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에 오롯이 집중해 영화를 볼 경우
*본문은 <F1 더 무비>에 대한 내용 분석이므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0. 글의 목적
<F1 더 무비>의 주요한 특징은 스포츠 장르의 영화라는 것이다. 해당 장르에서는 주요 인물과 대등하게 스포츠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만약 주인공의 비중이 너무 강해지면 스포츠 경기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질 수 있다. 그것은,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 이외에 팀을 구성하는 스탭들의 비중까지 낮아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포츠물로서의 특성이 강조되면 거꾸로 주인공의 비중이 약화된다.
<F1 더 무비>에서의 인물 대 스포츠의 비중을 보면,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부여됨을 알 수 있다. 최종 결과물인 개봉판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각본진에게 부여되었던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대책 없이 복잡한 소니의 개인 서사를 완결짓기
(2) (1)과 밸런스를 잡으며 동료 JP의 성장 완결시키기
(3) 현장 스탭들에 대한 적절한 조명
(4) (3)과 밸런스를 잡으며 케이트와의 러브라인
(5) 프런트 스탭인 루벤의 막장이 된 팀 살리기에 더한, 약간의 정치극
(6) (1)-(5)와 밸런스를 잡으며 F1 고유의 장르적 재미 묘사하기
*(7) 스포츠 장르에서 반드시 필요한데, 포기된 과제 : 주인공과 호적수의 라이벌리 서사
이들 과제들 중 어느 하나가 구멍이 나더라도 스포츠 장르물로서의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7)번 과제는 영화에서 아예 보이지 않는데, 일반 관객은 페라리는 그래도 알아도 레드불은 뭔가 싶은 감상을 받으며 그 최강 팀의 드라이버인 베르스타펜과 주인공들이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어 최종전의 긴장 역시 상당히 감소한다. 일반적인 스포츠물에서라면 최종전에서 소니와 JP, 베르스타펜과 그의 파트너 드라이버 페레스 네명이 팀원들과 하는 무전 대화가 어지럽게 오갔을 것이고, 서로를 향한 쌍욕도 난무했을 것이다. 이는 승리의 희열을 더욱 고조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베르스타펜은 JP의 사고 때 같이 붙었던 드라이버 아닌가. 그런 그의 역할이 거의 없는 것은 스포츠물로선 상당히 아쉬운 부분.
어쨌든 (7)을 제외하고, 각본진은 대부분의 과제를 해결했다. 그 밖에도 "포기했던" 과제들이 퍽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JP의 러브라인도 있었다는데, 통편집되었고 (7)과 함께 다른 팀의 선수들이나 관계자들도 당연히 분량이 잘려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제. 이렇게 "잘려나간" 부분들에는 주인공 소니의 심리 묘사도 있다. 이 점이 영화의 품질을 조금 낮추었다. 제대로 된 내면 묘사가 없으니 소니의 존재감 자체가 붕 뜬 먼치킨(모든 걸 다 가진 최강자)처럼 묘사되며, 그는 마치 신선처럼 룰을 가지고 놀면서 팀을 승리로 이끈다. 도박과 이혼, 치명적인 부상을 마치 장식처럼 어깨에 두르고 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후반부에 배치된 사건 하나가 상당히 몰입을 방해하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뜬금없는 루벤의 후원자의 배신과 그로 인한 소니의 대형사고, 사고에 이어진 소니의 몸 상태에 대한 폭로와 루벤과의 갈등. 그리고 다시 레이싱에 재도전하기까지의 과정, 그에 이어진 승리까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가 "도구적"으로 소모되었다. 또 그로 인하여, 우승을 하고도 팀을 떠나며 케이트와 나누는 키스, 그리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자유롭게 날아가고 있는 소니의 비행까지도, 감흥이 반감된다.
이 글의 목적은 영화에서 다른 과제들과의 비중을 조절하기 위해 포기된, 소니의 내면을 영화의 장면들을 중심으로 복원하여 전체 내러티브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최종전의 긴장과 결말에서의 감동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1. 파괴된 남자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주인공 소니의 내면이 얼마나 망가져있는지 설명된다. 야간조로 데이토나 경기를 앞둔 그는 파도 치는 음향의 ASMR을 듣고 있다. 그리고 이 파도 소리에 그가 겪은 사고의 트라우마가 함께 교차된다. 그리고 상당히 거친 레이스를 하며 우승한 뒤, 트로피와 팀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며 떠나 바하 1000이라는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전단지를 보고 있다.
