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내딛어야 할 한걸음.
"회원님께서 지금 근육을 증량하시려면 하루에 닭가슴살을 여덟개는 드셔야하구요,"
"네? 여덟개요?"
"네. 닭가슴살이 안맞으시면 계란을 드시면 되는데, 하루 스물 다섯개 드시면 되구요."
"헐."
헬스장을 옮겼다. 신장개업한 헬스장이라, 회원 가입시 무료 PT를 시켜준다고 한다. 그래서 한 30분, 평소에는 쓰지 않을 근육들을 자극하는 운동으로, 가벼운 무게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마쳤더니 인바디 결과지를 두고, 내 앞에 앉은 앳된 외모의 트레이너가 말한다. 닭가슴살 여덟개.
"네 그러면 혹시- 수업 더 생각 있으실까요?"
"아 아뇨 그건...제가 혼자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네. 그럼 운동 하시다가, 또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 주시면."
"넵. 감사합니다."
나는 대화를 마치고 다시 운동을 하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덟개의 닭가슴살을 먹어야만 내 근육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에 대하여.
서른살 때쯤 헬스를 시작했을 때에나 지금에나 특별히 식단을 관리하며 운동을 해오진 않았다. 그냥 내가 운동을 부지런히 다니니 엄마가 알아서 구워먹으라시며 집에 고기를 좀 챙겨놓으셨을 뿐, 그것도 딱 집반의 반찬이 될만한 수준이지, 고기로 배를 채우고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식생활을 유지하며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랬더니 1년 반 정도, 3대 500을 한다는 수준에 다다랐다. 데드리프트와 스쿼트를 각각 200kg 이상 10회 5세트를 할 수 있으며, 한 팔로 20kg의 덤벨이 가능했다.
그렇게 운동을 하면서도 근육이 부풀어 흔히 말하는 벌크업이나 데피니션이 생기진 않았다. 나는 꾸준히 운동 능력이 향상되어 내가 들어올릴 수 있는 중량이 늘어나는 것에 만족을 했고, 또 하체와 코어에 중심을 준 운동 루틴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상체의 벌크업에는 무관심했다. 애초에 내 상체가 발달한 편이기도 했고.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도 친구와 이런 대화가 종종 있곤 했다.
"너는 왜 그렇게 운동을 빡세게 하는데 몸이 안좋아지냐."
"시벌 뭔소리여 내가 데드를 200을 치는데. 그리고 커팅을 안했잖아."
"그러니까 왜 몸이 그대로냐고."
이런 말로 공격을 받을 때조차 나는 친구가 운동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특별히 내 운동방식을 바꾸거나, 근육량을 늘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나의 생각은 그대로다. 나이를 먹었기도 하고 운동을 오래 쉬어 중량 올리기가 버겁다고 느끼지만 닭가슴살을 여덟개씩이나 먹는다는 생각은, 그것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행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근력을 늘리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고 열심히 하다보면 이번에도 나는 벌크업이 특별해 되지 않아도 다시 3대 500까지는 올릴 수 있겠지 생각하고 있다.
다만, 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건, 닭가슴살 여덟개는 여전히 내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내가 "근육 증량"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행하야 하는 조건인 것이다. 네개 다섯개, 여섯개 일곱개로는 근육은 늘지 않는다. 여덟개를 먹어야 한다. 그래야 근육이 늘어 더 좋은 라인을 가진 몸매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모두의 인생에, 모두의 개별 목표에 적용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 하나의 가깝고 먼 목표를 가진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든 충족해야 한다. 여덟개를 채워야 한, 그런 조건들. 일반적으로 우리는 목표에만 집중하고, 조건을 충족하지 않고도 그것을 달성할 생각을 한다. 요행을 바라며 시일을 보내거나 될대로 되라며 아무렇게나 해버리는 식이다. 아니면 나처럼, 엄청난 투자를 해놓고도 반쪽의 성과로 끝나버리든지 말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단지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문을 지나며 더 나를 깎아버려서 얇아지든, 아니면 더 넓은 공간을 만나 두꺼워지고 커지든, 본질적으로 투여된 시간과 에너지만큼, 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내게 닭가슴살 여덟개는 확실히 의미하는 바가 컸다. 여덟개의 닭가슴살이 있어야만 근육이 커진다는 생각은, 내가 읽어야 할 책들, 써야 할 연구들, 해야 할 집안일들을 상기시킨다.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기 위해서는 청소를 부지런히 해야한다. 직장에서 좋은 평을 얻고자 한다면 일을 열심히, 남들보다 잘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근육은 늘지 않는다. 인생과 목표의 생리학은, 그렇게 굴러간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지난 주말, 오랜만에 모인 고등학교 동창들 넷은 저마다의 목표와 닭가슴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근 대기업으로 이직한 친구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루겠다며 이번에 거둔 성공에 만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대기업 이직 역시도 이미 매일 매일, 빠지지 않고 닭가슴살을 여덟개씩 먹어온 결과임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녀석은 이리 살겠지,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지. 내게 주어진, 벌크업 말고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말이다. 나에겐, 닭가슴살 여덟개가 있을까. 그것을 매일 매일 먹으며 목표를 이룰 준비를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 답은, 흐음. 어떤 목표를 세우느냐부터. 또 생각해봐야할 문제겠지. 어떻게 인생을 살찌우고 다질지. 지금 나의 실천과 투자로 달성될 수 있는 일들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