가서 3,4천원 가량의 간식을 사달라는 아이의 커가는 모습. 이런 내 눈 앞의 행복과 가치를 두고 내 터울 밖의 타인의 행복을 고려할 요량도 쉽사리 나진 않는다. 그리고 노인복지의 경우야, 국가의 책무일 테고 정권도 바뀌었으니 노인빈곤율도 장기적으로 하락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걸며, 이런 식으로 스스로의 죄책감을 다스린다.
종이 쳤다. 학생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안녕. 헬프에이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먼 곳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건강하고, 행복하고 따스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