여기까지. 오프닝에서 묘사된, 영화의 결말부까지 확고하게 이어지는 소니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ㄱ) 30년째 극복 못한 트라우마
(ㄴ) 아주 심각한 불면증
(ㄷ) (1)-(2)로 인해 생긴 루틴들 : 얼음물 목욕, 행운의 카드 루틴, ASMR, 러닝
(ㄹ) 우승컵 만지길 거부하는 행동과 방랑
(1)-(6)까지의 과제와의 비중 조절을 위해 영화에서 (ㄱ)의 묘사가 이후에 약화되고 생략되면서, 나머지 그의 문제점까지 희석된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소니 이 양반, 지금도 허리에 심이 박혀있는, 레이싱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안구에 데미지가 오는, 차에 타면 안되는 몸뚱아리다. 몸 상태가 그러니 트라우마가 떠날리가 없다. 데이토나 24 야간조로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도 트라우마에 수반된 상시 불면증으로, 잠을 못이루고 있고 ASMR을 들으면서라도 잠을 청해보지만, 사고의 트라우마가 3초 간격으로 살아난다.
그의 몸과 정신은 이미 완전히 망가져있다. 중반부에서의 "설명"으로 그가 심각한 부상, 도박, 이혼을 수차례 경험했다는 것이 추가로 드러난다. (ㄷ)과 함께 트라우마, 불면증을 모두 종합하면, 소니의 현재 상태는 또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부상으로 늘 불안정한 상태이며, 이를 조절하기 위한 루틴들로 몸과 마음을 둘둘 감고 있음
심각한 불면증으로 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며, ASMR과 운동, 행운의 카드 루틴으로 이를 조절
트라우마의 근원인 레이싱에서 달아나려 한 바 있음. 도박과 갖은 결혼. 그러나 여기에서도 처참히 실패함으로써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인식함
현재는 레이싱을 통해 트라우마를 조절함
자기가 완전히 저주받은 인간이라는 사고를 갖고 있음 :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는 우승컵을 만지지 않고 팀을 떠남. 자기가 우승컵을 만지거나 팀에 계속 머무는 것은 팀에게 부정타는 것이라 인식
문제는, 영화에서 이런 묘사들이 (1)-(6) 과제로 인하여 상당히 소략하게만 보인다는 것이고, 도박과 결혼, 이혼 문제, 그의 기행이 마치 그의 문제점처럼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니는 진짜로 진짜로 심각한 환자다. 몸과 마음 모두 중병을 앓고 있으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도박처럼 도파민 터지는 일도, 가정을 꾸려 안식을 찾는 일도 시도해보았다. 그런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다음, 일자리를 얻은 것이 그토록 싫어하던 자동차 운전수 노릇인 택시 운전사였을 것이고 거기에서 뜻밖의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껴 레이싱을 통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트라우마를 다스리고 있는 상태. 그의 갖는 기행과 뻔뻔해보이는 태도는 그저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도박사 시절 몸에 배어든 블러핑의 습관에 가깝다. 그런 블러핑의 가면을 쓰고 모두를 상대하니, 레이스를 망치로 트라우마를 조절하기 위해 얼음물에 들어가는 루틴을 할 때, 케이트에게 그리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영화는 (1)-(6)의 과제를 풀어야 하므로 소니의 내면 묘사를 최대한 자제하지만, 그는 케이트와의 데이트 뒤에도 어김없이 불면증으로 베란다에서 홀로 밤을 보내야하는, 그런 처량한 신세다. 영화 속에서 그가 혼자 카드를 만지고 있는 장면들을 초반부에 한번 연출된 것과 같은 불면의 밤이라 해석하고 그의 내면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인 것과 같이 트라우마의 소용돌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영화를 감상하면, 후반부에 카드를 빠트려 저지른 사고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케이트에게 너무 자연스럽게 들이대는 것 역시 여성과 보내는 시간이 그를 트라우마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
2. 파괴된 남자의 꿈, 그리고 팀이라는 것
그가 결말에서 마침내 자유로이 비상하며 F1이라는 꿈의 무대에서 우승을 한 뒤 우승컵을 만지지 않은 이유, 그리고 케이트와 팀을 떠난 이유는 지금까지 소니가 모든 노력을 했을에도 실패하여 스스로를 저주하고 그 저주가 타인에게 옮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소니가 레이싱을 하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모두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경기가 끝나고 우승을 하는 것은 트라우마 치료에 있어서는 논외의 문제다. 누군가와 기쁨을 누린들 이별의 시간을 더 아프게 할 뿐이라는 것을 소니는 잘 안다. 우승컵이라는 영광의 훈장 역시 고통을 더욱 크게 할 뿐이다. 자신에게도 그리고 팀에게도 말이다
이러한 해석은 소니의 심리를 기반으로 하여 과거의 사고, 과거의 행적, 현재의 레이싱 과정, 미래의 그의 운명까지 설명하는 유용한 틀이지만, 영화를 지나치게 얄팍한 틀에 가둔다. "F1 레이싱, 그리고 이 영화 전체가 무슨 <셔터 아일랜드>처럼 소니의 트라우마 치료 과정이라는 말인가?"라는 반론이 쉽게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 소니에게는 그저 고통만으로 끝나지는 않은 과거의 꿈이 있었고, 이 몸으로 하루 하루 살아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모두가 비웃는 싸움에 뛰어들어 실수와 실패를 반복해가면서도 뻔뻔하게 웃으며 대꾸할 수 있는 블러핑 기술을 갖추었으며, 화를 내야할 땐 그럴 수 있는 배짱도 있다. 영화 속 기자들에겐 아쉽게도 마약으로 잡혀들어간 적 한번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고독한 마라토너가 아니라 테크 팀의 첨단 기술, 홍보팀의 인터뷰 협조, 경영진의 재정 지원과 현장 스탭의 작전까지 수백명의 팀과 함께 달려 승리를 거머쥐었다. 다른 스포츠물도 그렇지만, <F1 더 무비> 역시 팀원들을 두루 조명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소니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철저히 팀워크에 기반하여 경기에 참여했다. 애초에 소니가 F1으로 복귀한 것 역시 루벤의 간곡한 제안 때문이었고, 승리를 위해서는 JP를 비롯한 팀 전체가 필요하단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즉, 소니는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파괴된 것은 그의 인간성이 아니라 스포츠 선수로서의 생명이었고 그는 돌아왔다. 트라우마로 인해 단련된 강인한 정신력으로 매일 매일 불면증과 불안, 후유증이 남은 신체의 고통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워, 레이서로서 최고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이것이 <F1 더 무비>의 올바른 해석이다.
