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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자미감

제주도에 와서 꼭 먹을만한 맛이라는 게

체인점도 많은 산지해장국

by 공존

"어휴 양도 많네."


제주도 여행에 잠시 함께 한 아내의 친구 부부 중 형님쪽과, 아침을 먹기 위해 둘이만 숙소를 나섰다. 모처럼의 외도다. 아침 여덟시쯤이면 나는 슬슬 아침 식사를 챙겨야 할 시간인데, 오늘은 10시에 하는 브런치 식당을 간다지 않나. 아이도 거기서 먹인다 하니 그 덕분에 나는 벼르던 해장국집에 올 수 있었다. 산지해장국. 여길 처음 찾은 게 아이가 10개월 때였던 것 같은데. 이제야 좀 애를 떼어놓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산지해장국은 원래 동문시장과 제주항 중간쯤에 있다. 구도심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장사를 잘 해오다가 몇해 사이에 알려졌다. 그래서 해장국집이 많고 많다는 제주에서 몇해만에 열 두 곳이나 체인점이 만들어졌다. 내가 찾은 곳은 우리 숙소가 위치한 삼양점인데, 본점도 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왕복 7분 거리에 있는 식당을 냅두고 시내로 들어가는, 왕복 35분짜리 길로 만들 일은 아니다. 식당 별점 한번 슥 보고 출발. 식당엔 단숨에 도착했다.


산지해장국이 코로나도 뚫고 많고 많은 제주도 식당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 하면? 다른 식당에서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가성비다. 양이 가득, 곱창도 조금씩은 보이는 이 내장탕이 11,000원. 제주도에 오면 꼭 먹어보라고 할만한 식당이다. 명의를 도용한 은희네는 육지에도 많다. 그런데 본점은 심지어 공기밥과 국물도 무제한 리필을 해주었다. 항구 인근의 노동자들이 주로 찾던 곳이라 그럴게다.

그 노동자 중심의 로컬 식당, 이라는 점은 계란 인심에서도 드러난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전에 내장탕 소스 담아먹으라는 채비와 계란부터 눈에 들어온다. 두개를 집어 자리로 가져왔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엔 계란 하나 올려주고 말고가 인심과 정성에 있어서는 천양지차였다. 대접받는 감정은 계란 하나로. 나날이 노동에 지치고 살 일은 빠듯한 사람들에게, 여전히 고마운 물건이다. 처음에 탁 넣어서 먹어도 좋고 처음엔 깔끔한 국물로 몇술 먹다가 뒤에 넣어도 좋다.


나와 형님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내장탕을 천천히 먹었다. 쇠고기선지해장국도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장탕의 인심이 워낙 고맙다. 단순히 11,000원에 이 양, 가성비만으로만 먹는 음식도 아니라서 양을 손질한 자태가 퍽 좋다. 눅진할 정도로 푹 삶아진 양이 넓적하게 잘라져서 식감이 정말 좋다. 서울에서 먹는 식으로 무슨 칼국수면마냥 얇게 썰어낸 것이 아니라 손가락 크기는 되도록 잘라내니 입 안에서 구르는 그 질이 푹 우려진 국물과 잘 어우러진다.

"이거 깍두기는 왜 국물을 넉넉하게 주는 거야? 국물 부어서 먹으라는 건가?"

"아아- 물김치-...느낌인 것 같은데요?"


같이 간 형님은 이런 차림이 생소한가보다. 하긴 그렇지. 보통 해장국집 깍두기는 이렇게 국물과 함께 먹는 것은 드물다. 그런데 이 집은 물김치 혹은 동치미처럼 각각의 공기에 국물이 자작하게 담겨나온다. 깍두기와 국물의 맛은 대단치 않다. 뭐 구색이니. 대신 김치는 삼삼하니 국물과 먹을만하다.


대체 어떻게 이 가격에 음식을 내는 것일까. 육지에선 가스 가격이 올라 식당마다 국밥 가격이 올라 난리인데 제주도는 가스가 훨씬 비싼데도 이 가격. 단지 임대료의 차이라고 봐야하나. 본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체인점들이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이 가격을 만들어내고 있나 궁금증마저 생긴다. 집주인들이 하는 식당에서나 가능할 가격이, 고기의 양이다. 어쨌든 이쯤이면 굳이 굳이 본점을 찾지 않아도 되겠다.


그런 생각을 방증하듯, 평일 아침에도 식당에 사람이 퍽 많다. 여행객들을 피해서 주민들이 아침 먹기 딱 좋은 곳이로구나 싶을 정도. 게다가 낡아서 불편함이 있는 본점에 비해서 삼양점은 새로 입점을 해 깔끔한 인테리어에, 테이블 간격도 넓찍하니 쾌적하다.


이 맛있는 음식을, 닷살 딸네미는 아직 먹지 못한다. 다섯살의 혀는 아직 고춧가루에 익숙하지 않다. 얼른 나이를 먹어라. 그래야 엄마 아빠와 같이 오지. 선지해장국은 아내도 퍽 좋아하는 음식이니 몇해만 지나면, 본점이든 체인점이든 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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