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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느새 부턴가 영웅은 안멋져 <슈퍼맨>

이거 다 알잖아? 로 시작되는 새로운 유니버스

by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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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생명력조차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2025년에 와서, 그 마블의 전성기에 이미 한번 패가망신을 했던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 시리즈를 되살린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이다. "다 아시죠?" 이 말을 거의 모든 측면에서 고려해야 한다. 일단 오리진은 재끼고, 구체적인 설명은 날리고, 무거운 이야기? 네버.


이러한 기본 조건에 제임스 건의 독창적인 테이스트가 달라붙는다. 캐릭터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데에 탁월하지만 한국 관객의 입맛에 잘 맞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국내 관객의 입장에서 제임스 건의 취향이 잘 맞지 않는 것은 그가 "미국인"이기 때문인데, 코믹 원작을 잘 해석해서 영화 고유의 스토리를 잘 풀어내지만, 히어로물에 대한 지식이 좀 부족한 관객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일정한 장벽이 존재하는, 영화의 높은 품질만큼이나 미묘한 난이도가 있는 결과물이 나오곤한다.


그리고 이게, 그 시작지점이다. <슈퍼맨>.


마스코트라고 보기에도 난감한 초인 강아지 크립토는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긴 한다. 그러나 이 개에 대해 어리둥절하게 바라볼 관객들이 제법 있다. 슈퍼맨이 개를 길러? 저 개는 어디서 온 거지? 왜 슈퍼파워를 가지고 있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슈퍼맨의 적수로 등장한 루터. 그런데 니콜라스 홀트라는 비싼 배우가 열연하는 저 배역인 대체 뭘 하던 캐릭터인지를 모르는 관객들이 훨씬 많다. 한국에조차도 알렉산더 루터라는 캐릭터에 대한 장벽이 존재하는데 다른 지역인 말해 뭐해.


슈퍼맨의 반려견과 메인빌런 양쪽에 일단 장벽이 하나씩 서 있고, 히로인 로이스 레인은 오케이. 그럼 다음은, 미 국방부가 루터와는 왜 저런 관계이며 왜 루터의 말을 믿고 슈퍼맨을 적대하는지, 장벽이고, 그 다음에 슈퍼맨이 외국의 전쟁에 개입한다는 스토리라인 역시도, 상당히 장벽이 된다.


미국처럼 코믹스로 매주 이슈를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외국에서는 결국 드라마조차도 아닌 영화를 통해서만 해당 작품을 경험하기 마련인데 <슈퍼맨>의 경우에는 감독이 미국인으로서 미국인스러운 판단으로, 미국인들에게 편향적으로 편리한 각본을 뽑아냈다. 지구촌의 대다수는 슈퍼맨이 지구인과 크립톤인으로서의 정체성의 갈등을 약간 갖고 있다는 것과 태양의 힘을 받아 어마어마하게 강하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지, 루터가 누구인지 슈퍼맨이 왜 자꾸 미국 정부와 대적하는지 알지 못한다.


<맨 오브 스틸>은 오리진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주요 갈등이 되는 장이 슈퍼맨의 고향인 크립톤 행성이고, 그로 인해 설정된 메인 빌런 조드가 지구인과 크립톤인 사이의 정체성의 갈등이라는 슈퍼맨의 핵심 줄거리와 탁월하게 주제의식적으로 통일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쉽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조드 장군이 죽은 다음에도 두번이나 능욕을 당해버리니(한번은 복권인가?) 이런 캐릭터는 어쨌든 다시 쓸 수가 없고, 그럼 알렉산더 루터를 써야지 뭐. 그런데, 그래서 루터는 누구란 말이냐. 빅뱅을 일으켜 블랙홀과 우주를 만들 수 있는 미친 개 천재가 대체, 어떻게 저렇게 허술한 계획으로 슈퍼맨을 도주시키도록 했을까. 대체 왜. 대체 왜?


물론 장점도 수두룩한 영화다. 캐릭터를 하나같이 매력있게 잘 뽑아서 모든 캐릭터가 생명력을 뽐낸다. 로이스 레인도 초반부의 긴 대화씬에서 정립된 캐릭터로 극 후반부까지 훌륭하게 이끌어나간다.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적절히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와 꽤나 괜찮은 반전들. 그럼에도 지금은 주어진 상황이 너무 나쁘다. DCEU와 MCU가 동시에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와중에 유니버스를 구축해야 하고 슈퍼맨 고유의 서사 전개를 위한 판을 깔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알렉산더 루터 같은 핵심 캐릭터도 정립해야 하니. 그 와중에 전 세계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은 줄어드는중! 이런 상황에서 영화가 환영받기 쉽지 않다. 결정적으로 제임스 건의 액션 연출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어서 이게 정말 우리가 기다려 온 슈퍼맨의 액션인가 하면, 글쎄?


마블보다 DC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긴장감이 잘 유지되는, 마지막까지 몰입이 잘 유지되는 이만큼의 퀄리티로 유니버스를 되살려낸 제임스 건과 다른 스탭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딱 냉정히 영화만으로 평가하자면, 미묘하게 예산을 아낀 티가 나는 데다가 몇몇 사건이 너무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쉬운 부분. 그래도, 대체 불가한 각 히어로들의 매력을 즐기는 것이 히어로무비를 감상하는 법이므로, 대체불가한 최강의 히어로가 돌아온 것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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