안타깝게도 영화에서 소니의 내면 묘사가 부족하고 루벤에 의해 그의 신체 컨디션이 폭로되는 파트의 흐름이 좀 너절한 편이다. 배닝의 배신에 아무런 복선이나 의미가 없고 이 부분은 명백한 각본진의 실책이다. 굉장히 불필요한 부분이고 굳이 역경을 준다면 단순히 소니가 깨먹은 부품들로 인해 수급에 문제가 생겨, 한두개 부품이 도착을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파트에서 사고의 구실을 만들기엔 뻔한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어쨌든 그의 몸 상태가 밝혀지는 부분의 흐름이 이상하다보니, 그의 컨디션이나 트라우마에 대한 재조명이 극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또 그러다보니 최종전에서 그가 시야에 이상을 느끼는 것도 맥거핀으로만 흘러가버렸다. 그의 신체 컨디션 문제가 루벤과 둘만의 문제로 남아, 팀원들이 그 문제를 함께 책임진다는 그런 감정적 격동도 일어나진 않았다. 소니는 팀원들과 함께 달렸으나, 팀원들은 충분히 소니의 짐을 나누어지지 못했다. 물론 그런 전개는 통속적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극 자체의 감정선을 더 풍성히할 순 있었을 것이다.
제작진들은 초반부의 트라우마, 불면증과 카드 날리는 부분, 행운의 카드 루틴 장면을 충분~히 보여주었으니 이쯤이면 소니의 몸 상태가 폭로되는 반전도, 최종전에서의 그가 진 리스크도 잘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순 있으나 글쎄, 이 부분은 영화의 품격을 낮추는 부분이라고, 글의 결론에 다다른 지금에도 여전히 그렇게 느껴진다. 소니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이 풍부하게 담겨진 영화인데 그 함의가 관객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은 점은 참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며, 편집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해방은 마침내, 폐쇄된 트랙을 벗어나.
이야기는 마침내 날아오른 소니의 해방으로 마무리된다. (1)-(6)이라는, 스포츠물로에서 주요하게 극의 내러티브를 채우는 것들 역시도 모두 소니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관계망 속에서 완결되었으며 승리의 순간은 영화의 역사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성대한 스펙타클과 함께 묘사된다. 이런 스포츠 장르로서의 충실한 점이 영화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마지막 장면의 비상 역시도 조금 더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소니가 극한까지 몰린 상태에서 뿜어져나오는 어떤 것이었다면 더욱 의미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여전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제작진이 해석의 여백, 그 공간에 남긴 영역들이고 영화를 보고 열흘쯤 지나서서 시간을 들여 분석을 할 가치가 있음은 입증된 서사였다.
그리고 진정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데에 성공한 것은 정해진 트랙을 정해진 "최적의 경로"로 달려나가는 것에 익숙한 우리 모두에게 길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한 서사, 그리고 결말에 있다고 보인다. 마지막, 소니는 더 이상 반복되는 폐쇄된 트랙을 달리지 않는다. 그는 탁 트인 사막, 지평선을 바라보며 무한의 질주를 할 수 있는 사막 레이싱에 참여해 달려나간다. 바하 1000에 참여한 그의 모습이야말로 더 없는 마무리, 그리고 더 없는 메세지. 반복되는 우리의 존재의 경로, 일상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고 반드시 바라던 승리를 거머쥐는 것. 그런 다음, 주어졌던 이 경로를 벗어나 달려나가는 것. 마치 소니처럼, 단 한번도 루저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인상깊은 그의 모습은 그것이다. 소니는 단 한번도 루저처럼은 굴지 않았다. 우린 그럴 수 있을까?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